적국과의 결전을 하루 앞둔 날 밤, 무장한 병사들이 비장한 눈빛으로 신전 앞에 모인다. 제사장이 손짓을 하자 병사 한명이 제단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굳게 닫힌 육중한 문이 스르르 열렸다. 제사장은 내일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지 여부를 신으로부터 듣기 위해 신전으로 들어선다. 횃불이 모두 타들어갈 무렵 제사장이 나와 ‘내일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계시를 전한다. 제단의 불이 꺼지고, 신전의 문은 자동으로 닫힌다.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대사에 임할 때 신의 계시에 크게 의존하던 시절,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신비한 신전이 있었다면 사람들의 신에 대한 믿음과 경외감은 한층 심화됐을 것이다. 그런데 약 2천년 전 이집트 북부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스스로 여닫히는 자동문이 실제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다.
자동문의 원리는 간단하다. 제단 아래에는 물을 담은 그릇 몇개, 그리고 이들과 밧줄로 연결된 원기둥이 장치돼 있다.(그림1) 횃불이 켜지면 공기가 팽창해 물을 밀어내고, 그 힘으로 문 아래에 연결된 원기둥이 돌아 문이 열리는 방식이다. 이 장치의 제작자는 알렉산드리아의 걸출한 과학자 헤론(65-150)이었다.
헤론은 그리스와 로마의 선인들이 이루어낸 과학적 업적을 포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실생활에서 널리 실현시킨 인물이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헤론의 책에는 압축되거나 가열된 공기의 압력을 이용하고, 정교한 도르래와 톱니바퀴, 나사, 피스톤과 같은 도구들이 동원된 정밀한 기계장치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이들은 현대의 자동차 속도계, 제트추진기, 증기기관의 원형으로 불릴 정도의 수준을 갖춘 것이라 평가받는다.(그림2) 동전을 넣으면 물이 흘러나오는 자동 성수기(聖水機, 그림 3)나 노래하는 인공새와 같은 기발한 장난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 발명품들은 오래 가지 않아 역사 속에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알렉산드리아 과학자들은 더 이상 문제를 깊이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이들이 여러 장치를 발명한 주된 목적은 단지 자신을 후원해주는 군주나 귀족의 무지를 깨우쳐주거나 그들에게 지적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한정됐다.
더욱이 당시에는 수많은 노예들이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인력을 대체할 발명품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산업적 응용’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헤론은 풍차의 원리를 생각해냈지만, 오르간에 적용하는 정도에 그쳤지 이를 곡물 생산과정에 사용하지 않았다.(그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