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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사 이명주씨의 남극 체험수기

남극대륙의 미스코리아 미스아시아

 

아름다운 남극이 유지될 수 있는 까닭은 아직까지 사람들의 때가 묻지 않아서다.


남극은 고도에서 풍기는 매력을 느끼게 한다. 96년 8월 의협신문에서 남극세종기지에서 근무할 의료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수첩 한구석에 그 내용을 오려두었지만,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한국에서 지원해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접속했던 의협통신망에서 세종기지 의료요원을 구한다는 8차대 의사(조상걸씨)의 게시물을 다시 보게 됐다. 곧 남극 의료요원에 관심이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조상걸씨의 주선으로 면접을 치렀다. 다행스럽게도 그 해에는 지원하는 남자의사가 없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군복무를 대신해 남자의사가 남극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했다.

"여자의사가 어떻게 남자들의 건강을 관리하지요"하고 면접관이 물어왔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여의사 면허증을 따로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자격증이란 일정한 기준을 통과하면 주는 것입니다." 이런 대답이 주효했던지 제10차 남극과학연구단의 일원이 됐다. 남극에서 월동하는 최초의 여성대원이라는 것은 지원 후에, 아직까지 아시아 국가에서는 월동한 여성대원이 없었다는 것은 남극에 가서 알게 됐다.

1996년 11월 1만7천2백40km 떨어진 남극세종기지를 향했다. 미국의 뉴욕, 뱀장어처럼 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남미의 땅끝 푼타아레나스를 지나서 마지막으로 칠레의 공군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눈과 얼음과 바람의 땅, 고독의 땅에 도착한 것은 11월 25일이었다.

저녁 8시가 돼도 남극의 여름밤은 대낮처럼 환했다. 무척 춥다는 첫 인상을 가슴에 간직한 채 칠레기지에서 다시 고무보트로 옮겨 탔다. 빙산 사이로 파도를 헤치며 세종기지에 도착하자, 마중나온 분이 "춥지 않지요"하고 마치 사람을 놀리듯이 물어왔다.

그들은 이미 남극의 추위에 몸이 단련돼 있었던 모양이다. 남극에서 1년을 지낸 후 나 역시 새로운 11차대원을 맞을 때에는 똑같은 말을 하게 됐다. 남극의 여름은 한국의 겨울날씨와 비슷했다. 그러나 적응하다 보니 가벼운 스웨터만 걸친 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세종과학기지의 계절과 밤낮은 서울과 정반대였고, 시간 역시 한국보다 12시간이 느렸다.
 

남극의 유빙위에서 펭귄들이 귀엽게 놀고 있는 모습은 빼놓을 수 없는 장관이다.


쓰레기 태운 재마저 버리면 안돼

여름(12월에서 2월까지)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남극을 방문한다. 이 기간에는 날씨가 비교적 따뜻하므로, 과학연구를 하기 위해 드나드는 비행기가 많다. 그러나 겨울이 시작되면 소수의 인원(10차 월동대는 15명)만이 건평 7백13평의 세종기지에 남게 된다. 한반도의 70배가 되는 남극대륙에 남는 유일한 한국인이 되는 것이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지닌 남극대륙에서 인간이 살 수 있었던 것은 난방, 급수, 보급품이 원활하게 수급되기 때문이다. 남극에는 이끼류를 제외하고는 식물이 없어 자연적으로 육상동물도 없다. 해안선을 끼고 있는 세종기지 근처에는 펭귄, 물개, 해표, 고래 등의 해양동물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을 잡아먹지 않는다면(잡아먹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음) 1년 동안 먹을 것 등 모든 생활 필수품을 외부로부터 가져와야만 한다.
전력은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담수호가 얼어붙는 동계 기간에는 물을 구하기 위해 바닷물을 끌어들어 담수로 만든다. 세종기지 연구원들은 남극조약에 따라 자연환경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오폐수 처리는 물론 가연무독성의 쓰레기를 소각해 생긴 재마저도 남극 밖으로 가지고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월동대는 과학자보다 기지를 유지하기 위한 인원들이 더 많다. 월동대의 구성을 보면 대장, 총무, 연구원(3명), 발전·설비·전기 담당 대원(4명), 중장비 담당 대원(2명), 통신 담당 대원, 기상 담당 대원, 조리사, 그리고 의사다.

남극에서 의사는 기본적으로 다른 대원들의 건강을 살피는 일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고유한 업무 외에도 여러 일들을 나누어 해야 했다. 청소, 야간 당직 등은 공동의 업무다.

쓰레기를 소각하는 일, 기지 주변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 남극에서 구하기 힘든 야채를 며칠이라도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다듬는 일, 보다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해 마늘을 까는 일들도 공동으로 해야 한다. 나도 처음에 낯설게 느껴졌던 화장실 청소에 익숙해지면서 거부감이 없어졌다.
 

남극세종기지


나 때문에 깨진 아까운 전통

남성들 중심이었던 월동대에 끼어들어 '여성이 아닌' 동료대원으로 인정받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철모르고 낭만적인 생각이나 하는 젊은 아가씨라는 생각을, 남자로 태어났으면 보건복지부장관쯤은 충분히 하고 남을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전환시키는데는 6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곳의 대원들은 다양한 교육적 배경을 가졌고, 어린 나보다 더 많은 사회적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말이 아니라 행동임을 아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때로는 눈물이 났다.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잘한 것도 금방 눈에 띄지만, 잘못도 너무나 쉽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처음에 28개의 눈이 나를 주시한다는 것 때문에 부담을 느꼈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6개월이 지나면서 여성이라기보다 한명의 동료로서 보아주는 눈들이 많아졌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의사의 길을 갔더라면 해보지 않았을 도배, 시멘트 공사, 유류탱크 청소도 감수해야 했다. 이런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무슨 일이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남극생활에서 얻은 귀중한 재산의 하나다.

동료로 인정을 받았지만 여성이라는 사실이 변한 것은 아니다. 혼자만의 샤워시간을 배정받았을 때, 함께 목욕하며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남성대원들이 은근히 부럽기도 했다. 5월경 오른손을 다쳐 2주간 깁스를 하고 지낸 일이 있었다.

일상적인 일들은 다른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었지만, 샤워장에 갈 때는 여성대원이 한명뿐이라는 것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빨래도 문제였다. 혹시나 속옷을 남자들이 볼까 걱정돼 정확하게 세탁이 끝날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다른 대원들이 공동세탁공간에 빨래를 널 때 혼자 방으로 가져와야 하는 불편도 있었다.

물론 여성대원 때문에 남성대원들도 불편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성대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느라고 별다른 질병이 없는 한 의무실을 찾지 않았다. 또 대개는 서로가 함께 있는 휴식시간에 의무실을 이용했다. 이성 앞에서 남극의 남성들은 수줍음을 많이 탔던 것이다. 남극에서는 오랜 전통이 있다. 생일날 발가벗겨 눈구덩이에 묻는 일이다. 이 '아름다운' 전통도 젊은 여의사의 등장으로 깨져버렸다.

최초의 여성대원으로 겪어야 했던 일은 사회에 진출하는 여성의 수가 늘어나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남성들은 여성을 동료의 자리에 앉혀야만 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약 4백만명 정도 되는 우루과이는 젊은 의사 중에 여의사의 수가 더 많다.

그래서 남극에는 계속해서 여의사가 오고 있다. 다음 차대의 의사도 여의사였고 홍일점이었다. 남성이 없는 자리를 메꾸는 여성이 아니라 여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남극 월동기간 중에 동양여성은 필자 혼자뿐이었다. 그래서 한반도의 70배나 되는 남극 대륙에서 미스코리아, 미스아시아로 살아야 했다. 그때까지 월동생활을 하는 동양여성이 없었기 때문에, 기지를 방문하는 외국인이 있거나 외국기지에 들리게 되면 늘 모델이 돼야 했다. 이때 찍힌 사진은 평생 찍은 사진수보다 많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히고도 모델료는 커녕 사진도 못 받았다는 데에 있다. 평소에 미모관리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해 보았지만 어쩌겠는가. 남극에 다녀와서 더 예뻐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설원 속에서 '미'에 대한 깨우침 때문이리라.

또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기념품을 다른 대원들보다 많이 받았다. 개인적으로 기쁘기도 하지만 아픔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서구의 여성이 연구를 위해 남성 연구원과 단 둘이 몇달을 남극에서 보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경우 홍일점인 여성이 월동대장을 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그러나 냉정한 대자연

세상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곳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을 맛볼 수 있을까. 해가 갈수록 더 많은 관광객과 과학자가 남극을 방문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남극은 찾아오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대자연이 존재할 수 있다.

너무나 맑아 푸르른 하늘, 쏟아질 것만 같은 별, 붉게 물들어 오는 저녁놀을 보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유빙 위에서 장난치고 있는 펭귄의 모습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만년빙 위를 오토바이(스키두)를 타고 쌩쌩 달릴 때면 영화 속의 주인공이 따로 없다. 흠이라면 맑은 날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더 많은 날은 귀곡성 같은 바람과 우중충한 구름과 노한 파도가 함께 했다.

날씨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좌우한다. 햇님이 찬란한 날은 기지 앞 유빙도 보석처럼 빛나고 마음도 환해진다. 그러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 침대가 흔들릴 때면 고국에 두고 온 사람들이 떠오른다. 잠들기 어려운 밤이 되는 것이다. 날씨가 나쁜 겨울철, 특히 폭풍설(blizzard)이 불 때는 밖에 나가는 일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50m 떨어진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는 것마저 무척 힘들었다.

고립된 소집단이 1년간을 생활해나가는 것이 처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양보해야 했다. 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도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아름다운 대자연도 익숙해지다 보면 동네 뒷산처럼 일상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속도의 시대'에 익숙하게 살아왔던 현대인이 만년을 변함없이 이어왔던 대자연에 대해 처음 느꼈던 경외감이, 변화가 없는 권태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느림의 세계'에 있게 되면 지난날의 기억들을 조용히 되새김질할 수 있는 귀한 시간도 얻게 된다.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진정한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눈과 얼음과 바람의 땅에는 고독과 외로움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이 남극에 오기도 힘들지만, 서로 만나서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작별을 아쉬워하는 친구를 가졌을 때 솜사탕을 먹는 것같은 포근함과 따듯함을 느꼈다. 환경이 삭막하더라도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은 어디엔가 있는 법이다.

남극에 와서 얻어 가는 가장 큰 재산은 가고 있는 인생 길에 쉼표를 찍고, 가야할 길을 생각해볼 여유를 갖고, 더 험한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 아닌가 싶다. 내몸 깊숙히 체화된 경험은 아무도 뺏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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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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