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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조기졸업생 낸 민족사관고등학교

비교내신제 폐지로 영재교육 흔들

 

6백억을 투자한 영재교육의 요람 민족사관고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 덕고산 기슭에 있다.


'영재교육의 요람’ 민족사관고가 첫 조기졸업생을 냈다. 민족사관고 2학년생 4명이 98학년도 KAIST 학부과정에 입학한 것. KAIST의 장호남 학장은 민족사관고 학생들이 이번 입시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 학생들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해낼 방법이 없어 처음에 많은 걱정을 했다. 아직 졸업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족사관고 학생들이 KAIST 입시 때 치루는 Pre-TOEFL에서 만점을 받아 입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한 KAIST 교수는 “이같은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으로 민족사관고 학생들은 지난해 여름 전국 과학고 학생들이 참가한 KAIST 영재캠프에서 3개 과제 중 2개를 우승한 바 있다”고 말했다.

민족사관고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아 왔다. 출범 전에는 영재교육과 더불어 민족사관(民族史觀) 교육을 한다는 것이 다소 생소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는 2학년생은 정원 30명 중 11명(이과 7명, 문과 4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민족사관고의 교육방법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고 곱지않은 시선들이 몰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민족사관고 학생들이 이번 KAIST 입시에서 우수하게 합격함으로써 그동안의 부정적인 시각을 씻어내는 계기가 됐다.

과학동아가 민족사관고를 찾아간 이유는 민족사관고를 통해 영재교육의 실상과 그 문제점을 살펴보고, 영재교육이 나아갈 길을 진단해보기 위해서다. 취재에는 국민회의 정호선의원이 동행했다. 정호선의원은 경북대 전자공학과 교수 시절 ‘카오스 칩’ 등 많은 국제 특허를 낸 바 있으며, 지금은 국회에서 과학, 정보화, 영재교육 등의 정책을 입안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회의 정호선의원에게 민족사관고를 안내하는 최명재 이사장.


선택받은 학생들

민족사관고의 교육은 독특하다. 우선 학생들이 교사를 선택한다. 학생들은 자기가 배우고 싶은 스승을 찾아가 수업을 듣는 방식이다. 다만 토론식 수업을 유지하기 위해 한반에 10명 이상 들어갈 수 없으며, 학생이 몰릴 경우 부득이 과목성적에 따라 2지망 교사에게 수업을 듣는다.
두번째 특징은 외국인 수업이다. 오전수업은 일반고와 마찬가지로 교육부가 지정한 이수과목을 듣는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 외국인 교사가 진행하는 민족사관고 특유의 영재교육이 시작된다.

매일 2시간씩 진행되는 영어수업 중에는 외국영화를 보고 외국인 교사와 영어로 토론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영어는 민족사관고에서 매우 강조하는 과목이다. 외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생들은 영어로 말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학교에서 유도하고 있다. 또 1년에 2번 전교생이 TOEFL 시험을 본다.

오후에 진행되는 탐구과학 수업도 외국인 교사가 진행한다. 과학용어를 영어로 익히고, 선진국의 명문사립고에서 실시하고 있는 탐구학습을 그대로 익히기 위해 도입한 것이라고 한다. 전동성 선생(물리 담당)은 “2학년을 마치면 학생들은 서울대 1학년들이 배우는 영어판 물리개론을 마스터한다”며 학생들의 실력을 말해줬다.

그러나 민족사관고가 강조하는 수업은 매일 있는 체육과 음악이다. 자칫 영재들이 건강을 해치고 정서가 메마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국제경기를 치뤄도 좋을 만한 축구장을 비롯해, 궁도장, 당구장, 실내 골프장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 골프의 경우 최근에는 가까운 군부대와 자매결연을 맺어 필드까지 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음악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음악인 국악이 중심이다. 1학년 1학기에는 국악 전반에 대해서 배우고 2학기 때부터는 대금, 사물놀이, 거문고 등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배운다. 신명나게 북과 장고를 치고 나면 저녁 식사시간이 돌아온다. 저녁을 먹고 1시간 가량 눈을 붙이고 나면 자율학습이다. 밤에 이뤄지는 자율학습은 보통 새벽 1-2시까지 이뤄지며, 모르는 부분은 당직교사에게 물어가며 진행한다.

현재 1학년은 41명. 학생대표를 맡고 있는 장준성군은 “일반고보다 다양한 교육을 받아서 좋다”며 학교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는 “그 중에서도 5주에 1번씩 떠나는 현장학습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광주 비엔날레(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제적 미술 전람회)를 비롯해, 충무공 탄신일을 전후로 한려수도를 돌았다. 또 월악산, 치악산, 지리산 등 웬만한 산은 모두 다녔다고 한다.
 

99칸 전통한옥으로 지은 민족교육관


민족사관고의 고민

현재 우리나라에는 영재들이 설 자리가 없다. 지난 해 11월 19일 교육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 15개 과학고에서 전체 재학생의 10%에 가까운 3백17명이, 16개 외국어고에서 1천여명이 다른 일반고로 전학했거나 자퇴했다. 비교내신제 폐지를 둘러싸고 특수목적고와 일반고 사이의 힘겨루기 끝에 특수목적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일반고로 옮겨가거나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선택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을 민족사관고는 일찍 겪었다. 1996년 입학한 30명 중 19명이 학교를 떠났다. 이 30명은 전국 석차가 상위 1%에 드는 중3 학생들 중에서 4.5 대 1의 경쟁을 뚫고 입학한 ‘영재’였다. 그러나 상당수가 전례가 없는 교육방법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시행착오가 많은 신설학교의 맹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떠났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교육부의 간섭과 학부모의 잘못된 대학입시관이라고 민족사관고 최명재 이사장(71세)은 말한다.
 

성적표는 다른 학교과의 실력을 가늠하게 붙여두고 있다. 모든 것이 성적순이라는 것은 옛말.


“사람들은 나를 고집불통의 영감으로 본다. 이 땅에 없는 영재교육을 뿌리내리게 하려면 교육부와 학부모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뚝심있게 밀어붙인 것이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그는 세간의 이야기를 꺼낸 다음 고충을 털어놨다.

“영재교육은 일반교육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영재는 모든 것을 두루 잘하는 사람(슈퍼맨)이 아니다. 한가지 방향으로 나가는 것, 또 소질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영재교육이다. 미국 명문사립고의 경우 3년 동안 6백가지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필수과목은 극히 적다. 그런데 교육부는 2백4단위 수업을 설정해 두고 이를 모두 가르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영재교육에는 잘하는 과목, 재미있어 하는 과목을 듣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교육부가 영재교육만은 자율에 맡기고, 다만 반국가적이거나 반민족적인 교육만을 사후에 감독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최 이사장의 두번째 불만은 학부모에게 있다. 많은 학부모들이 서울대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사관고는 비교내신제 폐지로 인해 내신점수가 매우 불리하다. 이는 영재교육을 하면서도 서울대에 많은 학생들을 보내는 일이 제도적으로 막혀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KAIST와 포항공대와 같이 우수한 학생이면 선발하는 대학으로 진학지도를 하는데,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것이다.

만약 학부모들과 타협해 서울대로 학생들을 보내기 위해선 수능점수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럴 경우 원래 학교설립 취지인 창의성교육은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아무래도 수능은 일반적인 학습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MIT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숙제를 내더라도 모범답안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능은 모범답안을 요구하고 있다.” 최명재 이사장은 “우리 교육은 세월이 지나면 잊는 ‘지식’을 가르치고, 선진국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발휘하는 ‘지혜’를 가르친다”며 우리 교육현실을 개탄했다.

“조그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무슨 욕심 때문에 6백억원이라는 거금을 민족사관고에 투자하겠는가.” 도와주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간섭하는 정부, 그리고 학생들의 장래를 망치려 한다고 학교를 불신하는 학부모들 때문에 최 이사장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민족사관고 최명재 이사장


국제고등학교로 다시 시작한다

최 이사장의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학년과 달리 41명 고스란히 남아있는 1학년들 중에서 얼마가 내신성적 때문에 학교를 떠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 학교에 들어올 때는 하고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위해선 싫지만 수능공부도 해야 한다. 또 내신이 문제인데, 학교에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1학년 학생들은 학교를 믿고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이것은 결국 학교가 안고 있는 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 이사장은 내신성적이나 수능에 구애받지 않는 영재들을 교육시킬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민족사관국제고등학교(국제고)다. 현재 강원도교육청에서 인가를 받은 국제고는 외국인 자녀와 해외 귀국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모집정원의 50% 내에서 일반학생들을 충원한다. 민족사관고와 크게 다른 점은 무료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명문사립고와 같은 시설과 교사들을 갖추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수업료를 받는다는 것이 학교측의 설명이다.

최 이사장은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학부모들의 반발도 적으면서 영재를 육성하는 방법은 그 길이라고 봤다. “국제고는 외국에서 중학교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모집한다. 그들의 부모는 외국의 선진 교육을 지켜봤기 때문에 암기식 교육보다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길러주는 교육을 선호할 것이다.” 최 이사장은 자신의 교육이념을 이해해줄 학생들과 학부모들만 있다면 어떤 투자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학생들을 많이 뽑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미국 명문사립고의 학생은 대략 1천명, 교사는 1백50-2백40명 정도 된다. 국제고는 5백40명(학급당 30명) 정원에 70-80명 교사를 두어 미국 명문사립고와 수준을 맞추려고 한다. 교사의 90%는 외국에서 모실 생각이다.” 비용은 많이 들지만 외국교사의 비율을 높인 까닭은 국내 교사들의 영재교육 경험이 아직 짧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제고는 내년 3월 첫 수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민족사관고 취재에 동행한 정호선의원은 “지금은 영재 1명이 국민 1만명을 먹어 살리는 시대, 즉 빌 게이츠 한사람이 버는 돈이 웬만한 재벌기업보다 낫다”고 하면서, 민족사관고, 과학고 등 영재교육기관이 안고 있는 문제를 국회에서 풀어보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교사와 함께 과학탐구학습을 하는 학생들. 세르게이선생(화학)은 영화영어 수업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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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조영철 기자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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