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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 결의한 선진국의 숨은 뜻

이익챙기기에 몰두, 환경은 소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11일 일본 교토에서 막을 내린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내용의 의정서를 통과시켰다.

이제 38개 선진국들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평균 5.2%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한국은 '일단' 감축 의무의 멍에에서 제외됐다. 92년 5월 브라질 리우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이후 5년 7개월 간 지루하게 끌어온 협상의 결과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교토회의의 '성과'가 선진국들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킨 것일 뿐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환경문제라는 대외명분을 앞세우고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는 말이다.
 

교토협약 행사장에 설치된 지구모형. 무지개와 산호로 가득한 푸른 지구의 꿈이 담겨 있다.


미국의 히든카드

이번 회의는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싸고 강대국들의 첨예한 대립을 유감없이 보여준 자리였다. 회의가 시작될 때 감축안은 제각기였다. 유럽연합은 가장 높은 수치인 15%를 제시했다. 이에 비해 미국의 안은 0%. 후진국과 마찬가지로 감축 자체에 반대했다.

유럽연합이 이렇듯 자신만만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연합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는 이미 에너지안정화가 이루어졌다. 기술개발을 서두른 덕에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주범인 화석연료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북해 유전에 깨끗한 연료인 천연가스를 보유한 것도 큰 힘이다. 그래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이 산업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하다.

더욱이 최근 구공산권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의 기술수준으로 폴란드나 헝가리처럼 화석연료를 주로 사용하는 나라의 산업을 현대화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 과정에서 얻는 수익은 온실가스 방출규제에 따른 손실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 학생들이 교토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환경보호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미국의 입장은 달랐다. 평소 '그린맨'(green man)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환경보호론자인 고어 부통령은 의외로 회의에서 한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았다. 전세계 이산화탄소 방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의 산업구조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국이 유럽연합에 비해 환경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닌 듯하다. 몇개월 전 클린턴 행정부는 현재의 기술수준으로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줄일 수 있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술을 산업에 적용시키려면 기업으로서는 막대한 비용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산업계는 행정부로 하여금 협약에 반대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미국은 후진국을 걸고 넘어졌다. 지구온난화의 책임을 후진국이 같이 지지 않는다면 자국의 산업이 커다란 피해를 입는다는 논리였다. 좀처럼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탓에 결렬의 위기까지 이른 회의에서 미국이 마지막에 제시한 '히든카드'는 배출권거래제였다. 국가별로 온실가스 배출허용량을 할당하는 제도다.

기술수준이 뛰어나거나 공장가동률이 낮아 허용량보다 적게 배출한 나라는 그렇지 못한 나라에게 돈을 받고 '배출권'을 팔자는 얘기다.

미국이 온실가스 배출권의 거래 대상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동유럽국가들이다. 대규모의 공업시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배출권을 많이 확보할 수 있지만 공장시설이 낡아 가동률이 낮은 탓에 배출권이 남아돌 가능성이 크다. 돈 많은 미국이 이를 사들이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크게 줄이지 않으면서도 세계 협약을 무난히 준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조만간 시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은행(IBRD)은 빠르면 올해 1월 민관 공동출자형태로 1억달러 규모의 '배출권 거래 기금'을 발족할 계획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이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리 없다.

또다른 경제대국 일본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회의 전 '5% 감축'이라는 무난한 안을 제시한 일본은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후진국에게 3천명의 기술인력을 무상으로 교육시키겠다고 밝혔다. 어차피 감축이 피할 수없는 세계 추세라면 기술인력교육을 통해 후진국 시장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97년 12월 1일 일본 교토에서 개막된 기후변화협약 회의장


피하는게 능사 아니다

한국은 '다행히' 의무국 명단에서 제외됐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지경에 선진국의 감축의무량을 부과받는다면 국내 주요 산업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지 모른다. 만일 2010년까지 2000년 수준으로 가스를 감축할 경우 물가가 13.3%나 인상되리라는 수치도 제시됐다.

그러나 이번에 면제받았다고 안심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당장 올해 11월이면 감축의무 대상국 명단이 개정된다. 이 자리에서 한국이 과연 또한번의 면제를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상황에서 후진국의 편에만 서려는 한국에 대해 선진국들의 시선이 고울리 없기 때문이다.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선진국들의 발빠른 행보를 언제고 뒤쳐져 지켜볼 수만은 없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더 큰 불이익이 닥칠 것이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민간단체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세울 때다.
 

세계야생생물기금(WWF)에 속한 한 오스트레일리아 회원은 자국의 삭감안이 기대에 못미치자 부끄러움을 표하기 위해 봉투를 뒤집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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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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