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보존되지만 절약해야 한다. 왜냐하면 재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위기 시대에 에너지 보존과 절약의 이율배반을 과학적으로 조명해 본다.
쓸모없는 에너지 에너지는 보존되지 않는 양인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원 중에 석유는 45년, 천연가스는 65년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세계 각국에서는 이들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는데 많은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르면 에너지가 다른 형태로 전환되더라도 그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고갈의 위기를 걱정할까?우주의 총 에너지는 일정하다. 그러므로 에너지 위기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에너지 고갈의 위기는 닥쳐왔다. 왜냐하면 사용가능한 에너지가 쓸모 없는 열에너지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다른 형태의 에너지는 모두 열에너지로 바꿀 수 있지만 반대로 열에너지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완전히 바꿀 수 없다.
모든 에너지는 휘발유와 같은 화학에너지처럼 쓸모 있는 형태에서 배기 가스와 같은 쓸모 없는 에너지로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다. 우리생활에서 에너지로 사용하려면 에너지는 집약돼 있어야 한다. 배기 가스와 같이 퍼져나가서 흩어져 버리면 쓸모가 없어진다.
에너지 종착역, 열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태양에너지는 물을 증발시켜 다시 비로 내리게 한다. 높은 곳에 있는 물의 위치에너지는 물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운동에너지로 변하고, 이것으로 발전기를 회전시키면 전기에너지로 변환된다. 이때 전기에너지는 전동기를 통해서 운동에너지로 변하고, 전열기나 전등 등을 통해서 열에너지나 빛에너지로 바뀐다. 또 동물의 체내에서는 물질의 화학적 변화에 의해 생긴 열에너지가 끊임없이 역학적에너지 또는 전기에너지로 변환되고 있다.
에너지가 다른 형태로 변할 때, 열에너지로 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100% 변환되지 않는다. 자동차나 기차, 배 등에서 사용하는 내연기관은 받아들인 열에너지 중에서 불과 35%만이 기계적인 동력(운동에너지)으로 바꿀 수 있다. 나머지는 모두 쓸모 없는 형태의 열에너지로 변해서 사방에 흩어져 버린다. 마찰과 같이 운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꾸는 일은 쉬우나, 반대로 열에너지를 전부 역학적인 일로 바꾸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에너지는 형태를 바꾸어도 총량은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냉장고 문을 열어두면 시원해질까
열은 항상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한다. 이 말은 '자연 상태'에서 반대 방향으로 열의 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온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열을 이동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열을 찬 곳에서 더운 곳으로 전달시켜주는 것에는 냉장고가 있다. 자연상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냉장고에는 전기에너지를 이용한 모터가 있어야만 한다.
열을 온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시키려면 반드시 외부에서 일을 해줘야 한다. 이 때 해준 일은 모두 열로 변해서 빠져나온 열과 함께 온도가 높은 곳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온도가 높은 곳에는 온도가 낮은 곳에서 빠져나온 열보다 더 많은 열이 전해진다. 냉장고 문을 열어 둔 채로 냉장고를 돌리면 방안이 시원해지지 않는 이유다. 공급한 전기에너지가 모두 열로 바뀌었기 때문에 방의 온도는 오히려 더 올라간다.
그렇다면 에어컨은 왜 시원한 것일까? 에어컨은 공급한 전기에너지가 전환된 열과 방의 열을 건물 밖으로 빼내므로 시원하다. 그러나 건물밖이나 에어컨이 가동 중인 자동차의 바깥은 방출된 열 때문에 더 더워진다.
냉장고에서 이용하는 원리는 두 가지다. 첫째는 액체가 기체로 될 때 주위의 열을 빼얏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압력이 낮아지면 낮은 온도에서도 액체가 증발한다는 점이다. 냉장고의 냉매로 주로 프레온가스라고 하는 CFC(염화불화탄소)를 사용하고 있는데 낮은 온도에서도 기화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냉매는 굵기가 다른 관 속을 순환하면서 기화와 액화가 일어난다. 냉장실 안의 관은 넓게 만들었기 때문에 압력이 낮아져서 냉매가 기화된다. 이 순간 관은 차가와지고 냉장실 안의 열을 빼앗는다. 냉매는 전동기에 의해 다시 폭이 좁은 관으로 들어가는데, 압력이 높기 때문에 다시 액체가 된다. 이 순간 열을 주위에 방출하게된다. 액체가 된 냉매를 다시 냉장실의 넓은 파이프 속으로 넣으면 기화 현상이 일어난다. 액화와 기화의 순환이 반복되면서 냉장고 내부의 열은 계속 밖으로 빠져 나오게 된다.
인간의 영원한 꿈 영구기관
발명가들은 한번 시동을 걸면 자체적으로 동력을 공급하는 기계를 만들려고 여러 세기 동안 노력해 왔다. 그러나 영구기관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주의 근본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제1종 영구기관: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것을 무시한 영구기관
에너지는 새로 생겨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에너지를 공급받지않고 일을 할 수는 없다. 어떤 형태의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전환될때는 반드시 마찰 등에 의해 열에너지로 변해 빠져나가버린다. 따라서 에너지를 계속 공급받지 않는다면 기계는 결국 멈춰버린다.
제2종 영구기관: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을 제멋대로 정한 영구기관
영구기관에 의해 움직이는 보트를 생각해 보자. 보트는 앞쪽의 바닷물을 빨아들여 열을 빼얏아 일을 하고는 찬 물을 내버린다. 바닷물에서 사라진 열에너지만큼 일을 하기 때문에 에너지보존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러한 배가 존재한다면 인간에게 그 효용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같은 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일을 하지 않고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열을 이동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열기관에서는 온도가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 온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열 중에 일부를 빼내여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오스피어Ⅱ
1991년 미래 우주도시 건설이나 지구의 미래 환경을 위한 자료를 얻기 위해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사막에는 바이오스피어Ⅱ가 건설됐다. 지구의 생물권과 유사하게 만든 인공적인 생물권을 만들고 2년 동안 남녀 8명을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채로 살게 하는 거주 실험이었다.
바이오스피어Ⅱ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바이오스피어Ⅰ)의 축소판이다. 이곳의 총 면적은 1만 3천m2(약 서울의 21배)로 외부와 격리돼 있으며, 내부는 거주구역·농업구역·자연구역으로 구분돼 있다. 자연구역에는 열대우림·사바나·습지대·바다·사막의 다섯 생물권으로 구성돼 있다. 이 곳에서는 벼·밀·상추·토마토·오이·당근·고구마 등 1백50여 종의 농작물과 돼지·닭·염소 등 4천여 종의 생물 등이 생태계를 이루어 자급자족하며 생활했다. 그러나 탄산가스의 증가와 산소 부족으로 정상적인 생활유지가 어렵게 됐다. 환경이 한번 황폐화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일본에서는 바이오스피어 J를, 러시아에서는 바이오스-3을 건설해 유사한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격리된 환경이라고 하더라도 외부로부터 꼭 받아들여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에너지다. 에너지는 한번 쓰고나면 재활용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외부에서 새로 받아들여야 한다.지붕을 유리로 덮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태계의 물질 순환과 에너지 흐름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이나 질소 같은 물질의 총량은 30억년 전부터 일정하게 유지돼왔다고 한다. 이들은 계속 형태를 바꾸며 순환하지만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에너지의 경우는 다르다. 에너지는 재활용되는 것이 아니므로 잠시라도 외부에서의 공급이 끊어지면 지상 생태계는 큰 영향을 받는다.
식물은 광합성이나 질소동화작용으로 살아가는 생물이다. 그래서 식물을 생산자라고 한다. 생산자가 합성한 물질의 일부는 식물 자신에게 쓰여져 다시 무기물이 돼 환경으로 돌아온다. 나머지는 먹이연쇄를 통해 초식동물, 육식동물로 운반돼 이용된 후 다시 환경으로 돌아온다.
에너지의 흐름은 이와 다르다. 생물 활동에너지의 원천은 태양에너지이지만, 직접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태양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는 고차소비자에게 전달되면서 그 양이 감소한다. 주간에 소실된 에너지는 재활용이 안되므로 생물의 생활을 위해서 태양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