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신경과 의사 스탠리 프루시너(55세)는 새로운 개념의 전염성 병원체인 프리온(prion)을 발견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프리온의 정체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은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뇌질환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프루시너의 연구는 뇌질환의 병리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치료방향과 약품개발의 토대를 마련했다.
종래에는 모든 전염성 물질이 유전정보인 핵산(DNA나 RNA)을 가진 생명체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 등이 병원체로 지목되고 있었다. 광우병(소)이나 크로이츠펠트-야콥병(사람)과 같은 생물 뇌질환의 원인 역시 이런 관점에서 해석됐다. 의학계에서는 ‘슬로(slow) 바이러스’가 뇌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발병인자라는 것이 정설이었다.이들 질병은 대상동물만 다를 뿐 발병 메커니즘은 동일해 뇌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면서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는 공통점을 가진다.
프루시너는 1972년 자신의 환자 중 한명이 크로이츠펠트-야콥병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이 분야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병에 걸린 동물의 뇌에 이상한 단백질이 축적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정상 단백질이 어떤 원인에 의해 비정상적인 구조로 변하면서 신경세포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프루시너는 1982년 이 단백질을 ‘프리온’이라고 명명하고, 이것이 광우병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생기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알츠하이머병, 파킨슨씨병 등의 원인이라고 학계에 보고했다. 프리온이란 ‘단백질로만 구성된 전염성 입자’(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라는 말의 영어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자기증식하는 단백질
핵산이 없는 ‘단백질로만 구성된 전염성 입자’라는 개념에 대해 많은 과학자들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프리온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처음에는 작은 바이러스처럼 외부로부터 유입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러나 1984년 프루시너는 프리온을 만드는 유전자가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 존재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사람의 경우 20번 염색체에 이 유전자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유전자에 어떤 일이 벌어져 뇌질환이 생기는 것일까. 프리온에는 두가지 종류, 즉 질병을 유발하는 형태와 정상적인 형태가 있다. 만일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질병 프리온’이 만들어지면 뇌질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질병 프리온’이 ‘정상 프리온’과 접촉하면 보다 안정된 형태로 전환된다. 또 연쇄적으로 정상 프리온의 구조를 변화시켜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간다. 이 ‘질병 프리온’의 구조는 매우 안정적이어서, 유기용매나 1백℃ 이상의 고온에서도 잘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점들이 많이 남아 있다. 첫째 프리온 유전자를 제거한 실험용 쥐는 외관상 정상이었다. 즉 ‘정상 프리온’이 쥐에게 필수적인 단백질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경계에서 정상적인 프리온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둘째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의 경우 85-90%의 환자에서 프리온 유전자의 구조가 정상인과 전혀 차이가 없다. 광우병에 걸린 소에서도 돌연변이 유전자의 존재가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유전자의 돌연변이 없이 ‘질병 프리온’이 감염되는 메커니즘이 밝혀져야 한다. 셋째 현재까지 발견된 ‘질병 프리온’의 종류는 15종류 이상이다. 이 ‘질병 프리온’이 각각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다른 생리작용을 보이는지 밝혀져야 한다.
아직까지 많은 학자들은 뇌질환에서 프리온이 중요한 역할은 하지만 직접적인 병원체는 아니라고 믿고 있다. 앞으로 계속적인 연구를 통해 여러 의문점이 밝혀진다면 또하나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