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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레스' 없으면 '디제라티' 아니다.

사전에 없는 인터넷 신조어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스팸(spam)이란 단어와 심심치않게 조우한다. 영어사전에는 돼지고기 통조림 상표 이름이라 나와 있는데, 이 뜻만으로는 이를 테면 'don't spam me!'란 글은 해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정도도 몰라서는 '컴맹', 혹은 '넷맹'이 아님을 아무리 우겨도 소용없다. 명실상 부함 '네티즌'이 되기엔 좀더 '내공'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동사와 명사로 두루 사용되는 스팸이란 단어는 과도한 자료를 흘려보내 특정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을 깨는 행위를 이르는 신조어다. 이를 테면 우리나라 PC통신의 ‘플라자’란 등에 곧잘 벌어지는 ‘도배’처럼 특정 뉴스그룹이나 여러 뉴스그룹을 자신의 글로 가득 채운다거나, 광고성 메일을 무차별하게 보내는 행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때문에 종종 스팸은 쓰레기, 혹은 쓰레기와 같은 행위와 동일한 의미로도 이해되곤 한다. 따라서 내게 스팸하지 말라는 말은 ‘쓸데 없는 메일을 보내지 말라’는 뜻.
 

인터넷 신조어를 나타내는 삽화.


‘달팽이 우편’은 이제 그만

컴퓨터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20세기 막바지는 이들과 관련된 용어로 뒤덮여 있다. 아둔한 친구에게 “CPU가 낮으면 메모리라도 많아야지”라는 식의 농담이 술술 튀어나오는가 하면, ‘기억’보다 ‘저장’이란 단어가 훨씬 적확한 의미로 전달된다.

여기에 요 몇년 사이 폭발한 인터넷 붐은 변화의 불길에 기름을 부어놓았다. 실체조차 불분명한 사이버 스페이스가 리얼 스페이스(real space)에 버금가는 공간으로 대접 받으면서, 이곳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 오히려 실제 세상으로 전이되는 아이러니도 일어나고 있다.
급기야 올 여름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된 웹스터 대학사전에 ‘디제라티’라는 단어가 당당히 수록됐다. 디제라티란 디지털(Digital)과 지식계급(Literati)의 합성어로, 컴퓨터 인터넷 등 디지털 문명에 박학한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

인터넷 시대의 대표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자리잡은 e메일과 관련해 새로 등장한 단어도 눈에 띈다. ‘달팽이 우편’(snail mail)이란 순식간에 전달되는 전자우편에 비해 도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종이 편지를 이르는 말. 실제 주소는 snail address라 부른다. 일부 미국인 중에는 US MAIL 대신 US NAIL이라 쓴 패러디 봉투나 포스터를 사용하기도 한다.

네티즌들 사이에 퍼져 있는 은어는 몇가지 범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경우는 단어 줄이기. 문자의 구어화로 풀이되는 이 현상은 채팅방에서 ‘안녕하세요’가 ‘안냐세요’로 바뀐 것과 같은 이치다. e메일 주소(email address)를 줄여 아예 ‘이드레스’(eddress)라 부르는가 하면, ‘~이 되고 싶다’는 뜻의 ‘want to be’를 줄이고 명사화해 ‘워나비’(wannabee)라 표현하기도 한다. 워나비는 원래 대중 스타의 의상이나 어투, 행동 등을 따라하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특히 해커(hacker, 줄여서 haqr)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부를 때 사용한다.

단어의 앞글자만을 딴 두음문자가 늘어난 것도 말 줄이기 범주에 든다. html이니 url이니 irc니 하는 인터넷 기술 용어에 익숙하다면 작은 사무실(Small Office), 자택 사무실(Home Office)의 머리글자를 딴 소호(SOHO)란 단어가 전혀 낮설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채팅 중 IRL(in real life), IMO(in my opinion), BTW(by the way) 등의 알파벳 만으로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한다.

아예 단어의 의미를 바꾸거나 특수 분야에서만 사용하던 용어를 일반어로 사용하는 것도 흔하다. 힌두교의 교사를 이르는 구루(guru)는 인터넷이나 컴퓨터의 '고수'를 이르는 말로 바뀌었으며, 가짜를 이르던 형용사 bogus는 '한심하다'는 의미가 추가돼 bogosity, bogoid, bogish 등 사전에도 없는 파생어를 만들어냈다.

알파벳 외에 키보드에 표시된 기호(아스키 코드)를 이용해 다양한 의사를 표시하는 스마일리(smilely)는 이같은 변화가 말 뿐만 아니라 문자 영역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모티콘(emoticon : emotion과 icon의 합성어)이라고도 불리는 이들 기호는 이미 책 한권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학자들의 어려운 설명을 빌리지 않는다 해도 언어는 한 시대의 산물이다. 또한 언어를 모르고 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 집단에서 통용되는 은어와 속어가 구성원을 가깝게 하는 핵심 도구 노릇을 하듯이, 사이버 스페이스의 번성과 함께 등장할 신조어들은 이 공간 내의 새로운 인간 관계에서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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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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