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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맥커리의 ‘진실의 순간’

대자연과 교감하고 눈빛에서 영혼을 읽다

초록 눈빛 ‘아프간 소녀’를 찾아서

1980년대 중반, 스티브 맥커리는 옷 속에 필름을 몰래 숨겨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분쟁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람들을 담았다. 그는 파키스탄 난민촌에서 짙은 초록색의 눈을 가진 소녀를 만났다. 아직 13살이 되지 않아 얼굴을 가리기 전이었다. 맥커리는 두려움이 어린 맑은 눈동자와 굳건히 다문 입술에 매력을 느끼고 소녀를 사진에 담았다. 이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표지로 실렸고, 소녀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을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소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찾았다. 17년 만에 잊을 수 없는 초록 눈의 여인, 샤르밧 굴라를 찾아냈다. 그때까지 자신이 그 소녀라며 나타난 가짜 여성이 많았기 때문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측은 미국연방수사국(FBI)의 도움을 받아 홍채와 얼굴특성 (눈썹, 코, 입술, 턱)을 분석했다. 또 미국 국제공항과 정부에서 수배자를 판별할 때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얼굴 데이터베이스 35만 개를 비교해 결국 샤르밧 굴라가 사진 속 소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외딴 지역에서 남편과 딸 3명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자기 얼굴이 잡지와 책 표지, 포스터, 양탄자에 실릴 만큼 유명인사가 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슬람 문화와 관습에 따라 베일과 부르카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았기 때문이다. 맥커리는 꿰뚫어볼 듯 맑았던 눈동자에서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변한 그를 다시 사진으로 담았다.

어떻게 낯선 사람들에게서 가장 진실한 눈빛을 담아낼까. 스티브 맥커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당신이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린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것이고, 그때 그들의 영혼이 사진 속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람들이 눈빛으로 진실을 전한다.

카메라 렌즈에 비치는 그의 행적

스티브 맥커리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분쟁 지역만 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걸프전 현장에도 있었고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당시에도 현장에 있었다. 모두가 위험한 곳이라며 절대 가지 않는 곳, 그렇지만 누군가는 들어가 역사적인 기록을 남겨야 하는 곳만 찾아다닌 셈이다. 그만큼 맥커리는 수많은 일을 겪었다. 그는 두 번이나 실종됐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체포돼 쇠사슬에 묶이기도 했고, 슬로베니아에서는 비행기가 추락해 죽을 뻔했으며 인도에서는 낡은 옷을 입고 난민 무리에 섞여 아프가니스탄에 밀입국을 하기도 했다.

1979년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아무도 그곳에 잠입하거나 빠져나올 수 없었다. 유일하게 맥커리만 뉴욕타임스와 뉴스위크,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언론에 사진을 잔뜩 실을 수 있었다.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그는 ‘이성적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역사적인 순간과 그것을 직접 겪는 사람의 표정, 그리고 문화적인 차이를 카메라로 찍었다.그래서 맥커리의 작품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소중한 장면이 많다. 베일과 부르카로 온몸을 감아 눈만 내놓고 다니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인들이 스니커즈 신발을 고르는 모습이라든가, 노란 모자를 쓴 시크교도 어린이들이 수업을 받는 모습, ‘ㄱ’자 모양의 기다란 막대 끝에 앉아 물고기를 낚는 스리랑카의 청년들의 모습은 꾸밈없이 사실을 담은 맥커리의 사진에서만 볼 수 있다. 맥커리가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접할 때마다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친근하게 섞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지역적인 이유로 절제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맥커리의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서구문명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 느껴진다.

먼지 폭풍 속 노랫소리와 홍수 건너는 미소

나무를 뒤흔들 정도로 강한 모래 폭풍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어두컴컴하고 으르렁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비가 내리지 않은 지 벌써 몇 달째. 농사도 문제지만 당장 먹고 씻는 데 쓸 물이 없다. 붉은 옷을 입은 여인들은 서로 헤어지지 않기 위해 꼭 붙들고 거센 모래 바람을 견뎌낸다. 그들은 비를 내려달라고 기원하는 노래를 부르며 두려움을 떨쳐버린다.

인도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건조하고 더운 여름이 지속된다. 사막에서는 모래 폭풍이 불 만큼 건조하고 황량해진다. 맥커리는 사람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대자연 앞에서 삶이냐, 죽음이냐 기로에 섰지만 노래를 부르며 자연의 맘을 달래는 여인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여름이 지나면 건조하고 추운 겨울(10월~이듬해 2월)이 오기 전에 장마(6월~9월)가 시작된다. 바로 몬순 때문이다. 아라비아 해에서 발생한 수증기의 흐름이 인도양과 벵골 만으로 들어오는 남서해양풍의 영향으로 장마를 내린다. 벵골 만 주변에서는 특이한 열대성 저기압이 발생해 매년 그 지역을 무섭게 강타한다.

맥커리는 인도 곳곳에서 몬순의 흔적을 담았다. 역시 자연의 칼날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한 노인은 자기 밥줄과 마찬가지인 재봉틀을 어깨에 메고 장마로 목까지 차오른 물을 건넌다. 매년 찾아오는 힘들고 고된 삶이지만 노인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맥커리의 사진이 꾸밈없이도 아름다운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 속에 들어가 가장 평범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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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사진 어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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