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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란 과학소설을 읽어보았는지? 그 책에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엄청나게 거대한 우주선이 등장한다. 한 나라의 영토를 뒤덮을만한 거대한 외계인 우주선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하늘을 뒤덮자, 태양을 볼 수 없게 된 정부는 인종차별 정책을 포기해야 했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와 달리 ‘유년기의 끝’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인간의 잠재된 힘이 완전히 발현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아무튼 외계인이 선하건 악하건 간에 우리는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빛까지 차단할 정도의 거대한 우주선이라니? 그런 우주선이 1미터 움직이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지 생각해 보라. 또 그걸 제작하려면 얼마나 많은 금속이 필요한지도.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진짜 워프 항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날 갑자기 밤하늘에 찬란한 빛이 뿜어지더니 수십기의 외계인 우주선이 출현했던 것이다.

우주선들은 지구를 빙 둘러싸더니 천천히 하강했다. 물론 그 와중에 인류가 공들여 하늘에 띄워놓았던 우주정거장, 인공위성, 천체망원경 등은 깡그리 고철 부스러기로 변하고 말았다. 그중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원대한 야심을 품고 쏘아 올렸던 대규모 태양전지판이 박살난 것은 정말 통탄할 노릇이었다. 우주선들은 점점 더 내려오더니 마침내 지구의 거의 대부분을 암흑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은 우왕좌왕 하면서 불안에 떨었다. 만약 외계인이 악의를 품고 있다면? 각국 정부는 외계인이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파악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접촉을 시도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 음악, 그림, 손짓발짓 등이 다양한 주파수를 통해 우주선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우주선에서는 아무 응답도 없었다. 인도 정부는 요가 수련자들을 초청해 텔레파시로 대화를 하려고 했고, 캐나다 정부는 돌고래의 울음을 녹음해 틀어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원로 코미디언 이주일 선생이 나와, 고등한 생명체만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웃음과 해학을 통해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주선은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강경파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외계인도 ‘별 거 아니다’였다. 우리에게는 미사일, 레이저 같은 첨단 무기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각국의 군은 일급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대화의 시도냐 선제 공격이냐 하는 공방이 계속되고 있을 때, 마침내 우주선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더니, 어느 순간 지구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우주선들이 일제히 불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사람들은 우주선의 바닥이 열리면서 구멍이 송송 뚫린 커다란 원통이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즉시 사람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에선 그런 원통을 통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광선이 발사되지 않았던가.

각국 정부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일제히 공군기를 출격시켰다. 그리고 몇번의 경고 방송이 있은 후,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물론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그 미사일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설마 외계인이 그 정도 대책도 없이 침입했을까. 그들의 예상대로였다. 푸른 광선이 번쩍 하더니 미사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뒤이어 사용된 온갖 무기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 대책을 고심하던 각국 정부는 마침내 핵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때였다. 우주선 바닥에 무수히 튀어나온 원통에서 뭔가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노란색 액체였다. 액체는 마치 물뿌리개로 화초에 물을 주듯이 지구 전체에 쏟아져 내렸다. 말하자면 그것은 노란색 비였다. 사람들은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비는 며칠 동안 계속 내렸다. 과학자들은 신속하게 그 비의 성분 분석에 착수했다.

한국 정부. 관료들이 모여 대책을 숙의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흰 실험복을 입은 고 박사가 황급히 들어왔다.

“지금 막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요? 어떻습니까?” 대통령이 다급하게 묻자, 고 박사는 다소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할지 간단히 말하면 그건 일종의 항생제입니다.”

“항생제요?”

“네. 자세한 성분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만, 현재까지 분석된 걸 보면 꽤 강력한 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세균과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억제하는 걸로 밝혀졌어요. 정말 획기적인 약입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이걸 가장 먼저 분석하는 사람에게 특허권 같은 걸 주는 게 어떨까요?”

“쓸데없는 소리 마시오. 사람에겐 해가 없습니까?”

“지금까지는요. 딴 생물에겐 거의 영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획기적인 거라고 “

“그만!”

비는계속 내렸다. 인체에 해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자, 정부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비가 그치고 나면 그들이 약을 살포하는 이유가 밝혀질지도 몰랐다. 사실 별 뚜렷한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항생제를 만들 수 있는 외계인에겐 세균전도 소용없을 게 뻔하지 않은가.

2주일이 지나자 드디어 비가 그쳤다. 뒤이어 우주선에서 전파를 보내왔다. 놀랍게도 그것은 한국말이었다. 지구 대표들과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각국 대표들이 교통이 통제된 서울의 광화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외계인이 한국말을 사용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우주선에서 원반형 소형 비행정이 튀어나오더니 사람들 앞에 내려앉았다. 사람들이 긴장한 채 지켜보는 가운데 비행정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두명이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외계인들도 깜짝 놀란 듯했다. 그들은 재빨리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인간이잖아요?”

“정말! 그것도 나체였어요.”

그랬다. 외계인은 인간의 남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에 다시 문이 열리고 외계인이 걸어나왔다. 사람들은 멍청한 얼굴로 눈만 깜박였다. 외계인이 옷을 입고 나타났던 것이다.

외계인들은 굳은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남자 쪽이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소. 우선 이것이 우리의 본 모습이 아니란 걸 밝혀두겠소. 지구인이 받을 충격을 우려해서 지구인의 모습을 했다는 걸 이해하길 바라오.”

매우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일본 대표가 어정쩡하게 질문했다.

“그런데 지구인의 모습은 어떻게 알았죠?”

“지구인이 보낸 우주선에 들어 있었소. 금속판에 벌거벗은 인간 둘이 새겨져 있더군요. 그걸 본 우리들은 지구인이 옷 없이 사는 종족이라고 생각했던 거요.”

미국 대표는 오래 전에 그런 금속판을 보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게 칼 세이건의 부인이 만든 거였던가?

“인사는 한 걸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소. 우리가 왜 이 먼 지구까지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날아왔는지 아는 사람 있습니까?”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알 턱이 없지 않은가. 그러자 외계인들은 인상을 썼다.

“역시 지구인은 음흉하군. 다 알고 왔는데 왜 시치미를 떼는 거요?”

“무슨 뜻인지 통 모르겠군요?”

“정말 이럴 거요? 좋소. 내가 말하지. 당신들 지구인은 전 우주를 정복하려고 기도했소. 그래서 우주 곳곳으로 우주선을 날려보낸 게 아니오?”
“그게 아닙니다. 그건 좋은 뜻으로 보낸 겁니다. 지성을 가진 종족끼리 만나 “

“닥치시오! 그렇다면 왜 우주선마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실어보낸 거요? 그 생명체들이 전 우주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줄 아시오? 은하계의 한 별에서는 생명체들이 거의 전멸할 뻔했소. 또 딴 별에서는 그것들이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기 시작했고. 그런데도 뻔뻔하게 변명을 한단 말이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입니다. 우린 그런 걸 실어보낸 적이 없습니다.”

논쟁은 계속되었다. 외계인은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우주선들이 전 은하계 종족들이 지구인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차하면 지구 자체를 없애버리겠다고 경고했다. 지구인들은 외계인들이 왜 그런 오해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한국 대표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이제 알 것 같군요.” 그가 입을 열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우주왕복선이 지구로 귀환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뭡니까?”

한국 대표가 미국 대표에게 물었다.

“그야 표면을 세척하는 거죠. 혹시 외계 생물체가 묻어왔을까봐요.”

“맞습니다. 하지만 우주선을 쏘아 올릴 때는 그렇게 안 하죠. 그러니까 우주선 내부에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제작할 때 누군가 감기 걸린 사람이 그 안에서 재채기를 했을 수도 있죠.”

그렇게 해서 오해는 풀렸다. 외계인은 항생제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고, 지구인들은 앞으로 우주선을 보낼 때 반드시 우주선 내부의 생물들을 사멸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외계인은 떠났다. 그들이 다시 지구에 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너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막 떠나려는 외계인에게 미국 대표가 물었다.

“왜 한국말을 씁니까? 지구에서는 영어가 공용어인데?”

“우리는 가장 과학적인 말을 사용하오.”

◆용어설명

워프항법/과학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초광속 여행방법의 일종. 우주 공간이 중력으로 휘어있는 것을 이용해 빛의 속도 이상으로 가속하는 기술을 말한다. 영화 '스타트렉'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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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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