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지식을 암기하거나 문제를 푸는 기계가 아니다. 이제 학생들을 재미있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또 측면사고를 통해 사고력과 창의성을 높여주어야 한다. 대화식 교육을 통해 측면사고를 돕는 강의의 한 예를 살펴본다.
일반물리학은 비단 물리를 전공하는 학생뿐 아니라 이공계 모든 분야의 학생들이게 매우 중요한 기초과목이다. 이 과목을 잘 배우고 이해하면 전공과목을 원활하게 습득하고, 향후 각자의 전공분야에서 폭넓고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하는데 초석이 된다. 그래서 선진국의 유명대학에서는 으레 노벨수상자나 그 대학에서 강의를 가장 잘하는 교수가 일반물리학을 가르친다.
일반물리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학생들이 재미있어 할까? 나아가 사고력과 창의력을 배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수백년 전부터 알려진 물리법칙들을 가르치면서 문제풀이에 그친다면 학생들에게 과거의 지식만 전달하고 문제 푸는 학생들에게 과거의 지식만 전달하고 문제 푸는 기계적 능력정도만을 향상시킬 것이다. 결국 일반물리학을 통해 학생들에게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사고력과 미래의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창의력은 키울 수 없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일반물리학 강의가 고등학교 물리의 연장선에서 조금 넓은 범위의 지식을 전달하고 좀 더 어려운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가르쳐주는데 그치고 있다.
KAIST의 '고급일반물리' 강의는 이같은 기존의 패턴을 탈피해 학생들에게 물리학의 제반 개념을 이해시키고 물리학의 법칙들을 발견하기까지의 논리적 사고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교재는 본 강의의 취지를 그대로 반영한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The Feynman Lecture on Physics)가 사용된다. 파인만은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고 칼텍(Caltech) 교수를 지냈던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다. 그는 전통적인 일반물리 교육이 학생들로 하여금 물리에 흥미를 잃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반물리 강의의 대변혁을 일으키기 위해 2년간 자신이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3권의 책으로 집필했다. 파인만은 본인의 어떤 연구 업적보다도 물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자부할 만큼 이책에 많은 애착을 가졌다.
관성과 습관, 엔트로피와 진화론
필자는 현재 나름대로 개발한 몇가지 독특한 교육방법으로 '고급일반물리'를 강의하고 있다. 수업은 항상 강의내용과 직결된 시각적 데모(demo)나 비유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는 간단한 실험장치, 보조자료, 학생, 심지어는 필자 자신이 도구로 동원된다. 학생들의 호기심과 기대를 유도하고, 에드워드 드 보너(Edward de Bono)가 창안한 이른바 '측면사고'(Lateral thinking)로 사고력과 창의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다.
둘째, 어떤 물리법칙의 결과를 설명하기 보다는 그 법칙을 얻기까지 역사적으로 과학자들이 어떤 고민과 논리적 추리과정을 거쳐 결과에 도달했는지에 강의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논리적 사고력과 더불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과학자의 열정과 인내를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력의 법칙을 강의하면서 "두물체간의 힘이 두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법칙"이라는 결과만 설명한다면 어떨까. 그러면 학생들은 물리공식를 하나 배우는데 그칠 것이다. 중력법칙의 결과는 물론, 이 법칙을 발견하기까지 지동설에 관한 코페르니쿠스의 과학적 신념, 외딴 섬에서 홀로 행성운동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구축한 브라헤의 끈질긴 열정, 방대하고 복잡한 데이터로부터 간단한 행성운동법칙을 발견한 케플러의 분석력, 그리고 사과가 떨어지는 예사로운 일에서 모든 물체 간의 만유인력을 찾아낸 뉴턴의 통찰력 등도 배워야할 중요한 내용이다.
셋째, 교수의 일방통행 교육(One-way education)을 가급적 지양하고 학생들이 교수와 함께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대화식의 양방향 교육(Two-way education)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학생들에게 강의 중에 자주 질문을 던지고, 또 질문을 하게끔 유도한다. 필자의 질문은 두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
첫째, 학생들이 평소 당연하게 여기는 물리적 사실이나 개념에 관해 '왜'라는 의문을 습관적으로 갖게끔 유도한다. 왜라는 의문과정에서 남이 해놓은 것을 확실히 이해하고, 오류도 발견하고, 나아가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물리적 개념이나 법칙을 일상생활이나 사회 현상에 적용해 보도록 한다. 관성과 습관, 브라운 운동과 주식시장의 주가, 엔트로피와 진화론 등. 이런 교육은 딱딱하기 쉬운 물리학에 대해 흥미를 유발하고 나아가 물리적 개념을 타학문에 창의적으로 응용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다음은 이런 관점에서 학생들이게 출제한 시험문제다. "점쟁이가 멀리 떨어진 사람의 미래뿐 아니라 현재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고 예언을 할 수 없음을 상대론으로 설명하라." 이 문제의 핵심은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는데 있다. 말을 바꾸면 4차원 시공간에서는 현재, 과거, 미래를 동시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물리학적으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곳에 있는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수 없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기존에 있던 물리적 진리의 틀을 벗어나 엉뚱하고 도전적인 생각을 갖도록 하고 있다. 새로운 발견과 발명이나 획기적인 과학적 발전은 바로 이 도전적 생각과 이를 실천하는 용기에서 연유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물리 교육은 물론 우리 교육의 대부분이 현재의 진리를 영원한 진리인 양 주입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런 교육은 학생들이 지닌 창의적 생각의 날개를 꺾는다. 그래서 "법칙이란 반증이 있으면 더이상의 진리가 아니다"(Law is not true anymore when it is disproven)란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도전적 사고의 태도를 키워주고 있다. 근 3백여년간 진실로 여겨져 온 뉴턴의 절대 시공 개념에 도전해 상대성이론을 정립한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계 거봉이 학생들 중에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보존은 일정하다는 것
이와 같은 필자의 교육방식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에너지 보존법칙'강의의 실례로 들어보고자 한다. 필자는 20개의 똑같은 구슬을 가지고 수업을 시작한다. 먼저 A,B,C세학생에게 나눠주고 각 학생이 가진 구슬을 합을 구하게 한다. 이번에는 A,B,C,D,E다섯학생에게 나눠주고 구슬의 합을 구하도록 한다. 간단한 비유이지만 학생들은 강의실 안에 있는 구슬의 합이 항상 '일정'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정'하다는 것은 바로 물리학에서 '보존'(conservation)을 뜻한다.
자연현상을 기술하는 물리양 중에 보존되는 것이 여러가지 있다. 구슬 한개의 단위에너지라 가정하고 A,B,C,D,E각각을 다른 에너지형태라고 간주하면 구슬수의 합이 일정(보존)하다는 것으로부터 '에너지보존법칙'을 '측면사고'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다음 역사적으로 발견돼온 운동에너지, 위치에너지, 열에너지, 전기에너지, 질량에너지 등을 학생들과의 문답을 통해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왜 운동에너지는 mv²아니고 $\frac{1}{2}$mv²으로 정의했는가"등의 근원적인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암기하고 있는 지식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학생들과의 문답을 통한 양방향 강의로 학생들의 사고력을 고조시키다 보면 예리하고 도전적인 질문이 나오기 마련이다.
언젠가 한 학생이 "에너지 보존법칙은 불변으 진리인가, 아니면 우리의 믿음인가"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필자는 여기에 대해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믿음이 지금껏 객관적으로 증명됐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진리이지만, 여러분이 만약 반증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있다면 진리가 아닐 수 있다"고 대답한 바 있다. 도전적인 생각이야말로 강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과정을 알면 결과도 알 수 있는 법
봄 학기 수강신청을 할 때다 수강할 과목을 찾던 중 '고급일반 물리Ⅰ'이 눈에 띄었다. 평소 물리에 관심을 가졌고 나중에 물리학을 전공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 과목을 신청했지만 '고급'이라는 말 때문에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한학기를 보낸 지금 그때의 선택은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급일반 물리Ⅰ'수업은 어떠한 새로운 법칙을 발견한 사람이 그 법칙을 생각해내기까지의 과정을 잘 알려줬다. 과정을 알면 결과도 알 수 있는 법. 특별히 알고자 하지 않았는데도 과정을 더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결과를 알게 됐다. 수업은 늘 곤혹스럽게 느껴지던 수식을 외우기보다 그 수식이 유도되는 과정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새로운 단원을 배우고 나면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파인만이 슨 교재를 읽어보고 교수님의 강의를 다시 되새겨보면서 소화해냈다. 그럴 때마다 정말로 상쾌하고,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좋은 기분이 들었다. 앎의 즐거움이었을까. 어쩌면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의 입장이 돼 그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발견의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왜?"
"어떻게 해서?"
'고급일반 물리Ⅰ'를 공부하면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항상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 생겼다. 가을학기 수강신청 기간이 다가왔을 때 나는 강의 시간표에서 '고급일반 물리Ⅱ'를 발견하고는 급히 빨간 볼펜으로 표시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