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전국연합 모색하는 고교과학서클

현재29개 서클, 회원 1천여명

학교가 뒷전으로 미룬 '열린교육'이 학생 스스로의 힘으로 피어나고 있다. 친구들끼리, 서클과 서클이 연합해 만든 과학탐구모임 '전국고등학교 과학서클 연합'이 바로 그것이다.

고등학생들이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7월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폭력서클 ‘일진회’와 ‘파워서클’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게 또 무슨 ‘조직’인가 하고 걱정이 앞서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알고 보면 우려는 이내 대견하다는 쪽으로 기운다.

전국고등학교과학서클연합(USC: United Science Clubs)은 전국 26개 학교, 29개 서클이 연합한 순수한 과학탐구 모임이다. 지난해 10월 자양고 과학반인 ‘미립’(경험에서 얻은 묘한 이치라는 뜻을 지닌 우리말)을 주축으로 8개 학교 과학반 학생들이 PC통신을 통해 만났다. 과학축제와 과학반 활동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과학교육은 입시 위주에다 이론 중심입니다. 실험과 관찰은 뒷전으로 밀려 과학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과학반 활동도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학생 스스로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과학축제의 경우 잘하는 학교에서 손과 머리를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과학서클끼리 서로 돕기로 했던 것이 의외로 반응이 좋았던 것입니다.” 2기 회장 장동선군(안양고 2학년)의 말에 따르면 현재 29개 서클, 1천여명의 회원이 USC에서 활동 중이다.

“각 학교마다 과학반 활동은 매우 특색있게 운영됩니다. 오산고의 ‘PLasma’는 로켓 발사에 일가견이 있고, 안양고의 ‘GOS’(Guys Of Science)는 뇌사, 시간여행, 진화론 등 재미있는 과학주제를 선정해 토론대회를 자주 열고 있습니다. 또 성남서현고의 별한서리(별을 서리해온다는 뜻)를 비롯해 천체관측을 잘하는 학교들도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과학반이 활성화되지 않은 학교에선 USC에 자문을 구하고 있습니다.” ‘행동대장’ 직책을 지닌 이원대군(자양고 2학년)도 USC 활동의 의미를 거들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학생들은 저마다 꿈과 관심이 다르다. 천체관측을 좋아하는 공인식군(자양고 2학년)은 학교 망원경을 이용해 자주 밤하늘을 본다. 그러다 궁금하면 회원들에게 물어보고, 잘 아는 내용은 친구들을 가르친다. 장동선군은 우주의 시작과 끝 등 다소 철학적인 과학영역에 관심이 많고, 이원대군은 ‘X파일’에서 볼 수 있는 UFO와 생명체 문제에 빠져 있다. USC는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토론의 장이 되기도 한다. 또 “과학을 좋아하는 친구들까지 사귈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김종수군(안양고 2학년)은 말한다.

USC는 올 1월 5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가평에서 첫 야외모임인 천체관측회를 가졌다. 이 날의 지도교사는 평소 별자리를 잘 알고 관측경험이 많은 학생들. 낮에는 태양을 보고, 밤에는 달, 행성, 별자리 등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배웠던 천체들을 직접 관측했다. 특히 헤일-밥혜성은 관측회의 스타였다. 멋진 꼬리를 드리운 혜성은 별을 처음보는 학생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두번째 모임은 2월 말 서울대에서 있었다. 서울대 교수들이 마련한 대중과학강좌를 이들이 놓칠리 없었다. 그리고 3월 성남 서현고에서 개최된 천체관측에는 10여개 학교 서클이 참석했다. 이날 학생들은 USC 모임처럼 좀더 성장한 헤일-밥혜성을 봤다.

매달 회지를 만드는 일은 USC의 중요한 활동이다. 그동안 소식지를 통해 소개됐던 정보들을 보면 별자리 관측법과 성도, 도서관 정보, 과학관 전시회, 과학계 소식, 과학행사 등 다양하다. 또 회지에는 각 학교 과학반 활동과 축제 등이 소개되고 있다.

서울무학여고의 ‘MCC’(무학 화학반의 약자)는 모형항공기 날리기 전국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고, 송곡여고의 ‘손비’(‘송곡의 나비’에서 부르기 쉽게 고친 이름)는 15년 역사를 지닌 생물반이다. 10년 역사를 지닌 서울잠실고의 JUST는 매년 과학캠프와 과학축제를 개최하고, 서울양천여고의 ‘C 물비소시’(화학반, 숨김없이 밝혀보라는 뜻) 역시 매년 가을축제인 ‘해가람제’에서 화학실험을 선보인다. 최근 화제는 부천고의 ‘조가줍기’(겸손하게 과학하는 마음)가 삼삼오오로 활동하다가 교장으로부터 정식 과학서클로 승인을 받은 것.
 

USC의 운영위원들. 왼쪽부터 김종수, 장동선(회장), 공인식, 이원대.


지도교사 도움 절실해

그런데 친구들과 더불어 과학탐구에 흠뻑 빠져있는 학생들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다. 교사들과 학부모의 반대로 활동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회원들 중 절반 정도는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대학입시가 우선이라는 것이죠.” 이원대군은 성적을 떨어뜨리지 않겠다고 각서를 씀으로써 부모의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선생님의 반대에 맞섰다가 과학반이 해체된 학교도 2곳이나 됩니다. 말로는 과학발전을 외치지만 학교에선 참된 과학교육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동선군과 USC 회원들은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USC가 안고 있는 가장 절실한 문제는 지도교사가 없다는데 있다. “수백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임을 가진다는 것은 순수한 취지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를 이해해줄 어른이 한분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도교사가 있다면 과학탐구 모임은 더욱 활성화되고, 부모님들도 걱정을 더실 것입니다. 물론 저희를 지도해줄 선생님은 우리들 스스로 탐구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존중해 주실 분이어야 합니다.” 오늘 USC 운영위원들이 과학동아를 찾은 것은 자신들을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줄 훌륭한 과학교사를 소개받기 위해서다.

USC가 세운 앞으로의 계획은 소박하다. 방학과 연휴를 이용해 천체관측회와 야외생태탐사회를 가지고, 시사적인 과학주제를 공동 연구해 발표회를 가지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PC통신 소모임방을 통해 과학토론도 벌일 예정이다. 특히 교육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지금까지의 과학교육 행사는 학생들의 자유의사를 묻지않고 동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면 과학교육 행사도 빛나고 USC에 대한 인식도 좋아질 겁니다.”

과학동아는 USC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과학교사 모임인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한국자생식물협회’ 등의 협조를 구할 예정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홍대길 기자

🎓️ 진로 추천

  • 물리학
  • 천문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