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면 아기를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부부의 약 15%는 불임으로 고민하게 된다. 불임이란 임신 가능한 연령의 부부가 피임을 하지 않으면서 1년 이상 성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남의 정자로 인공수정
불임의 책임을 대부분 여성에게 미루는 사회통념과는 달리 아내 쪽에 문제가 있는 불임부부는 40%에 불과하며, 남편 혼자서 문제가 있는 부부 역시 40%에 이른다. 나머지 20%의 부부는 불임의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인데, 남녀 모두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불임부부의 80%는 다양한 생식기술의 발전으로 아기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남성불임은 대체로 정자의 이상에서 비롯된다. 정액 속에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이거나 정자의 숫자, 운동성, 모양이 비정상적인 경우에는 수정이 불가능하다. 난자 한개의 수정에 필요한 정자의 수는 정액 1mL 기준으로 2천만마리이다. 남자가 한번 사정하는 정액은 평균 3mL이므로 정자수가 최소한 6천만마리일 때 불임이 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남자는 2억-5억마리의 정자가 들어 있다. 또한 정자가 기형이거나 활동성이 미약하면 수정이 어렵다.
정자수가 적은 남자는 인공수정(AI)이 권장된다. 성교 대신에 기계적인 장치를 이용하여 정자를 자궁 안에 넣어 수정되도록 하는 과정을 인공수정이라 한다. 1785년 이탈리아에서 수캐의 정액을 암캐의 질에 넣어 수정시킴으로써 최초의 인공수정에 성공했다.
젖소나 돼지 등 가축은 대부분 인공수정에 의해 새끼를 낳는다. 1949년에는 정액을 냉동시켜 오래 보존한 뒤에 다시 해동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인공수정은 획기적으로 도약했다. 사람의 정자는 액체질소의 용기 안에서 섭씨 영하 1백96도로 냉동되어 수년간 보관이 가능하다. 따라서 1954년부터 정자은행이 출현하여 불임부부들에게 임신의 기회를 부여했다.
인공수정은 남편의 정자에 의한 방법(AIH)과 제3자의 정자에 의한 방법(AID)으로 나뉜다. 남편의 정자수가 적을 때에는 여러 차례 수음을 하거나 성교 도중에 특수 콘돔을 사용하여 수집한 정자를 냉동보관해두었다가 적절한 시기에 아내의 질 안으로 넣는다. 특히 정관수술을 앞둔 남편은 정액을 정자은행에 보관해두고 훗날 아기를 가질 필요가 생기면 이 정자로 아내를 수정시킨다. 1997년에는 영국에서 남편이 사망하자 미망인이 정자은행에 보관된 남편의 정자를 요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침내 죽은 사람이 아내를 임신시키게 된 것이다.
남편이 무정자증이거나 유전병을 가진 경우 부부의 합의하에 제3자의 정자로 아내를 임신시킨다. 정자은행에서는 21-35살의 사내들로부터 정자를 받는다. 미국의 경우 정자의 주인은 대부분 돈이 필요한 의과대학생들인데 1회 기증에 50달러를 손에 쥔다. 정자제공자는 여러 차례 기증을 하며 이 정자는 여러 여자에게 제공된다. 동일한 남자의 정액에 의해 수정된 여자들은 같은 지역에 살기 십상이므로 그들이 낳은 자식들은 자라서 결혼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호적상의 아버지는 다를 망정 혈연적으로는 절반이 같은 형제자매인 셈이므로 근친상간에 버금가는 결과를 빚게 될 소지가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17만2천명의 부인들이 인공수정을 한다. 출산율은 약 38%이다. 요컨대 매년 6만5천명의 아기가 인공수정으로 태어난다. 이중에서 3만명은 제3자의 정자로 잉태된 아이들이다. 미국인들은 해마다 인공수정에 1억6천5백만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여자가 불임이 되는 이유
여성불임의 주된 원인은 배란 이상, 나팔관 폐쇄, 자궁경부 점액 이상의 세가지이다. 불임부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검사가 배란상태의 확인이다. 매달 규칙적으로 월경이 나오면서 생리통을 느끼는 여성에게는 대개 배란이 일어나지만, 보다 확실한 불임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배란검사가 요구된다. 여자는 5개월 된 태아의 경우 7백만개의 난자를 만들 수 있는 세포를 갖고 있으나 태어날 때 2백만개로 줄어들며 사춘기에는 40만개가 남는다.
사춘기부터 난소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매달 한개의 난자가 완전히 성숙하여 난소 바깥으로 배출되고 약 1천개 이상은 완숙에 이르지 못하고 도중에 시들어서 사라진다. 따라서 40만개의 난자 중에서 0.1%인 4백개의 난자는 성장하여 배란이 되지만 나머지 99.9%는 쇠퇴해버린다.
난소 바깥으로 배출된 난자가 정자와 만나 수정되면 임신이 된다. 요컨대 가임기간이 사춘기부터 폐경기까지 30여년에 불과하고 가임능력이 35살 이후에 급격히 감소하는 것은 4백여개의 난자가 매월 한개씩 난소에서 배출되어 40대 중반에 모두 소진되기 때문이다.
나팔관 폐쇄는 가장 흔한 불임의 원인이다. 난관 또는 자궁관이라 불리는 나팔관은 배란된 난자와 사정된 정자를 받아들이는 곳인데, 수정란을 자궁으로 수송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나팔관이 혼전 성관계나 문란한 성생활 때문에 폐쇄되면 정자가 난자에 접근하지 못하므로 수정이 될 수 없다.
자궁경부에서 분비되는 점액은 배란기가 가까워지면 정자의 침투를 수용한다. 그러나 경부 점액이 비정상적이면 정자의 운동성을 저하시켜 정자가 점액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제 때에 나팔관에 도달하지 못해 수정이 불가능하다.
배란 장애인 경우 불임치료는 내분비계의 기능을 바로잡아주는 호르몬 처방으로 가능하다. 호르몬으로 배란을 유도하여 임신율을 높이는 것이다. 자궁경부 점액이 이상한 경우에는 항생제를 투여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남편 정액에서 비활동성 정자를 제거하여 운동성 정자가 증가되도록 처리한 다음에 자궁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으로 인공수정을 시도한다. 나팔관이 폐쇄된 불임은 나팔관을 복원하는 수술을 하여 치료하지만 수술요법으로 임신이 되지 않으면 최후의 수단으로 체외수정 시술(IVF)을 받아야 한다.
시험관 아기 시술
체외수정 시술은 난자를 채취하여 시험관 안에서 수정시킨 다음에 배아(embryo)를 자궁 안으로 이식하는 생식기술이다. 난세포가 수정된 후 처음 두달 동안의 개체를 배아라고 하며, 그 후부터 출생시까지는 태아(fetus)라 한다. 체외수정 시술은 나팔관 대신에 시험관에서 수정되므로 시험관 아기 시술이라 부른다.
체외수정 시술은 과배란 유도, 난자 채취, 체외수정, 배양 및 이식의 과정을 거친다. 여자가 한달에 배란하는 난자 한개를 사용할 경우에는 임신성공률이 낮기 때문에 호르몬 주사로 여러개의 난자가 동시에 배란되도록 유도한다.
두번째 단계는 난자의 채취이다. 여자의 배꼽 바로 밑에 작고 길쭉한 구멍 두개를 낸 다음에 한 구멍으로는 복부에 복강경을 집어 넣어 난소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른 한 구멍으로는 난소에 작은 바늘을 삽입하여 성숙된 난자를 빨아들인다.
채취된 난자는 영양분이 담긴 시험관 안에서 활동성이 좋은 정자와 수정된다. 수정란은 다른 시험관 속에서 약 이틀 동안 배양한다. 수정란은 처음 24시간 2개 세포로 분열되고 36시간 안에 4개, 2.5일까지 8개로 된다.
마지막 단계는 배아의 자궁내 이식이다. 4-8개의 세포로 분열된 배아는 질을 통해 자궁 안으로 이식된다. 이식되는 배아는 대개 3-5개이다. 여러개의 배아를 이식하는 까닭은 착상 가능성이 커져서 임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착상은 배아가 자궁의 벽을 뚫고 들어가 정착하는 과정이다. 시험관 아기 중에 쌍둥이가 많은 것은 여러개의 배아가 착상된 결과이다.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는 1978년 영국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루이스 브라운이라는 여자 아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서울 의대가 제1호 시험관 아기를 출생시켰다.
체외수정 시술은 나팔관이 폐쇄된 여성들뿐만 아니라 난소가 없거나 폐경기를 맞은 여자들에게까지 아기를 가질 기회를 부여한다. 타인의 난자를 받아 남편 정자와 체외수정시켜 배양한 배아를 자신의 자궁에 이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7년 4월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세계 최고령 출산기록이 갱신되었다고 보도했다. 63살 된 노파가 건강한 여아를 출산한 것이다. 이 할머니는 기증받은 난자로 남편 정자를 수정시켜 출산에 성공했는데, 나이를 속여 체외수정 시술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노파는 3년 동안 여러 차례 체외수정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술의 성공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시험관 아기 시술 성공률은 겨우 18%이므로 한번에 7천8백달러(1996년 기준)가 소요되는 시술을 대여섯번 되풀이해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만도 2만6천명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으며, 보조생식술(ART)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다.
미숙 난자 추출의 의미
난소에서 난자를 채취하여 시행하는 모든 시술을 보조생식술이라 일컫는다. 대표적인 생식보조기술로는 체외수정 시술을 비롯해서 생식세포 난관내 이식술(GIFT), 수정란 난관내 이식술(ZIFT), 미숙난자 추출법(IEH), 세포질내 정자 주입법(ICSI)이 손꼽힌다.
인간의 생식체계에서 임신성공률을 떨어뜨리는 가장 까다로운 과정은 착상이다. 완벽한 가임부부조차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배아가 자궁 벽에 착상되지 못하기 때문에 전체 임신 건수의 3분의 1 가량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체외수정 시술의 배아 역시 착상이 순조롭지 못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 한쪽 나팔관이 건재한 여자에 대해 GIFT와 ZIFT를 시행하였는데, IVF보다 착상 성공률이 2-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GIFT는 배우자(gamete), 즉 생식세포를, ZIFT는 접합자(zygote), 즉 수정란을 난관 안에 넣어주는 방법이다. GIFT는 난자를 채취한 뒤 남편 정자와 같이 섞어 복강경을 이용하여 난관 안으로 넣어준다. IVF에서와는 달리 생식세포가 시험관 대신에 나팔관에서 수정되므로 나팔관에서 생긴 배아는 자연임신에서처럼 자궁 안으로 스스로 이동한다. 착상률이 높아지는 이유이다.
한편 ZIFT는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뒤에 배아가 되기 전의 수정란을 나팔관에 삽입한다. GIFT에서처럼 배아가 나팔관에서 발생하므로 IVF보다 임신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GIFT는 1984년 미국에서 처음 성공했으며 1회 시도에 6천-1만달러가 들고 성공률은 28%이다. ZIFT는 1989년 벨기에에서 최초로 성공했는데 1회 비용은 8천-1만달러이며 성공률은 24%이다.
시험관 수정의 첫단계인 과배란 유도 과정에서는 성숙한 난자가 난소에서 한꺼번에 여러개 배출되도록 호르몬을 투여한다. 그러나 1991년 한국에서 연세대 의대 출신의 산부인과 의사인 차광열(車光烈, 1952-)박사가 호르몬 요법을 쓰지 않고 미성숙한 난자를 추출하여 실험실의 배양액 속에서 성숙시킨 뒤에 배아를 만들어 자궁에 착상시키는 IEH 시술에 성공했다. IEH는 사용된 난자의 성숙 여부가 다를 뿐 IVF와 시술절차가 동일하다.
미숙난자 추출법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미성숙 난자 채취가 난자은행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미숙난자는 성숙 난자보다 냉동보존에 잘 견딘다. 따라서 냉동난자는 냉동정자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여자들은 대개 35살이 지나면 임신능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신체는 임신을 감당할 능력이 있지만 난자가 늙어서 수정능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자들은 난자를 기증받아 체외수정 시술을 시도했으나 이제는 젊은 시절에 자신의 난자를 냉동보존해두었다가 나이든 뒤에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컨대 냉동난자는 냉동정자가 인공수정에 사용되는 것처럼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출산연령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미성숙 난자의 연구는 태아의 난소 조직과 연관되어 관심사가 되고 있다. 5개월 된 태아의 난소조직은 7백만개의 난자를 만들 수 있는 세포를 갖고 있을 만큼 미숙난자의 보고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직을 이용하여 난자은행을 설립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미숙 난자는 낙태 또는 유산으로 폐기된 태아의 난소에서 추출될 것이므로 세상에 한번도 태어나 본 적이 없는 태아가 미숙 난자를 사용할 시험관 아기의 친어머니가 되는 희한한 일이 예상된다.
자궁 빌려주는 여자
보조생식술은 미세조작술의 출현으로 진일보했다. 대표적인 것은 난자의 세포질 안에 정자를 찔러넣는 ICSI이다. 건강한 정자 한마리를 주사바늘처럼 생긴 유리관 안에 넣은 뒤 현미경을 보면서 난자 속으로 주입하는 기술이다. 정자 수가 적거나 운동성이 떨어져 정자 스스로의 힘으로 난자의 세포막을 관통할 수 없기 때문에 난자와 혼합해도 수정이 되지 않는 남자들에게 시술한다. 또한 사정능력이 없거나 무정자증인 남성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고환에서 정자를 생산하는 세포를 떼어내서 난자에 주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ICSI 아기는 1992년 벨기에에서 태어났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첫 아기 출산에 성공했다. 미국에서는 매년 수천건의 ICSI가 시도되지만 성공률은 24% 정도이며 시도할 때마다 1만-1만2천달러가 소요된다.
불임여성 중에는 난소가 건강하지만 자궁 절제나 심장병 등의 사유로 아기를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남편 정자와 자신의 난자로 체외수정을 하여 배아를 자신의 자궁 대신에 남의 자궁에 이식하면 자식을 볼 수 있다. 자궁을 빌려준 대리모가 시험관 아기를 낳아주는 것이다. 자궁이 없는 딸을 위해 친정어머니가 대리모가 되어 자신의 손자를 낳은 경우까지 있다.
그러나 자궁은 물론이고 난소까지 제거된 여자가 남편의 자식을 가지려면 대리모로부터 자궁과 함께 난자를 빌려야 한다. 남편의 정자로 대리모를 임신시켜야 된다는 뜻이다. 씨받이와 다른 점은 남편이 대리모와 육체 관계를 맺는 대신에 인공수정을 시킨다는 것 뿐이다. 아기와 유전적으로 절반은 관계가 있는 대리모로부터 아기를 사오는 셈이다. 두 경우 모두 아내는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21세기 중반에 인공자궁이 발명되면 모든 어머니가 임신과 분만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구경꾼이 될는지 모를 일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실인 ‘멋진 신세계’(1932)에 묘사된 아기제조공장이 현실화되지 말란 법이 없을 만큼 생식기술은 신의 영역에 거침없이 도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