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황새집에 초대받은 여우

왼손잡이 김씨의 하루

직립을 이룬 인류는 양손의 자유를 얻는 순간부터 오른속잡이와 왼손잡이 둘로 나누어졌다. 이 가운데 오른손잡이는 절대 다수를 차지하며 사회 구석구석을 자신들의 것으로 채워넣었고, 이에 따라 소수의 왼손잡이는 장애 아닌 장애를 겪고 있다.
 

왼손잡이 김씨 사진.


아침

왼손잡이에게도 새벽은 온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밤새 참았던 소변을 보기 위해 곧장 화장실로 갔다. 변기에 엉거주춤 서서 삼각팬티의 앞섶을 몇 번이나 훑었지만 헛손질이다. 팬티는 왼쪽으로 구멍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왼손이 먼저 나가는 본능적 몸짓, 오른손잡이 세상에 사는 왼손잡이의 애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하다가 기분을 잡친 김씨는 아예 팬티를 무릎까지 내리고 일을 보았다.

자동차

왼손잡이에게 운전 면허증 발급을 금하는 법률은 없다. 하지만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왼손잡이의 자동차 운전은 여러 모로 불편하다. 차 문을 여는데는 어느 손이든 상관없지만 시동은 반드시 오른손으로 해야 한다. 수동변속기의 기어는 오른쪽에 있다.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또 힘도 약한 오른손으로 기어를 변속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찰나를 다투는 위기의 순간에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보다 더 위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다. 왜냐하면 재털이가 오른쪽에 부착돼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

사무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옆 사무실의 부장을 만났다. 그가 반갑다고 손을 내민다. 김씨는 왼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오른손으로 부장의 손을 잡았다. 악수는 오른손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깜빡 잊어버린 순간적인 몸짓.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복도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았다. 자판기도 어김없이 오른쪽에 돈을 넣게 돼 있다. 자판기를 만들 때 아예 왼손잡이의 존재는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현대 과학의 총아라는 컴퓨터도 디자인의 기본은 오른손잡이를 위한 것이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과학의 총아 컴퓨터가 왼손잡이를 무시하면서 책상 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황새집에 초대받은 여우가 병 모양의 식기를 마주하고 앉은 기분이다. 포크를 잡고 병 속으로 집어넣어 음식을 먹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신경질을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할 것인가, 여우의 심사는 뒤숭숭하다.

자세히 살펴보라. 모니터나 몸체의 스위치는 전부 오른쪽에 있다. 특히 자판의 경우는 왼손잡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 ‘del’이나 ‘enter’ 등 주요 기능키가 모든 오른쪽에 붙어 있다. 숫자 입력 키패드도 오른쪽에 있다.

마우스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왼손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오른손잡이용 가위를 왼손에 잡은 것처럼 불편하다. 윈도 상에서 커서의 방향이 왼편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왼손에 마우스를 잡으면 작동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균형미를 잃고 만다. 데스크톱형의 컴퓨터는 플로피디스크를 넣는 드라이브가 항상 오른쪽에 있다. 이것도 왼손잡이에게는 영 불편하다.

화장실

아침부터 목청을 높이는 과장의 잔소리를 피해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앉았다. 물을 내리는 레버는 항상 오른쪽에 있다. 앉은 자세에서 왼손으로 그것을 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냄새나더라도 일단 일을 끝내고 일어나 돌아서서 틀어야 한다. 이럴 경우 비록 자신의 것이라도 그 냄새나는 배설물을 봐야 하는 불쾌감은 어쩔 도리가 없다.

책상에 앉아 가위를 들고 거래처에서 온 편지를 자른다. 과거보다는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시중에서 판매되는 가위의 십중팔구는 오른손잡이용이다. 왼손에 가위를 잡고 봉투를 자르는데 “어 김형, 왼손쨉이잖아!”하고 과장이 소리친다. 그러자 직원들이 동물원 우리 안의 원숭이 보듯이 쳐다보며 웃는다.

“그래, 난 왼손잡이야, 그게 어떻다는거야! 이 세상에는 나같은 왼손잡이가 10명중에 하나는 있단 말이야. 희귀한 별종은 아니라구. 미국의 최근 대통령 4명 중 3명은 왼손잡이야! 나폴레옹, 알렉산더 대왕도 왼손잡이란 말야. 아니, 빌 게이츠도 당신네가 빈정거리는 ‘왼쨉이’라는 것 알기나 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게 어디 소리칠 일인가? 레이건이니 포드니 클린턴이니 하는 왼손잡이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같은 왼손잡이 연인 조세핀을 부르며 죽은지 오래다. 빌 게이츠도 돈벌이에 정신이 없는데 도움의 손길을 펴겠는가.

식당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까운 식당으로 나갔지만 김씨는 어울리지 않았다.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모습은 음식을 먹는 좌석에서도 화제의 경지를 넘어 조롱의 대상으로 비화되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그래도 참고 지냈지만, 입사 몇년이 지난 지금은 체중조절을 핑계로 그들을 따라 나서지 않게 됐다.

간단히 끝나는 점심시간보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가끔 함께 모이는 저녁 회식시간이다. 그의 왼손질을 보고 다들 한마디씩 건넨다. “어 김형, 왼손으로 젓가락질 해도 밥을 먹을 수 있어?” “아니 이 친구 왼손잡이군 그래!” 마치 재수없는 사람을 본듯이 한마디씩 할 때는 죽을 맛이다.

그는 아직도 입사 초기의 참혹했던 술자리를 기억하고 있다. 왼손으로 술을 따랐다고 눈에 불이 나도록 따귀를 때린 무지막지한 상관도 있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회사를 무차별 성토하다가도 그의 왼손질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한다는듯이 얘기를 꺼내다가 아예 자신들의 왼손에 젓가락을 쥐고 왼손질을 흉내내는 상황으로 발전한다. “밤중에 아내를 왼손으로 애무하느냐”는 등 참을 수 없는 말도 함부로 내뱉었다. 그런 결례를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넘어가는 몰상식을 견디기 어려웠다.

전철안

귀가길에 자동차를 서비스 센터에 맡긴 김씨는 전철역으로 갔다. 며칠 전 사둔 정기 승차권을 찾으려고 양복주머니를 뒤져 보았으나 또 헛손질이다. 모든 양복의 윗주머니와 속주머니는 왼편에 있다. 오른손이 물건을 넣기 쉽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뒷주머니가 하나인 바지의 경우도 언제나 오른쪽에 주머니가 위치해 있다.

차표를 사려고 자동판매기 앞에 섰다. 이 판매기도 돈을 오른쪽에서 받고 있다. 그리고 역으로 들어가는 차표 투입기도 오른쪽으로 투입해야 한다. 차표 하나를 사는데도 왼손에서 오른손, 다시 오른손에서 왼손, 그리고 다시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꾼다. 손이 너무 바쁘다. 이것이 바로 오른손잡이의 세상에 사는 왼손잡이의 슬픈 몸짓이다.

전철 객차로 들어가니 이미 초만원이다. 김씨는 중간으로 들어가 왼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여기서도 문제는 계속된다. 다른 사람들은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는데 혼자서 왼손으로 잡았기 때문에 옆사람과의 간격이 좁아진 것이다. 차가 흔들릴 때 균형을 잃어 옆의 사람과 아주 쉽게 충돌하게 돼 있다. 비슷한 상황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식사를 할 때도 벌어진다. 왼쪽에 앉은 승객이 오른손으로 포크를 잡아 음식을 먹고 왼손잡이가 왼손으로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양쪽 팔이 충돌할 수도 있다.

전철역을 나오니 거리에는 벌써 어둠이 깔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 어울려 걸으면서도 왠지 이들과는 함께 할 수 없는 낯선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오른손잡이들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 왼손잡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이런 현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불평 한마디없이 묵묵히 살아가는 왼손잡이들. 왼손잡이의 하루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199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도형탁 기자
  • 김용운

🎓️ 진로 추천

  • 심리학
  • 문화인류학
  • 사회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