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등 10여권의 대중과학서를 펴내 과학저술가로 이름을 떨친 칼세이건은 마리너, 바이킹, 보이저 등 우주탐사 계획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천문학자다. 학자로서의 그의 최근 업적을 되돌아본다.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대부분 세이건을 단지 ‘코스모스’라는 책의 저자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세이건은 실력있는 천문학자이자 훌륭한 지도자였다. 그의 연구목적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수수께끼를 우주적인 관점에서 풀고,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에 있었다. 특히 행성 표면이나 성간물질에 존재하는 유기물질에 관한 연구 분야는 세이건에 의해 개척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가 몸담고 있었던 코넬대학은 태양계 천문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문대학이 됐으며 천문학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세이건은 특히 NASA에서 보낸 주요 우주 탐사선 계획에 깊이 관여했다. 전파망원경을 이용한 외계생명체 탐색 연구, 갈릴레오 탐사선을 이용한 목성대기 연구, 유기물이 가장 풍부한 토성의 달 타이탄(Titan)에 관한 연구 등 세가지가 주목할 만한 세이건의 최근 업적이다.
진보된 문명을 가진 외계생명체가 보낼지도 모르는 가상의 신호를 수신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를 탐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는 세이건의 뛰어난 역량과 사재를 털어 기꺼이 기부했던 국민들의 참여가 보태졌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다채널 외계탐사용 간섭계(META)를 이용한 것으로 1985년 하버드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호로비츠의 주도로 추진됐다. 세이건과 호로비츠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천문단체인 행성학회의 후원을 받아 7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늘을 탐색했다.
파장이 21cm인 중성수소가 내는 전파를 주로 추적했던 이 프로젝트에서는 60조회에 걸쳐 반복탐사한 결과 37군데에서 미심쩍은 전파신호를 발견했다. 하지만 집중 탐색으로 다시 신호가 검출된 곳은 단 한군데도 없어, 이것들은 관측시스템의 자체 잡음일 확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아주 강했던 신호 몇개는 충분히 더 추적할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고 세이건은 결론내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강했던 신호들은 대부분 은하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세이건은 또한 1990년 12월 갈릴레오 탐사선이 지구 대기권 밖을 비행할 때 우리 지구에 물과 유기분자가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지 시험했다. 결과는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지구 대기 중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산소에 의한 근적외선 스펙트럼에서 0.76μ(미크론) 흡수선과 메탄의 존재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적용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규소 화합물로 구성된 동물을 놓칠 확률은 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보는 것이 세이건의 주장이다. 규소가 전혀 다른 생명체 안에서 탄소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지만, 규소화합물이 제공할 수 있는 분자의 다양성이란 탄소화합물과 비교되지 않는다. 더구나 규소화합물의 이산화탄소에 해당되는 이산화규소는 모든 행성의 표면에서 고체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규소가 기본이 되는 물질대사는 힘들 것으로 세이건은 판단한 것이다.
원시생명을 태동시킬 수 있는 유기화학적 환경을 보여 주는 가장 흥미로운 세계가 타이탄이다. 토성의 거대한 위성인 타이탄은 실제로 수성만큼 크기 때문에 ‘행성 대우’ 위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위성에서 복잡한 유기분자들의 합성을 목격할 수 있다.
타이탄의 대기는 주성분인 질소분자와 함께 10% 미만의 메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대기는 지구보다 무려 10배나 무겁다. 타이탄의 밀도와 근처에 있는 천체의 화학적 조성에 근거해 판단한다면, 타이탄에는 얼음이나 지하수와 같은 형태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이 있고, 탄화수소도 풍부하게 존재한다고 세이건은 주장했다. 타이탄에 대한 세이건의 연구는 이후에도 여러 다른 시각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세이건의 업적은 태양계 천문학에서 기념비적인 의미를 가진다. 세이건은 물론 과학의 대중화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러나 과학이 아직 대중화되지 못한 우리나라의 풍토에서는 이를 위해 일하는 과학자들이 ‘매스컴 교수’, ‘연예인 박사’ 등으로 불리며 비판의 도마에 자주 오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소신도 없고 충분한 학식도 없는 과학자가 그렇다면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실력있는 과학자들까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세이건의 사망 소식을 접한 필자는 무척이나 놀랐다. 그러나 이 소식을 거의 보도하지 않은 우리나라 매스컴들에 대해 더욱 놀랐다. 혹시 이것도 앞에서 언급한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닌지 걱정된다. 수십 종류의 여성잡지가 판치는 가운데 과학잡지는 한둘에 불과한, 대중문화가 있고 과학기술이 있지만 과학문화는 실종된, 피서지 맑은 밤하늘 아래에서 자식들에게 견우별과 직녀별을 가리켜 줄 수 있는 부모가 1%도 채 되지 않는 우리 현실에 답답함을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