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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이과가 일해봤습니다] 네, 그래서 이과가 화재를 진압해봤습니다

아파트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폭발이 일어난 층은 곧 불길에 휩싸입니다. 불이 난 곳은 탈출하기도 어려워 보이는 높은 층입니다. 불이 다른 층으로 옮겨 붙으면 큰일입니다. 위기의 순간, 아파트 옥상에 달린 경고등이 번쩍이더니 불이 난 층이 통째로 분리돼 움직입니다. 네, 마치 서랍 열 듯요. 그리곤 옥상 물탱크에서 물이 쏟아집니다. 불은 꺼지긴 했습니다. 거실이며 화장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 안에서 쫄딱 젖어 손을 흔드는 주민이 조금 애처로워 보이지만요.

 

물론 이건 실제 상황이 아닙니다.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소소한 인기를 끌고 있는 영상의 줄거리죠. “건물 하중은 조상님이 들어주나?”란 댓글이 이공계 출신 기자의 심정을 대변해 줍니다. 댓글은 대부분 “어처구니가 없다” “아파트가 젠가도 아니고, 구조적으로 불가능할 거다”란 반응입니다. 간혹 “모르겠고 대박이니 이과가 얼른 만들어라”란 댓글도 있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로 불가능할까요? 인류가 달에 발을 내디딜 때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어쩌면 이 영상, 역사를 바꿀 또 하나의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네, 그래서 이과가 화재를 진압해보겠습니다.

 

 1단 돈이 문제입니다   

건물주의 이름으로 이 계획은 기각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롭습니다만, 공학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실현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까워 보입니다.”

 

영상 속 화재진압 방법이 가능할지 알아보기 위해 채윤병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를 찾았습니다. 채 교수는 영상 속 아이디어를 보며 실현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짚었죠. 여기엔 현실적인 한계가 반영돼 있습니다. 

 

영상을 현실로 만들려면 우선 불이 난 층을 분리할 수 있는 구동장치가 필요합니다. 건물의 무게가 상당할 테니 이 구동장치는 큰 하중성능을 가져야 할 겁니다. 이런 장치를 모든 층에 구축한다면 비용이 만만찮게 들겠죠. 채 교수는 “구동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이를 설치할 수 있는 추가 공간이 건물 내에 있어야 한다”며 “공간을 그만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건물주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했습니다.

 

건물주가 백 번 양보해서 매 층에 구동장치를 설치했다고 합시다. 그래도 가장 큰 문제점이 남았습니다. 화재가 발생한 층을 분리했을 경우, 그 층의 무게로 인해 층의 연결지점에 매우 큰 힘이 가해진다는 겁니다. 건물 밖으로 반 이상 빠져나온 층이 이 힘을 견디면서 건물에 잘 매달려 있으려면 건물을 더 튼튼하게 보강해야 합니다. 불을 끄기 위해 쏟아지는 물의 무게도 꽤 나갈 테니까요. 

 

최 교수는 “기존 건물과 달리 벽체, 기둥, 바닥판 등의 크기가 비대해야 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오히려 스프링쿨러 시스템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건물주가 싫어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군요.

 

 

  2렇게 해보죠  

아파트를 서랍장처럼 만든다면 OK

 

결국 문제는 돈이군요. 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는 신경쓰지 않는 게 이 코너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취미로 이런 건물 하나쯤 만들고 싶었다고 합시다. 그럼 훨씬 간단해 집니다. 하중만 해결하면 되죠. 최 교수의 조언대로 건물의 벽체, 기둥 바닥판 등을 보강해 각 층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도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다음 관건은 위층의 하중을 버티는 겁니다. 서랍장을 떠올려보죠. 서랍을 한 칸 뺀다고 서랍장이 무너지진 않습니다. 서랍의 각 칸을 두르고 있는 구조물이 하중을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아파트에 적용해본다면 어떨까요.

 

김희선 이화여대 건축도시시스템공학전공 교수는 “만약 화재가 발생한 공간의 전체 층이 아니라 구조체를 제외한 극히 일부 공간 만을 모듈화 해서 밖으로 빼낸다면, 건축물의 구조역학적 측면에서는 해결 해볼 수도 있겠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다만, 화재진압의 측면에서는 골든 타임이나 외부로의 화재 전파 등에 좀더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종합해보자면 우리의 아파트는 구동장치를 설치하다 보니 보통 아파트보다 좁고, 비싼 데다가 언제 어떻게 집이 움직일지 모르니 늘 긴장해야 하는 집. 그런데 딱히 화재 진압을 효율적으로 한다는 보장도 없는 집입니다. 게다가 불이 나면 집이 빠른 속도로 움직일 테니 어디 손잡이라도 꼭 잡으셔야 합니다.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면요. 왜 개발된 적도 없고 앞으로 개발할 계획도 없는지 이해가 가네요. 

202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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