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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티라노사우루스는 부채춤을 췄을까?

파충류의 속사정 ⓯ 파충류의 의사소통


우리는 문자나 소리, 몸짓으로 된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파충류는 어떨까. 이들도 의사소통을 한다. 우리처럼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대신 소리, 몸짓, 그리고 색을 사용한다.


매년 3월이 되면
북아메리카대륙의 미국앨리게이터들은 분주해진다. 따뜻한 봄은 이들에게 사랑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늪과 강, 그리고 호수 곳곳에서 수컷들은 자신의 영역을 정하고 지킨다. 그리고는 자신의 영역 안으로 입장하는 아리따운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수컷 앨리게이터들의 영역은 울타리를 치거나 벽을 세워서 표시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컷의 영역은 자기 자신만 알고 있을 뿐 다른 앨리게이터들은 잘 알지 못한다. 수컷 앨리게이터들은 자신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다른 수컷들에게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소리를 이용한다.
 
사진은 돌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새끼 미국앨리게이터. 어릴 때는 새끼 고양이만 한 크기지만 성체가 되면암컷은 몸길이가 최대 3m, 수컷은 거의 5m까지 자란다. QR코드는 수컷 앨리게이터가 소리를 내는 장면.
 

악어의 노래, 들어보셨어요?

미국앨리게이터는 짝짓기 계절에 매우 낮은 음으로 ‘으르렁’하는 소리를 낸다. 이들의 낮은 ‘으르렁’ 소리는 주파수가 매우 낮아서 파장이 길다. 파장이 길면 먼 곳까지 소리가 퍼질 수가 있다. 그래서 앨리게이터는 이 ‘으르렁’ 소리를 통해 수백m 거리에 있는 다른 수컷들에게까지 자신의 영역을 알려줄 수가 있다.

수컷 앨리게이터들은 영역을 알려줄 때 단순히 소리만 내는 것은 아니다. 물속에서 재미난 자세도 취한다. 이들은 고개를 수면 위로 올리고 꼬리를 허공을 향해 아치형으로 구부린다. 이러면 앨리게이터의 등은 자연스럽게 수면 밑으로 잠긴다.

이 이상한 자세에서 수컷은 ‘으르렁’ 소리를 내는데, 소리에 의해 생겨난 파동은 몸 쪽으로 집중되고 앨리게이터의 몸은 바르르 떨린다. 이때의 떨림은 등에 솟아있는 골편으로 전해지고, 골편 하나하나가 마치 라디오 송신기처럼 파동을 사방으로 퍼트린다. 이런 방법으로 수컷 앨리게이터는 물 밖뿐만 아니라 물속의 다른 수컷들에게도 자신의 ‘으르렁’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QR코드 참조).

수컷의 등에서 전파되는 파동의 세기는 엄청나다. 그래서 수컷이 이런 자세로 소리를 낼 때 등 위의 수면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격렬하게 진동한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앨리게이터의 물 춤’이라 부른다.
 
소리를 이용한 이들의 의사소통은 짝짓기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앨리게이터는 위협을 느낄 때 ‘쉿쉿’거리는 소름 돋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어린 앨리게이터들은 어른을 부를 때 ‘앙’, 또는 ‘우앙’하는 소리를 내는데 이것은 일종의 조난 호출이다. 앨리게이터가 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우리처럼 목소리를 내는 후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파충류가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마뱀붙이과, 표범도마뱀붙이과, 솔뱀, 그리고 앨리게이터가 속한 악어목을 제외한 모든 파충류는 후두가 없다.


멀리서 봐주세요, 제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을…

미국의 캐롤라이나 아놀도마뱀은 초록색 잎사귀로 우거진 숲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이들은 몸집이 작고 연약하기 때문에 수많은 동물들이 먹잇감으로 노린다. 그래서 아놀도마뱀은 몸을 숨기기 좋도록 비늘이 초록색이다. 나무 위에 꼭꼭 숨어있는 아놀도마뱀을 찾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위장술이 뛰어난 아놀도마뱀이라 하더라도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잠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아놀도마뱀은 부채 모양으로 활짝 펼칠 수 있는 새빨간 목주머니를 이용한다.

이들은 영역을 침입한 다른 도마뱀을 보면 이 새빨간 목주머니를 펼쳤다가 접는다. 마치 신호등처럼 ‘멈춰!’하고 신호를 주듯 말이다. 목주머니를 펼쳤다가 접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초. 목주머니를 확인한 다른 도마뱀은, 일부러 영역에 침범한 것이 아닌 이상 더는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다.

몸 전체를 이용해 화려한 신호를 보내는 도마뱀도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표범카멜레온은 기분이 좋을 때면 몸 전체가 붉은 색 계열로 바뀐다. 반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짙고 흐린 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기분이 좋은 화려한 카멜레온은 색깔이 짙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카멜레온을 가지에서 만나면 알아서 피해간다. 기분이 나쁜 친구를 건드려봤자 좋은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색 변화는 카멜레온뿐만 아니라 도마뱀붙이, 그리고 이구아나 종류에서도 자주 관찰된다.

파충류는 이처럼 색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포유류보다 색을 훨씬 더 많이 활용한다. 눈에 색수용체가 많기 때문이다. 파충류의 눈에는 보통 넷 또는 다섯 종류의 색수용체가 있다.
포유류는 둘 또는 세 종류뿐이다.


팔굽혀펴기에도 사투리가 있다

몸짓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파충류도 있다. 호주에 사는 도마뱀인 재키드래곤은 영역에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 앞다리를 한 번 흔들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단 1초밖에 걸리지 않는 동작이지만 다른 재키드래곤들이 보고 뜻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

이때 침입자 재키드래곤이 영역을 뺏으러 온 것이면(싸울 태세!) 똑같이 앞다리를 한 번 흔들고 고개를 끄덕인다. 반면 침입자 재키드래곤이 싸울 생각이 없을 경우는 앞다리만 한 번 흔들고 고개는 끄덕이지 않는다. 이런 식의 작은 몸짓 의사소통은 파충류의 세계에서 매우 흔하다. 재키드래곤과 같은 지역에서 사는 턱수염도마뱀 또한 비슷한 행동을 한다.

팔굽혀펴기를 하는 종류도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용암도마뱀 수컷들은 자신의 영역에 침입자가 들어오거나 마음에 드는 암컷이 지나갈 때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한다. 2015년 미국 알마대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클라크 박사팀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용암도마뱀들의 팔굽혀펴기 방식을 비교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총 12종류의 용암도마뱀이 사는데, 연구 결과 팔굽혀펴기를 하는 개수, 빠르기, 그리고 상체를 드는 높이 등이 모두 달랐다.

클라크 박사에 따르면 제도에서 살고 있는 용암도마뱀들은 모두 남아메리카 내륙에서 뗏목을 타고 들어왔다. 그런데 각각의 용암도마뱀들이 서로 격리된 섬으로 이동했고, 세월이 흐르자 의사소통 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생겼다. 각 지역의 팔굽혀펴기 방식 차이는 일종의 사투리(방언)인 셈이다.

그런데 용암도마뱀들의 방언은 변화가 점점 커져서 지금은 서로 다른 지역의 용암도마뱀들끼리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이런 ‘언어장벽’ 때문에 갈라파고스 제도의 용암도마뱀들은 서로 다른 종류끼리 교배를 할 수 없다. 클라크 박사팀은 앞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게 되면 12종류의 용암도마뱀들이 서로 다른 도마뱀들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부채춤 추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있었을까

머나먼 과거에 살았던 공룡은 어떻게 서로 의사소통을 했을까. 정말로 영화 속처럼 멋있게 포효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공룡은 앨리게이터와 같은 후두가 없었기 때문이다. 티라노 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의 친척이자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공룡인 새를 보면 알 수 있다. 새에게는 후두가 없다.

물론 새는 후두가 없어도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명관(syrinx)이 있기 때문이다. 명관은 폐가 기도와 연결되는 부위에 있는 기관으로 새로 하여금 예쁜 울음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준다. 혹시 티라노사우루스나 트리케라톱스도 새처럼 명관을 이용해 예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던 건 아닐까. 하지만 명관은 진화된 새 종류들에게만 있는 기관으로, 같은 조류라도 원시적인 새인 타조나 에뮤에는 없다. 따라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명관을 가졌을 가능성도 없다.

중생대 때 살았던 공룡들 중에는 괴상하게 생긴 뿔이나 벼슬, 깃털 등을 가진 종류들이 많다. 어쩌면 이들은 괴상한 장식물들을 이용해 매우 현란한 의사소통을 했을지도 모른다. 티라노사우루스가 팔뚝에 난 깃털을 이용해 부채춤을 추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참으로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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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영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방문연구원
  • 일러스트

    정재환
  • 에디터

    윤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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