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이 되면 우리는 추위를 느낀다. 이는 우리 몸의 온도보다 주위 공기의 온도가 많이 낮아서 열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물체의 열적 상태는 온도로 나타내는데, 물리학에서는 일상적인 도눈금인 섭씨온도와 달리 절대온도를 주로 사용한다.
절대온도는 자연의 궁극적인 최저온도를 0으로 하고, 섭씨온도와 마찬가지로 물의 끓는점과 어는점 사이의 온도차를 100으로 해서 눈금을 매긴 것이다. 절대온도의 눈금간격은 섭씨온도와 같지만 크기는 섭씨온도와 273.15만큼 차이가 난다. 즉 절대온도 0K(절대영도)는 섭씨온도로 -73.15℃된다.
모든 물질은 온도가 높아지면 기체상태가 되고 낮아지면 액체를 거쳐 고체상태로 변한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 가벼운 원자인 헬륨기체는 온도를 아주 낮추면 4.2K에서 액체가 된다. 그러나 온도를 더 낮추어 절대영도에 접근하더라도 고체가 되지 못하고 액체상태를 유지한다. 이때 액체헬륨의 압력을 30기압 이상으로 높이면 고체가 된다. 이는 가벼운 헬륨원자가 갖는 양자역학적인 특성 때문이다.
또한 헬륨의 온도를 낮추면 초유체라고 불리는 특이한 액체상태가 생긴다. 초유체란 유체의 속쓸림(점성)이 사라지는 상태를 말한다. 한번 맴돌기 시작한 초유체는 오랜 시간 동안 잦아듬이 없이 저절로 맴돌기를 계속하고, 한 곳에 가해준 열이 즉시 유체 전체로 퍼지며, 기체가 통과할 수 없는 아주 미세한 구멍을 통해서도 잘 흘러나가고, 용기의 벽면을 타고 흘러오르는 등 일반 액체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들을 나타낸다.
4He는 두개의 양성자와 두개의 중성자를 가진 원자핵과 주위에 도는 두개의 전자로 이뤄져 있다. 일반적으로 헬륨이라고 불리는 원소다. 초유체상태는 4He와 같이 구성입자의 수가 짝수개인 원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초유체상태는 액체상태에 있는 많은 수의 헬륨원자들이 결합해 마치 한개의 잘 정렬된 커다란 집합체를 이루는 것과 같은 양자역학적인 특이현상이다.
극저온 연구 아직 불모지
한편 헬륨(⁴He)의 동위원소로 자연계에 극미량 존재하는 ³He은 원자핵에 중성자가 한개 모자라는 홀수개의 입자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초유체상태를 기대할 수 없다. 이와 같이 4He와 화학적인 특성이 같으면서도 양자역학적인 특성이 판이하게 다른 ³He은 1960년대 물리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초전도현상이 발견된 것은 1900년대 초. 그러나 50여년 동안 초전도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지 못했다. 1957년 "초전도현상이 두개의 전자가 한쌍을 이루는 구조로 일어난다"(BCS이론)라고 바딘, 쿠퍼, 슈리퍼에 의해 설명되자, 비슷한 방법으로 ³He액체도 초유체상태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1971년 말까지 실험적으로 관측하지 못했다.
1971년 26살의 더글라스 D. 오셔로프는 코넬대학교에서 데이비드 M. 리교수와 로버트 C. 리처드슨교수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는 0.002K 정도의 저온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냉각장치를 만들어 저온과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 고체 ³He에서 일어난다고 예측되던 상전이를 측정하고 있었다.
실험 도중 그는 시간에 따른 압력변화를 조사하면서 무시할 수도 있었던 아주 작은 이상현상이 기록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고체상태의 ³He에서 생긴 변화로 잘못 이해했지만 그 뒤의 후속 연구를 통해서 곧 액체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을 알아냈다. 이것이 ³He의 초유체상태에 대한 첫 발견이다.
그후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신기한 현상과 극저온의 ³He 특성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다양하고 특이한 현상들이 속속 알려졌다. 이런 추세는 인간이 점점 더 절대영도에 가까워질수록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절대영도 부근에서 무슨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겠느냐"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자연은 미리 놀라운 비밀을 준비해 놓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그 신비의 베일자락을 열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된다.
리, 리처드슨, 그리고 오셔로프 등 세사람이 금년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것은 ³He의 초유체상태라는 중요한 자연현상을 발견한 업적뿐 아니라, 그로 인해서 저온물리학이 발전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됐음을 기리자는데 있다. 실제로 함께 애쓴 많은 저온물리학자들을 대표해서 수상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벨상은 비록 완전하지 못할지라도 처음으로 이룩된 업적에 주어진다는 점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극저온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연구는 아주 특별한 장치를 사용하는 실험실에 국한된다. 따라서 일상적인 용도에는 아주 무관한 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있는 자연의 속성을 구석구석 알아보는 일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아가서 자연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씀씀이를 항상 제공해주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기대해 볼 만하다.
현재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 선진각국에서는 절대영도를 향한 눈에 잘 띄지 않는 또 하나의 올림픽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또 어떤 자연의 신비가 알려질지 궁금하다. 불행하게도 국내의 연구여건은 아직 여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마치 남의 일과 같이 바라보고만 있다. 하루 속히 이 대열에 뛰어들 수 있는 날이 오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