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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왕권다툼, 어제의 동업자가 오늘의 적

애즈텍 개미 필요하면 부모도 제거한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언제나 한 군주에 의해 통치됐듯이 개미 왕국도 대체로 한 여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민 전체가 한 여왕의 자식이라 유전적으로 모두 흡사하며, 모든 국가 사업을 한마음으로 일사분란하게 수행한다. 바로 이 유전적 유사성이 인간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기 희생과 협동 정신의 바탕이 된다.

그런데 소수이긴 하지만 어떤 개미 사회는 여러 여왕들이 함께 군림하는 복수여왕제 (plurimatry 또는 polygyny)를 갖는다. 이런 현상은 특히 왕국을 건립하는 초기단계에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과제다.
 

여왕 개미가 굴을 파는 모습. 혼인비행을 마친 후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하는 단계다.


병력 증강이 급선무
 

남의 영토에서 새 왕국을 세우려다 일개미들에 의해 제거되는 젊은 여왕개미.


여러 여왕들이 함께 건립한 왕국들도 궁극적으로는 대개 한 여왕이 통치하는 나라로 변해 간다. 나라는 세울 때는 모두 힘을 모았지만 막상 정권을 쥐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들 중 단 한 마리의 여왕개미다. 보다 많은 여왕들이 협동할수록 건국 단계에선 유리할 지 모르지만 정권을 잡을 확률은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닥쳐올 처절한 왕권다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여왕개미들은 왜 협동하는 것일까.

한 나라를 일으키는 일은 인간 세계나 개미 세계를 막론하고 참으로 엄청난 일이다. 개미의 경우 대부분 혼인비행을 마친 여왕개미가 도읍지를 정해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된 날개를 자르고 살림을 꾸릴 작은 방을 만들기 위한 굴착작업으로부터 새 왕국의 건립이 시작된다.

이렇게 신방을 꾸미고 들어앉은 여왕은 바로 그 순간부터 고립된 상태에서 시간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아마도 포식동물에게 잡혀 먹힐 위험 때문에 진화한 생존수단이겠지만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진 것이라곤 더 이상 쓰지 않을 날개 근육과 피하에 축적해 놓은 지방을 분해해 얻는 에너지가 전부다. 이렇듯 제한된 자원이 완전히 고갈되기 전에 밀실의 문을 박차고 외부 세계로 진출해 기진맥진한 여왕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줄 일개미들을 성공적으로 생산해내는 군락은 새로운 왕국으로 일어설 기회를 얻는다. 반면 그렇지 못한 군락은 국가의 모습을 갖춰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는 것이다.

이세상에 개미가 살지 않는 곳은 별로 없다. 복잡한 도회의 뒷골목은 물론 우리들이 사는 집 안까지 들어와 사는 게 개미다. 생태학적으로 개미만큼 성공한 동물도 흔치 않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성공의 뒤에는 처절하리 만큼 무서운 경쟁이 있다. 새로운 왕국이 들어설 땅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엄청나게 부족하다. 남의 영토에 잘못 내려 않아 살림을 차리려다 희생되는 여왕개미도 부지기수다.

어쩌다 강대국 틈으로 난 좁은 공간에 여러 여왕개미들이 몰려 들어 제가끔 서둘러 왕국을 세운다. 이런 경쟁이 특별히 심한 개미 사회에서 여러 여왕개미가 함께 나라를 세우는 모습이 가끔 발견된다.

새로운 왕국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춘추전국 시대에 승자로 살아 남는 유일한 길은 제일 먼저 강력한 군대를 기르는 일이다. 여왕개미 한 마리가 한 번에 키워낼 수 있는 일개미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 여러 여왕이 같이 알을 낳아 키우면 한꺼번에 훨씬 더 많은 일 개미들을 생산할 수 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여왕개미 여럿이 협동하면 일개미를 키워내는 시간도 단축된다고 한다.

피부색 초월한 다국적 국가
 

트럼핏 나무를 갉아먹는 초식곤충을 공격하는 애즈텍 일개미.


이렇듯 짧은 기간에 보다 강력한 병력을 확보한 왕국은 미처 군대의 모습을 갖추지도 못한 이웃 나라들을 무참히 유린하며 천하를 평정한다. 협동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제가 아니고는 나라고 뭐고 시작조차 변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영국의 사상가 사무엘 존슨의 말을 빌면, 비겁함이 바로 평화를 만드는 격이다.

국가를 세우는 일에 같이 협동하는 이들이 한 핏줄을 이어받은 한 민족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협동이 종족을 초월해 벌어지는 경우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애즈텍 개미 두 종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애즈텍'이란 말은 한때 찬란한 문명사회를 이룩했다가 무슨 까닭에선지 사라져 버린 미대륙의 인디언 부족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 개미는 애즈테카(Azteca)라는 속(genus)에 속하며 중남미 열대림에서 가장 흔히 발견된다. 대부분의 종들은 큰 나무의 가지에 길게 매달린 흙집을 짓고 살지만 그들 중 몇몇은 트럼핏 나무(Crcropia)와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산다.

트럼핏 나무는 마치 대나무처럼 가지 속이 텅 비어 있는데, 이는 바로 개미에게 살 공간을 제공하도록 변화한 공진화의 산물이다. 또 트럼핏 나무는 식물로는 드물게 동물성 당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뮬러체라는 물질을 분비해 그야말로 개미에게 숙식을 모두 제공한다. 그 보답으로 애즈텍 개미는 늘 트럼핏 나무를 순찰하며 온갖 포식동물들로부터 보호한다.

다 성장한 트럼핏 나무는 열대림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 중의 하나다. 또 처음 싹이 틀 때는 큰 나무들이 쓰러져 빽빽하던 숲 속에 홀연 햇빛이 파고드는 공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싹이 나와 성장하는 생활력이 강한 식물이다. 숲의 천정을 향해 커가는 이 작은 트럼핏 나무 속에서 나무와 함께 성장하는 애즈텍 개미의 왕국들이 있다. 작은 트럼핏 나무를 세로로 쪼개 보면 마치 고층 아파트를 보는 듯 싶다. 각 층마다 제가끔 다른 모습으로 살림을 꾸리고 사는 가족들의 모솝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트럼핏 나무 속에 건설되고 있는 신생국가들을 보면 여왕개미 혼자서 세우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검은 피부의 여왕끼리 또는 붉은 피부의 여왕끼리 힘을 모아 세우는 공동국가도 있다. 심지어 피부 색이 다른 여왕들이 혈통을 초월해 세우는 다국적 국가들도 있다. 검은 여왕(Azteca constructor)과 붉은 여왕(Azteca xanthacroa)은 서로 엄연히 다른 종의 여왕들인데도 불구하고 화려한 원색의 스웨터로 유명한 세계적인 의류회사 베네통의 광고사진에서처럼 피부색이 다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전념한다.

이해타산만이 지배한다

그러나 이런 달콤한 신혼도 잠깐뿐. 일개미들이 하나 둘 태어날 때가 되면 핏줄울 넘어섰던 사랑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하나 밖에 없는 왕좌를 향한 처절한 혈전이 벌어진다. 자기 몸을 녹여가며 함께 자식을 기르던 동업자가 이젠 일개미들이 벌어 들이는 음식을 나누어 먹어야 하는 적이 된 것이다. 애즈텍 개미의 경우 여왕개미들이 직접 피를 흘리며 왕권을 결정하지만 다른 개미들에서는 일개미들이 여러 여왕들 중의 하나를 선택해 즉위시키기도 한다. 믿기 어려울 지 모르지만 그런 봉위 과정 중에는 자기 어머니를 물어 죽이는 일개미들도 있다. 참으로 피도 눈물도 없이 철저하게 이해타산적인 냉혈사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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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최재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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