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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냉동창고, 쿠이퍼대

혜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태양계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10번째 행성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혜성들은 어디서 날아오는 것일까. 이러한 비밀을 간직한 곳이 있다. 45억년 전 태양계 내에 행성들이 만들어지고 남은 잔재들이 모여있는 쿠이퍼대다.
 

1976년 나타난 웨스트혜성.태양풍에 의해 꼬리가 갈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예로부터 사람들은 하늘에 5개의 행성이 별자리 사이를 여행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바로 그 움직이는 별(행성)들이다. 옛사람들은 행성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다. 또 5행성과 태양, 그리고 달이 하늘에 있는 무수히 많은 별과 다른 특수한 천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이 천체들이 서양에서는 요일의 이름에 사용되고,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설의 기초가 된 듯하다.

그러나 행성들이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돌고 있고, 지구도 이 행성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케플러가 밝힌 후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구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은 물론, 행성도 꼭 6개(지구를 포함)일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싹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1781년 독일의 천문학자 허셜(Herschel)이 7번째 행성인 천왕성을 우연히 발견한 후로 더욱 확산됐다. 그 후 천문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새 행성을 찾아나서 1846년에 8번째 행성인 해왕성을, 그리고 1930년에 9번째 행성인 명왕성을 발견해냈다. 그렇다면 아직도 발견되지않은 10번째 행성이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것은 아닐까.
 

1986년 찾아왔던 핼리혜성으로 2061년 다시 찾아온다.76년 주기를 가진 핼리혜성에 관한 최초의 관측은 BC1059년에 이뤄졌다.
 

10번째 행성은 어디에

10번째 행성에 대한 기대는 당연한 것으로 최근까지, 아니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1992년 명왕성 궤도 밖에 있는 조그만 천체들이 발견되면서 10번째 행성에 대한 기대가 사그러지기 시작했다. 새로 발견된 천체들은 명왕성 궤도보다 더 먼곳에 있지만 행성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고 그 숫자도 벌써 20여개가 넘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크기가 작은 행성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5천여개 이상 발견됐다. 이들은 행성이라고 부르지않고 '소행성'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제 이런 작은 천체들이 명왕성 궤도 밖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천체들은 태양계 형성 과정을 증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의 존재는 1950년대에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천문학자 쿠이퍼(Kuiper)가 예견했다. 그는 태양계 형성 초기에 행성을 만들다가 남은 무수히 많은 작은 행성소(planetesimal)들이 명왕성 궤도 밖에 마치 태양계의 9개의 행성을 묶는 벨트처럼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들을 관측할 길이 없었다.

행성소들을 관측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로, 태형망원경과 감도가 좋은 CCD 사진기가 개발된 까닭이다. 이들의 밝기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어두운 별보다 무련 1천만배가 어두워 최근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쿠이퍼는 무슨 근거로 원시 행성소들이 명왕성 궤도 밖에 대(belt)를 이루며 모여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을까. 그의 주장은 가끔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혜성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혜성은 소행성과 달리 태양계 먼 바깥에서 안쪽으로 뛰어들어 오는 궤도를 가졌다. 얼음과 먼지 덩어리로 이뤄진 혜성이 태양에 가까워지면 태양열에 의해 얼음이 녹고 엄청난 양의 먼지를 발산하게 된다. 이 먼지들의 실제 크기는 수십km이지만, 태양빛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는 수십만km에 해당하는 솜덩어리처럼 보인다. 혜성 주위의 먼지는 태양풍과 혜성의 운동 때문에 긴 꼬리를 형성함으로써 다른 천체와 확연히 구분되는 장관을 하늘에 연출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핼리혜성은 76년마다 지구 근처를 지나가면서 긴 꼬리를 자랑한다. 그러나 혜성은 태양에 근접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먼지와 얼음, 그리고 기체를 잃는다. 그래서 핼리혜성과 같은 주기혜성은 약 1천번(약7만년) 정도 태양에 근접하고 나면 수명을 다하리라고 예측된다. 따라서 혜성은 다른 행성이 45억년이나 살아온 것에 비해 그 수명이 매우 짧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혜성을 지금도 지속적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새 혜성들이 어디선가 계속해서 태양계 안쪽으로 진입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태양계 바깥 어딘가에 '혜성창고'가 있어 가끔씩 태양계 안쪽으로 새 혜성을 공급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3월경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었던 햐쿠타케혜성도 처음으로 태양계 안쪽으로 들어온 혜성이다. 이런 새 혜성은 1년이면 수십개씩 발견되곤 하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소행성대가 있다.
 

혜성의 저장창고

혜성창고가 있다는 것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오르트(Oort)였다. 혜성궤도는 대부분 태양계 밖 매우 먼곳에서 시작되는 포물선 궤도이다. 또 진입 방향이 태양을 중심으로 전 사방에 골고루 분포한다. 이러한 관측사실로부터 오르트는 태양에서 약 10만AU(천문단위, 1천문단위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떨어져 태양을 구형으로 감싸는 혜성구름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혜성들이 애초에 외행성을 형성하고 남은 행성소들로,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이들을 외행성이라고 부름)이 형성된 후 이들(특히 목성)의 중력으로 인해 튕겨져 나갔다고 봤다. 그 후 혜성들은 오랜 세월을 차가운 태양계 먼 공간에서 지내다가 근처를 지나는 별의 섭동(purturbation)으로 태양계 안쪽으로 진입하게 된다고 오르트는 주장했다.

이 가설은 혜성의 기원을 아주 잘 설명한다. 천문학자들은 혜성의 저장창고 역할을 하는 혜성구름을 '오르트 구름' (Oort clouds) 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혜성구름은 수많은 혜성이 구름처럼 분포돼 있다는 의미다.

쿠이퍼는 이러한 오르트의 가설에 만족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명왕성 바로 바깥에 많은 혜성의 저장창고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태양계 형성 초기에 외행성 주위에 많은 행성소들이 존재했다면, 그 주위에 아직도 행성소들이 어느 정도 남아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행성이 생긴 후 해왕성 궤도 주위까지는 행성소들이 외행성의 중력으로 인해 행성들에게 잡히거나 오르트 구름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바로 밖, 즉 해왕성-명왕성 궤도(명왕성과 해왕성의 궤도는 서로 겹쳐있음) 밖의 행성소들은 그대로 생존해 있다는 가설이다.

이렇게 생존하고 있는 행성소들은 그 지역의 온도가 매우 낮으므로 태양계 형성 초기의 원시 물질을 변화없이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마치 태양계가 형성됐던 45억년 전에 만들어진 음식을 냉동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쿠이퍼대의 천체들이 관측되기 전까지 냉동창고 속의 음식을 맛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70-80년대 몇몇 이론가들의 쿠이퍼대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신빙성을 높여줬다. 핼리혜성과 같은 단주기혜성들(공전주기가 2백년 이내인 행성)은 다른 혜성과 달리 공전면에 가까운 궤도면을 가졌다는 사실이 이들 추론의 출발점이었다.

즉 단주기혜성들이 오르트 구름에서 왔다면, 이들 궤도면은 행성 공전면과는 전혀 상관없이 무질서한 분포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명왕성 궤도 밖의 쿠이퍼대에서 왔다면, 당연히 행성들의 공전면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행성들이 원반처럼 태양 주위에 분포하던 행성소들로부터 형성되었기에 행성들 상호간의 공전면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쿠이퍼대 역시 행성소들로 이루어졌다면 이 공전면에 거의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이론이며 가설일 뿐이고, 과학적 정론이 되려면 관측인 실험에 의한 확인이 필요하다.
 

혜성보다 큰 행성소들이 쿠이퍼대에 수없이 많다.원내는 최초로 발견된 1992QB1.
 

태양계 생성 초기의 잔해들

드디어 1992년 8월 미국의 두 젊은 천문학자 쥬윗(David C.Jewitt)과 루(JaneX. Luu)가 5년간의 관측 끝에 명왕성 궤도 밖의 조그만 천체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월남 난민 출신인 루는 10세 소녀때 미국으로 건너가 천문학을 전공했고 쥬윗으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이 발견으로 하버드대의 교수로 발탁됐다는 성공담은 꽤 유명하다.

쿠이퍼대에서 처음 발견된 천체는 1992QB1으로 명명됐다. 1992QB1 발견 이후로 3년 동안 32개의 쿠이퍼대 천체가 발견됐다.

이 천체들은 모두 해왕성 궤도 밖에 있으며 거의 같은 공전면을 가지고 있다. 크기는 1백-4백km 정도로 명왕성보다 훨씬 작고, 핼리혜성보다 10-40배 정도 크다. 참고로 명왕성의 크기는 지름 2천 3백km이고, 그의 위성 샤론(Charon)의 지름은 1천1백km이다.

현재의 발견 빈도로 추정해 볼 때, 쿠이퍼대에는 1백km보다 큰 천체가 적어도 3만 5천개 이상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 전체 질량의 1백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소행성대는 세레스(Ceres)라는 소행성의 발견으로 1801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그보다 더 큰 쿠이퍼대는 이제 막 그 정체를 들어내기 시작했을 뿐이다. "자다 깨보니 내 집이 열배나 커져 있더라" 라는 발견자 쥬윗의 말대로 참으로 놀랄 만하다.

그렇지만 쿠이퍼대가 단주기혜성의 공급창고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왜냐하면 발견된 쿠이퍼대의 천체들이 너무 희미해 자세한 구성성분을 측정하기가 아직 어렵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해왕성이 쿠이퍼대의 안쪽 경계에 있는 천체를 섭동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구체적 계산들이 이 가설을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며 쿠이퍼대에서 단주기혜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는 천체가 현재도 존재해야 할 것이다. 즉 해왕성 궤도 밖과 안을 오가는 궤도를 가진 천체가 있어야 한다.

1977년에 발견된 케이론(Chiron)은 이런 천체일 가능성이 많다. 케이론은 처음에 소행성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그 궤도가 소행성대와 가른 토성과 천왕성 사이에 걸쳐 있고 먼지의 분출 현상이 가끔 보였기 때문에, 요즈음은 반소행성 반혜성이라는 뜻으로 켄타우루스(Centaurs, 그리스신화에서 반인반마)라고 부른다. 현재까지 이런 켄타우루스 천체는 5개가 발견됐다.

이 중 소행성 폴루스(Pholus)는 매우 붉은 빛을 띠는 것으로 유명한데, 1992QB1의 색깔 역시 매우 붉어 그들이 서로 같은 연원을 갖는 천체라고 추정된다. 따라서 쿠이퍼대 천체들이 해왕성의 섭동으로 외행성 지역으로 끌어들여져서 켄타우루스 천체가 되고, 이들이 다시 외행성의 중력작용으로 인해 내행성 지역으로 보내져 단주기혜성이 된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있다.

아무튼 쿠이퍼대의 천체들이 태양계 형성 초기의 원시 물질을 간직하고 있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제 이들의 구성 성분과 공간 분포를 자세히 관측하게 되면, 태양계 행성의 생성에 대한 비밀이 하나하나 벗겨질 것이다. 이를테면 집안에서는 그 집이 무엇으로 만들어져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가, 집 밖에 나가보니 그 재료들의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과 같다. 게다가 이 남겨진 재료가 냉동보관까지 잘 되어 있는 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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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용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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