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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통증을 정복한다 : 마약, 그 뒤에 숨은 이야기

코카콜라에서 히로뽕까지

우리가 흔히 쓰는 '마약(痲藥, 麻藥)이라는 말은 그 뜻이 정확하지 않아 쓰기에 불편하다. '마약'이라는 말은 원래 '마취약' 의 준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취약과 마약은 같은 말이 아니다.

대개 '마약'이라 하면 좁은 의미로는 아편류(마약성 진통제)를, 넓은 의미로는 향정신성의약품을 비롯해 대마초, 본드, 부탄가스까지 포함된다. 그래서 '마약'이라는 말을 좁은 의미로 쓸 때에는 아편류(opioids또는narcotic analgesics,마약성진통제), 넓은 의미로 쓸 때에는 '남용 약물'(abused drug) 또는 '남용 물질' 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여기서 아편류란 아편처럼 강력한 진통효과를 가지며 남용되는 것을 통틀어 부른 말이다. 또 남용이란 "함부로쓰되 정서나 감정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아다. 비슷한 말로 오용(misuse)이란 말은 의사나 약사의 지시 없이 함부로 약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가 마신 아편

한편 영어로는 마약을 대개 'narcotics'라 한다. 이말도 의미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어원이 재미있다.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시서스(Narcissus)는 물에 비친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져 결국 물에 빠져 죽고, 그 자리에 수선화(narcissus)가 피었다. 그런데 이 수선화 향기는 마취작용이 있다. 그래서 마약의 어원에 'narco-'가 들어간다.

남용 물질들은 의존성을 일으키는 일이 잦다. 의존성(dependency)이란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그 약물을 찾는 성향으로, 그 이유는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혹은 정신적으로 어쩔 수 없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몸에서 약물성분이 없어지면 이런 증상이 나타나므로 이를 금단 증상(withdrawal symptom)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금단 증상 때문에 만사 젖히고 그 약물만 찾게 되는 현상을 탐닉(addiction,중독)이라고 한다.

통증과 관련된 마약성 진통제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양귀비에서 얻은 아편(opium)이고, 아편에서 진통 효과가 뛰어난 물질을 추출한 것이 모르핀(morphine)이며, 모르핀에서 조금 구조를 바꾼 것이 헤로인(heroin)이다. 이 외에도 데메롤(피치딘, 메페리딘), 탈윈, 날부핀, 펜타닐과 같은 약들이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아편을 사용한 흔적은 일찍부터 나타난다. 그리스 문화가가 찬란하던 시대에 이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약에 독당근과 아편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 아편이 소개된 것은 아랍 상인들을 통해 당(唐)나라 때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사람들 은 'opium'을 비슷한 발음으로 '阿片'이라 불렀다.

18세기에 유럽에서는 아편을 먹는일로, 중국에서는 아편을 피우는 일로 커다란 사회문제가 생겼다. 드디어 유럽에서는 아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그러나 영국은 아편을 인도에서 싸게 사서 중국 사람들에게 비싸게 팔아 중국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결국 19세기말 아편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에 진 중국은 영국이 홍콩을 99년 동안 사용하도록 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화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18-19세기에는 생약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해내는 일이 성행했다. 아편에는 여러 가지 알칼로이드가 들어있다. 이 가운데에서 통증에 탁월한 효능을 가진 알칼로이드에 붙인 이름이 바로 모르핀이다. 이 이름은 그리스 신하에 나오는 꿈의 신인 'Morpheus'를 'opium'과 합성한 'morphium' 에서 유래한다. 통증이나 기침 때문에 잘 수 없었던 환자에게 투여해 잠을 잘 수 있도록 한데서 따온 것이리라.

모르핀의 가장 큰 약점은 의존성을 만들어 탐닉하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모르핀과 비슷한 효능을 가지지만 의존성을 만들지 않는 약을 만들어내려 애썼다. 이 과정에서 1974년 모르펜에 아세틸(acetyl)기가 2개 붙은 물질(diacetylmorphine)이 만들어졌다. 이 물질은 모르핀에 비해 통증에 대한 효능이 조금도 덜하지 않으면서 탐닉성이 없어 보였다. 가히 영웅적인 약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헤로인(heroin)이라 했던 것이다.

20세기 직전부터 이 영웅적인 약은 대량으로 판매됐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헤로인이 몸 속에서 들어오면 곧 아세틸기를 잃어버려 모르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헤로인을 투여하면 몸 속에서는 곧 모르핀이 되니까 모르핀과 같은 효능이 있을 수 밖에! 결국 1920년부터 헤로인도 모르핀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감기약,수면제 등 각종 약제도 아편에 버금가는 남용 약물.
 

술에 섞어 팔다

남용 약물에는 아편류뿐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다. 남용 약물은 약리 작용에 따라 마약성 진통제 말고도 중추신경계 억제제, 흥분제, 환각제가 있다,

중추신경계 억제제는 흔히 수면제라고 부르는 것으로 위험한 약제는 대개 향정신성 의약품에 속한다. 이 물질은 중추신경계의 작용을 억눌러 결국 잠이 오게 한다. 여기에 속하는 약물들은 병원에서 마취제로도 많이 사용한다. 아주 깊은 잠에 빠지면 통증을 알수 없게 되는데, 어찌보면 죽음에 아주 가깝게 가는 일이다. 주변에서 볼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술이다.

흥분제는 다른 말로 각성제라고도 한다. 이 물질은 중추신경계 억제제와 반대로 중추 신경계를 깨워 둔다. 미국이나 유럽에 커다란 문제가 된 코카인과 우리나라 일본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히로뽕이 여기에 속한다.

코카인(Cocaine)은 코카 나무에서 얻은 알칼로이드이므로 천연산이다. 놀랍게도 3천년이 지난 이집트 미라에서 코카인과 니코틴이 발견된 적이 있다. 그러나 남미 원산인 코카 나무가 없는 이집트에서 어떻게 코카인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유럽에 코카인이 알려진 것은 1500년대로 스페인 사람들이 페루를 점령한 때다. 이미 수천년동안 페루 원주민들은 코카 나뭇잎을 씹는 습관이 있었다. 담배와 함께 유럽에 전해진 코카인은 오랫동안 주목 받지못했다. 다만 이를 복용하면 식사를 하지 않아도 견딘다는 사실과 부작용을 기록한 책이 있었다. 그러다 19세기데 들어와 코카 나뭇잎에서 코카인이 분리되고, 1884년에는 이를 의학용으로 사용한 첫 보고가 있었다. 이 보고는 바로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라 할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논문이었다. 이때 코카인이 주고 국소마취제 또는 모르핀 의존성에 대한 치료제로 사용됐다. 곧이어 코카인의 독성에 대한 보고도 뒤따랐다.

코카인은 술에 섞어 팔기도 했다. 1860년대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는 코카인을 넣은 포도주가 인기를 끌었다. 또 'French Wine Cola'라는 상품이 있었는데, 초창기에는 인기가 없던 이 음료에서 술 성분은 빼고 코카인과 카페인으로 새로 만든 음료를 만들어 판 것이 바로 코카콜라(Coca-Cola)다. 이 음료는 1920년대 까지 팔리다가 코카인이 의존성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된 미국 정부가 코카인을 넣지 못하도록 한 다음 상표를 그대로 유지해 오늘에 이른다. 한편 코카인은 초콜릿을 만드는 코코아와 아무 관계가 없다.

코카인을 남용하는 형태는 여러가지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은 코카 잎을 그대로 씹는 것이고, 정맥주사를 비롯해 피부나 점막에 바르는 방법, 코로 들이마시는 방법, 먹는 방법등이 있다. 코카인은 혈액으로 들어와 주로 중추신경계에서 신경 전달물질인 카테콜아민이 교감신경을 자극하도록 함으로써 약효를 낸다. 그러나 코카인의 작용기간은 짧아서 평균 반감기가 40분 정도다.

코카인의 혈중 농도와 증상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낮은 농도에서 독성을 보이기도 하고 높은 농도에서 증상이 약할 수도 있다. 특별히 높지 않은 혈중 농도에서도 사망하는 예가 적지 않은데, 사망원인은 주로 심장(특히 심장근육)에서 독성과 혈압을 높임으로써 뇌출혈 따위를 일으키는 것이다. 코카인은 의학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코카인은 마약법에서 규제하는 마약이다.
 

마약류를 흡입하는 형태는 여러가지.그러나 결과는 '죽음에 이르는 중독성' 한가지다.
 

살빼는 약으로 둔갑

히로뽕은 1940년대에 일본의 제약회사가 만들었다. 원래 이름이 'Philopon'이었는데 'philo-'(좋아하다)와 'ponos'(일)의 합성어였다. 그래서 발음이 '필로폰'이어야 하는데 일본 글자로 써서 히로폰이 됐고, 이것이 우리 나라에서는 된발음을 써서 '히로뽕'이 된것이다.

처음에는 '잠 안오는 약' '살빼는 약' 따위를 선전하며 팔았는데,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군수품공장 노동자, 보초병, 무전병, 돌격대에게 피로를 모르게 하는 약이나 잠을 깨는 약, 자신감을 주는 약으로 투여했다. 전후에는 전쟁의 괴로움과 황량함을 잊기 위해 남용되다가, 의존성을 염려한 일본 정부가 이를 금지했다.

그러나 돈 될 것을 찾던 일본 범죄집단(야쿠자)은 히로뽕을 불법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경찰의 단속으로 일본에서 만들기 어려워지자 몇몇 우리 동포 기술자를 성공한 재일 동포를 위장시켜 경상남도로 침투, 그곳에 몰래만든 히로뽕을 일본으로 밀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 때가 1960년대 였다. 그러나 일본으로 가는 밀수통로가 막히고 우리 나라에 밀조기술자가 늘어나자 차츰 국내에도 히로뽕 남용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독버섯처럼 히로뽕 남용자가 늘기 시작했다.

히로뽕의 1회 용량은 대개 30mg이다. 3kg은 10만번을 쓸 수 있는 양이다. 예컨대 한번 쓸 양을 10만원으로치면 3kg은 1백억원에 이른다. 이렇게 부가가치가 높으니 범죄집단이 이를 그냥 둘 리가 없다. 히로뽕은 물에 아주 잘 녹기 때문에 마실 수고 있고, 정맥주사를 놓을 수도 있다. 또 코로 흡입하거나 증기를 마시는 방법으로 남용되기도 한다.

히로뽕은 중추신경계와 교감신경을 흥분시킨다. 신경말단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카테콜아민이 많이 나오도록 만들고 이것이 다시 흡수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신경 말단은 항상 흥분 상태에 놓이게 된다. 만성으로 사용하면 내성이 생겨 양을 늘여야 하지만, 적은 양에도 강박상태에 놓여 이상 행동을 일으키거나 정신병 증상도 생길수 있다.

이 약물들을 사용하면 배고프거나 피곤한줄 모르고, 힘이 솟으며,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갖지만, 곧 약효가 떨어지면 반대 현상이 나타나 다시 그 약이 아니면 못살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약물은 한 가지 약효를 내는 것은 아니고, 사람의 상태에 따라 환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흥분제는 반드시 치사량에 이르러야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다. 보통 쓰는(?) 양에서도 심장발작이나 발작성 고혈압 또는 고열증 따위로 급사할 수 있다.

 

술은 중추신경을 억제해 통증을 잠재운다.수면제와 비슷한 원리다.
 

동물 마취제도 사용

환각제에 속하는 대표적인 것이 대마초와 LSD이다. 대마초는 우리 나라에서도 자생하는 대마에서 채취하는데, 인도나 동남아에서 자생하는 것보다 그 주성분인 카나비노이드(cannabinolds) 농도가 낮다. 초여름에 대마가 크게 자랄 때 약효 성분이 제일 높다고 해서 요즘 이를 구하는 남용자들이 산골을 설치고 다닌다. 양귀비에서 아편을 추출하듯, 대마초에서 추출한 물질을 해쉬쉬(hashishi)라 한다. 한편 LSD는 실험실에서 합성한 물질로 아주 적은 양이데도 심한 환각 증상을 일으킨다. 그 외에도 동물에 쓰는 마취제, 버섯에서 추출한 물질 따위가 환각제로 쓰인다.

감기약이나 본드, 부탄가스를 남용하는 청소년이 있다. 이때 나타나는 주요한 증상은 몽롱해지거나 나른해지는 등 술이나 마취약에 취했을 때와 비슷하다. 그래서 보통이 물질들은 중추신경계 억제제로 분류된다. 물론 환각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 대개는 심하게 머리가 아프거나 토하는 등 뒤끝이 좋지 않다.

이 물질들은 적은 양으로도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한 예로 이 물질에 취해 누워있는 사람을 부르면 벌떡 일어나 몇걸음 걷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경우가 많다. 나른해져 천천히 뛰던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리 뛰어 심장이 적응을 못한 탓이다. 그런데도 이를 남용하는 데에는 남용자의 정신적인 자세가 더 중요하다.
 

199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윤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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