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미동호회에서는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거미책을 곧 출간할 예정이며 이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거미연구붐을 일으킬 계획이다.
지구상에는 1백50만종의 생물이 있다. 그중에서 30만종이 식물이고 나머지가 동물이다. 동물1백20만종 중 3/4인 90만종이 절지동물(문). 이중에 곤충(강)이 75만종이고 거미(강)가 4만종이다. 절지동물에는 다리가 세쌍인 곤충, 네쌍인 거미, 다섯쌍인 갑각류, 그리고 15쌍 내외인 다지류(지네 등)가 있다.
우리에게 거미는 부정적으로 인식돼 있다. 어둠과 음습함, 공포의 상징물로 각인돼 있다.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산왕거미 말꼬마거미 등이 조금은 징그럽고 볼썽사납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부분의 거미가 밤에만 활동하는 야행성이기 때문일까. 저항하는 먹이를 제압하기 위해 쏘는 마취침을 독침으로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매우 편협돼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거미는 어느 곤충 못지 않게 아름답다.연두색의 오각꽃게거미, 몸이 역삼각형인 삼각점꼬마거미, 노랑바탕에 빨간 무늬를 가지고 있으면서 황금빛 거미줄을 치는 무당거미, 대벌레처럼 길쭉한 꼬리거미 등은 어디다 내놔도 손색이 없는 '선남선녀'들이다. 거미줄을 치지 않는 배회성 거미(전체 거미의 60%)가 대부분 야행성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미를 '밤손님'하고만 관련시킬 필요는 없다. 자기 생존을 위해 생래적으로 습득한 마취침도 사람에게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설령 거미에게 물려도 가려운 정도지 몸에 영향을 줄만큼 해롭지 않다.
일본의 1%에도 못미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기록된 거미 종류는 5백50여종, 그러나 한반도에 살고 있는 종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웃 일본에서만 1천2백여종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거미를 연구하는 학자도 드물뿐만 아니라 거미에 관심을 갖고 거미 생태를 추적하는 아마추어들도 매우 숫자가 적다. 그 결과가 아직 5백50여종에 머무르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만 해도 거미를 좇는 아마추어 연구자들이 5천명이나 된다. 이에 비해 우리는 고작 40여명. 1%도 안되는 비율이다. 거미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거미도감을 펴낸 백갑용 박사(경북대 교수로 재직하다 지금은 은퇴), 한국거미연구소 소장인 김주필 박사(동국대 생물학과 교수),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거미연구에 빠진 '재야' 거미학자 남궁준 선생 등과 대학원 과정에서 거미를 전공한 몇 안되는 학생들이 고작이다.
한국거미연구소 주도로 한국거미동호회를 출범시켰으나 40여명의 동호인(초중고교 생물 교사들 중심) 밖에 모으지 못한 것도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거미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하나의 잣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일반 사람들이 거미에 관심을 가져도 이를 충족시켜줄만한 책한권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거미도감이 있다지만 이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최근 일반인들이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나비책들이 나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거미연구소 김주필 소장은 "외국에 돌아다녀 보니까 생태계연구, 특히 거미연구가 어느 정도 돼 있나를 가지고 그 나라의 문화척도로 삼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그동안 거미연구소 회원들이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거미 대중보급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올해안에 출간될 예정으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이 책이 출간되면 한국거미동호회 회원을 대대적으로 모집, 우리나라 거미 연구의 밑거름으로 삼을 예정이다.
동호회 회원은 아무나 가입할 수 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생물교사들이 주축이 되면 더욱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김소장의 바람. 동호회 회원들이 모이면 이들을 교육시킬 준비는 거의 완벽하게 돼 있다. 거미에 대한 기초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는 거미사육장을 경기도 남양주군 운길산에 마련해 놓고 있다. 현재 이 실습장은 동국대학교 생물학과 학생들의 교육장소로 쓰이고 있다. 당장이라도 거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주 금요일 거미연구소(전화294-0908)를 찾으면 이 실습장에 동행할 수 있다.
과학캠프 구상중
거미의 먹이는 대부분 해충이다. 간혹 익충인 곤충을 잡아먹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에서는 농약 대신 논거미로 농사를 짓는 논이 60%이상이다. 1백여종 가까이 존재하는 논거미는 멸구 이화명충 매미충들을 잡아먹고 살기 때문에 자연적인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중국에서 '논거미 농사'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가 농약 값이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처럼 농약 공해가 심한 나라에서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운길산 거미실습장에는 올해부터 5백평씩의 논을 조성해 농약농사와 논거미농사를 비교하고 있다. 5년동안 수확량을 조사, 논거미농사의 가능성을 타진해볼 계획이다. "올해 당장은 논거미쪽이 수확량이 처지겠지만 생태계의 균형이 잡히면 논거미농사도 가능성이 많다"고 김주필 박사는 말했다. 벼 한포기 당 몇마리의 논거미가 서식하며 얼마나 해충을 잡아먹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해볼 계획이다. 이는 지렁이를 사육해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방법과 일맥상통한다.
1년에 1억5천만원 이상 돈을 들여 거미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주필 박사는 앞으로 우리나라도 거미를 비롯해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중고생을 대상으로 과학캠프를 구상중이다. 거미연구소 운영비는 연구원들의 연구보조금과 1년에 두번씩 발간되는 연구보고서(세계의 거미학회에 보내짐)를 발간하는데 쓰여진다. 이 돈은 김박사가 경영하는 EMI학원에서 지원받는다. 김박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강사(생물)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집안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바퀴벌레도 농발거미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요, 전국의 삼림을 공포에 떨게하는 솔잎혹파리도 절지동물(특히 거미)을 겁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우리의 거미에 대한 관심은 너무 인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인색한 것이 아니라 무지에 가깝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일례로 겨울에 해충을 잡겠다고 나무중간에 둘러놓은 볏집에는 거미가 98%이상 월동한다. 이를 봄에 불살라 버리고 병충해를 방지했다고 자랑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사실 이 방법은 60, 70년대 흰불나방이 극성을 부릴 때 그 송충이를 잡기 위해 채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흰불나방은 찾아보기 힘들고 구태의연한 방법만 남아 거미를 괴롭히고 있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의 세금이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오히려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거미잡는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거미를 잘 몰라 저지르는 무지의 소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