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동물에 병원균이 침투했을 때 한가지 보호책은 세포가 이물질과 ‘동반자살’ 하는 방법(apoptosis)이다. 침입을 받은 세포가 즉시 죽으면서 병원균을 가둬놓아 더이상 몸에 퍼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현상이 식물에게도 발견됐다.
보통 곰팡이나 세균이 식물 세포를 공격했을 때 세포는 과산화수소(H₂O₂)를 방출, 주변 세포에 신호를 보낸다. 이때 주변 세포는 이 물질의 침투에 대비해 세포벽을 단단하게 만들고 항생물질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생물연구소에 근무하는 램박사는 콩의 생리를 관찰한 결과 이 신호가 또다른 효과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콩에 세균(Pseudomonas syringae)이 침입했을 때 세포에서 과산화수소가 방출되자 칼슘 이온이 세포 내로 몰려든다는 것이다. 이때 세포질과 핵이 오므라들면서 세포가 죽게 된다.
램박사는 “칼슘이 들어오는 문을 차단시키는 약물을 투여했을 때와 칼슘이 없는 조건에서 세포를 키웠을 때 세균에 감염된 세포가 동반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이런 현상은 담배에서도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또 죽어가는 콩세포에서 DNA가 일정한 크기로 잘라지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처럼 칼슘이 흡입되거나 DNA가 잘라지는 현상은 이미 포유류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램박사는 “여러가지 유사성을 생각할 때 이런 동반자살이 진화 초기 단계부터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고 말하면서 “지금 발견한 현상은 원시적 방어 메커니즘의 최신 버전인 셈” 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