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학사, 60년대 석사, 70년대 박사 등 과학교육을 30여년에 걸쳐 공부했다. 돌이켜 보면 과학도 어려웠지만, 과학사 과학철학 교육학 등의 공부도 그에 못지않게 어려웠다. 특히 과학교육학 연구는 더욱 앞이 캄캄했다.
기초 과학교육이 국민의 '실천하는 지성' 함양에 공헌하고, 전문 과학교육이 과학기술 인력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신념이 굳어진 지는 상당히 오래됐다. 그동한 한국과학교육학회를 세우고 학회지를 발간하며 과학교육학 박사과정을 개설해 벌써 10여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중고 과학교육이 뒤처짐을 생각하면 이 분야의 교수로서 너무나 송구스럽고 안타깝다.
1993년은 역사적인 '과학교육의 해' 였다. 이해 처음 시작된 학생과학탐구올림픽대회의 위원장직을 요청받고 참으로 당황했다. 국내외로 뛰어다니며 조사하고 운영비도 마련해, 수많은 전문가의 협조로 자연탐사 과학탐구 과학연극 과학시범 과학토론 등을 개최했다. 이때의 '과학 싹 잔치'는 과학교육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던 사건으로 참으로 보람있는 일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수천명의 청소년들을 보살피느라 숨도 작게 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