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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디지털 사회 생존법

정보거지 면하기, '소유' 보다는 '활용'이 핵심

전사회의 디지털화는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이즈음 디지털 사회는 어떤 의미이며, 그 생존법은 무엇인가

컴퓨터와 통신의 만남으로 건설된 '디지털 사회의 완성판' 사이버스페이스는 미개척지이며 새로운 세상이다. 이 세계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비트(bit)로 만든 그림 사진 영상물 음향 등 여러 형태의 정보와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검색할 수 있으며, 이들 매체를 활용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덤이자 현실의 반영이다. 사이버스페이스가 현실세계의 덤인 이유는 아직까지 현실은 아날로그가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를 담는 아톰(atom)과 생명체의 근원인 DNA의 세계는 비트의 세계보다 우세하다. 아톰없이 비트는 존재할 수 없다. 비트의 실체도 따지고 보면 아톰이다. 그러나 비트는 변형이 가능하고 아주 빠른 시간에 네트를 통해 전달될 수 있다. 비트가 비트인 이유는 네트와 만났기 때문이다. 네트없는 비트는 그냥 비트이고(어쩌면 또 하나의 아톰에 불과), 비트없는 네트는 그냥 전선 덩어리이거나 광섬유에 지나지 않는다.

사이버스페이스, 가상공동체 등에 관한 이야기가 비트의 세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같은 착각을 주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공간이 현실과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비트와 네트로 엮어지는 새로운 공동체, 그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방식 변화가 사이버스페이스를 만드는 것이지 사이버스페이스가 독립된 실체로서 이 세상 저 편에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비트시대의 뉴미디어가 공동체 성원의 참여를 확대하는 '풀뿌리 네트워크' 가 될 것인지, 아니면 권력과 독점 사업체가 연출하는 감시사회의 '빅 브라더 네트워크' 가 될 것인지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분명히 뉴미디어는 기존의 중앙집권적인 매스미디어의 일원적 통제와 지배를 해체한다. 뉴미디어는 기존의 대중매체와 달리 사용자의 참여를 확대하고 사용자의 권력을 강화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전달할 정보의 내용과 전달 시간, 전달 의도, 전달 대상에 대해 전면적인 권한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전달받을 정보도 적극적으로 선별한다. 사용자는 대중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 개입과 참여로 스스로 미디어의 내용과 형식을 창출하는 창조적 주체다. 바로 이 점이 개인의 참여를 확대하고 주체성을 회복하는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이러한 특성이 뉴미디어의 민주적 가능성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새로운 집단 형성과 계층 구분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집단이 가상 현실에서도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가상 세계 또한 현실 세계의 또 다른 복제판이 된다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서 사이버스페이스가 가지는 의미는 성장하기도 전에 사그러들 것이다.

결국에는 교육문제로 귀결
 

'사용을 전제로 하지 않은 소유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선 디지털 사회를 견뎌낼 수 없다.
 

인터넷은 사용자의 활용 능력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공공 도서관 같은 존재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쓰레기 같은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정보로 변한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에서 자신의 목적에 맞는 정보를 찾고 거기에 자신의 지식과 방법을 가미해 새롭고 유용한 정보를 만드는 작업은 중세의 연금술과 비슷하다.

자신의 목적에 맞는 자료를 찾기 위해 온갖 사이트를 검색하는 네티즌의 노력은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해 금을 얻고자 노력했던 중세시대 연금술사들의 노력과 다름없다. 그러나 인터넷을 막연히 정보의 보물창고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자신의 목적과 용도에 따라 효율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이를 활용해 정보시대의 문맹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 활용의 격차 문제는 정보 불평등의 문제로 연결된다. 정보화사회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information rich)과 정보를 적게 가진 사람(information poor)간의 정보불평등이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정보는 소유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함으로써 그 가치가 실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아톰으로 만들어진 상품들은 소유 자체가 사용을 보장하지만 비트로 만들어진 정보는 사용을 전제로 하지 않고 소유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정보가 갖는 가치를 더욱 확대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을 고려할 때 정보 빈자라는 말 보다는 '정보 거지'(information homeless) 라는 비유가 더 설득력이 있다. 거지가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고 남에게 구걸하듯 스스로 정보를 챙기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은 정보거지다. 디지털시대의 거지는 정보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information poor)이 아니라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과 컴퓨터의 친숙하고 쉬운 만남(interface)을 연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보거지를 구제하려는 데 있다.

미국 MIT 미디어연구소 소장 네그로폰테는 그의 저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상당한 우려를 표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책 본문에서 그는 우리나라를 딱 한 번 언급하고 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대학 교육 체제는 마치 마라톤을 완주하고 들어온 사람에게 암벽등반을 하라는 격" 이라고 주입식 교육의 혹독함을 비꼰다.

우리의 교육이 논술을 도입하고 교과체제를 개편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보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것이다. '물고기' 를 주는 것으로는 기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는 정보를 사용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정보생산자 교육을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비트시대의 교육이며 디지털 사회가 '남의 잔치' 가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사람과 컴퓨터의 쉬운 만남을 연구하는 이유는 정보거지를 구제하기 위해서다.
 

1996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백욱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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