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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버금가는 낙농의 대가

곤충 사육해 젖을 짜낸다

인간이 처음으로 소 돼지 개 고양이 등의 가축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인간만큼 다른 동물들로부터 음식의 많은 부분을 얻는 동물도 없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 몸을 이루는 조직을 직접 섭취함은 물론 달걀이나 우유처럼 그들이 번식을 위해 만들어내는 물질의 일부를 뺏어 먹기도 한다.

이렇듯 왕성한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은 방대한 초원의 목장은 물론 양계장 양어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가축을 보호하며 사육한다. 중남미에는 갈수록 심해지는 식량난을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도마뱀의 일종인 이구아나(iguana), 쥐과에 속하는 동물 중 가장 큰 아구티(aguti), 캐피바라(capibara) 등을 사육하는 농장도 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참으로 묘한 동물이 아닐 수 없다.

보호해주는 대가로 최고급 영양식단을 제공
 

개미가 진딧물로부터 단물을 받아먹고 있다.
 

동물 세계에서 인간 다음으로 가축을 많이 기르는 동물을 꼽으라면 역시 개미를 들 수 있다. 서로 종은 달라도 같이 살며 서로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공생관계를 얘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개미와 진딧물’이 좋은 예다. 개미는 진딧물을 무당벌레 등의 천적 곤충들로부터 보호해 주고, 대신 진딧물은 식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일부를 개미에게 제공한다.

진딧물과 개미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면 이들이 어쩌다 만나 지내다보니 서로 돕게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영국 학자들이 관찰한 한 예를 살펴보자. 진딧물은 하루 중 14%동안만 개미의 보호를 받는데, 이 때 하루에 만들어내는 단물(honeydew)의 84%가 생성된다. 다시 말해 진딧물이 단물을 만드는 목적은 거의 전적으로 개미를 위한 것이다.

개미 한마리가 진딧물 한마리로부터 짜내는 단물의 양은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군락 수준에서 보면 워낙 많은 일개미들이 제가끔 진딧물을 사육하며 거둬들이는 덕택에 단물로부터 얻는 영양분은 때로 군락 전체 식량의 75%에 달하기도 한다. 가히 목축을 전문으로 하는 개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물의 성분을 분석해봐도 진딧물이 개미에게 얼마나 정성스레 보답하는가를 알 수 있다. 진딧물은 식물로부터 빨아올린 즙을 그대로 개미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진딧물이 개미에게 바치는 단물은 물과 탄수화물을 비롯해 각종 아미노산과 온갖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는 완전 영양식이다.

움막을 만들어 사육하기도

한편 개미는 진딧물을 단순히 보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양치는 소녀가 양떼를 풀이 많은 곳으로 몰고 다니듯, 개미도 때로는 진딧물떼를 이 잎 저 잎 몰고 다닌다. 식물들로부터 보다 많은 즙을 빨아당길 수 있도록 명당 자리를 찾아 옮겨 다니는 것이리라.

어떤 개미는 진딧물을 초원에 풀어놓고 기르는 대신 외양간을 짓고 그 안에서 사육하기도 한다. 식물의 뿌리나 뿌리에 가까운 줄기에 흙으로 움막을 만들고 그 속에서 진딧물을 키우는 것이다.

필자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시절 지금은 클렘슨 대학 곤충학과 교수인 애들러(Peter Adler) 박사와 인근 숲속으로 야외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 이때 1m 정도의 사시나무 줄기 맨 아래 흙담으로 둘러싸인 움막 속에서 개미들이 진딧물떼를 사육하는 광경을 발견했다.

그 후 우리는 정기적으로 이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러던 어느 날(6월 마지막 주였던 것 같다) 개미와 진딧물이 흔적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우리가 관찰하던 모든 움막들이 하루아침에 철거된 것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 다음 해에도 거의 같은 때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듬해 여름 필자는 하버드 대학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에 연구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그 일을 되새기며 의문을 풀지 못해 아쉬워하곤 한다.

사육하는 가축 종류도 각양각색
 

개미들이 기르는 다양한 모습의 가축들.모두 뿔매미 종류다.
 

소 뿐만 아니라 염소 양 등 젖을 짤 수 있는 동물이면 가리지 않고 사육하는 인간처럼 개미도 여러 곤충들을 다양하게 기른다. 온대지방에서는 진딧물이 가장 흔하게 길러지는 가축이지만 열대로 갈수록 가축의 종류가 다양해진다.

무슨 이유인지 확실치 않지만 열대로 갈수록 진딧물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만큼 진딧물을 기르는 개미들도 찾기 어렵다.

대신 열대에 사는 목축개미들은 뿔매미(treehoppers) 매미충(leafhoppers) 깍지벌레(scale insects) 등 매미목(Homoptera)에 속하는 곤충은 물론 부전나비과(Lycaenidae)에 속하는 나비의 애벌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축을 사육한다. 그들은 대개 나무의 줄기나 잎 위에서 가축들을 기르지만, 특히 깍지벌레는 아예 집안에서 키우기도 한다.

개미가 가축을 기르는 모습 중 가장 묘한 것은 아마도 필자가 파나마 열대림에서 관찰한 애즈텍 개미의 경우일 듯 싶다. 필자도 처음에는 그저 개미가 나무로부터 직접 무언가를 빨아먹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무 속으로부터 얇은 대롱 하나가 뾰족하게 나와 있고 그 대롱 끝을 개미의 안테나가 건드릴 때마다 작은 액체 방울이 뽈쏙뽈쏙 솟아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 대롱을 싸고 있는 주변을 절단해 보았더니 무척이나 작고 유별나게 생긴 흰 깍지벌레 한 마리가 들어앉아 있었다.

깍지벌레는 물론 개미에게 보호받고 있었다. 그러나 달리 보면 개미에 의해 비좁기 짝이 없는 사육실에 감금된 채 젖을 짜 바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축들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수확만을 올리려고 좁은 사육실에 많은 가축들을 몰아 넣고 기르는 인간의 잔인함을 개미들에게서도 보는 것 같아 자못 섬뜩하기도 했다.

때로 개미는 인기 없는 주인

목축개미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목축업에 종사하는 벌이나 말벌도 가끔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 르토노(Deborah Letourneau) 박사와 필자가 중미 코스타리카의 코르코바도라는 외딴 열대림 속에서 개미와 말벌이 경쟁적으로 매미충들을 보호하며 젖을 짜는 모습을 관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매미충들이 개미보다 말벌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이었다. 말벌이 뱃속에 모아둔 단물을 집에 가져다 놓으려 자리를 뜨면 곧 개미들이 나타나 매미충의 젖을 짜기 시작하는데, 말벌에게 단물을 줄 때보다 양이나 횟수로 봐 훨씬 적게 제공하는 것이다. 가축이 마음에 드는 주인을 선택하는 셈이다.

현재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개미들이 육식을 즐기는 포식동물이라는 점과 개미에게 사육되고 있는 진딧물이나 나비의 애벌레 등이 모두 몸도 연하고 특별한 자기 방어능력도 없는 초식동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과연 이들이 어떻게 어느 순간부터 개미에게 잡혀먹히지 않고 서로 돕는 동반자가 됐는가는 진화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과제다. 이미 언급한 대로 개미는 가축으로부터 영양분을 얻는 대신 그들을 다른 포식동물로부터 보호한다. 더욱이 가축이 살집을 지어주기도 하고 그들의 주변 환경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아주는 보건위생 서비스도 제공한다.

진딧물의 먹는 습성을 통해 하나의 해답을 추측할 수 있다. 진딧물은 식물의 즙을 빨아먹을 때 그 속에 지나치게 많이 들어 있는 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물만 배설되는 것이 아니라 당분도 일부 빠져나가게 된다. 그 결과 주변이 근적끈적해지고 냄새가 나 각종 포식 동물들이 꼬여드는 것은 물론 곰팡이가 피기도 한다. 따라서 그 옛날 진딧물의 조상들이 원래는 그들을 잡아먹던 개미들에게 상당한 양의 식량을 제공하고, 그 대신 신변 보호와 여러 형태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끔 수차에 걸친 계약 갱신을 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결국 서로에게 이로운 상호 협력관계를 맺기에 이르렀으리라.

자식까지 떠맡기는 뿔매미
 

깍지벌레를 감금해 놓고 젖을 짜는 애즈텍 개미.
 

그렇다면 왜 모든 진딧물들이 개미와 공생관계를 갖지 않는 것일까. 개미와 공생하는 진딧물과 그렇지 않은 진딧물과는 몸의 구조부터 다르다. 개미의 보호를 받지 않는 진딧물들은 다리가 길고 단물을 배설하는 대롱이 긴 반면 개미와 공생하는 진딧물들은 비교적 짧은 다리와 대롱을 갖고 있다.

개미와 공생하는 진딧물들은 이같은 형태적인 적응 외에도 행동적 적응력도 지니고 있다. 아무 때나 일률적으로 단물을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개미의 보호를 받을 동안 집중적으로 만들어내느 것이다. 그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개미와 진딧물은 오랜 세월 동안 공진화해온 동반자들이다.

뿔매미 중에는 간혹 개미의 서비스 정신을 교묘하게 이용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식들까지 돌보게 하는 종들도 있다. 새끼들을 낳아 기르다 자기들을 보호해줄 충실한 개미를 만나면 아예 자식들을 다 떠맡기고 자기는 저만치 떨어져 나가 새로 알을 낳아 품는 어미들이 있다. 개미 보모를 가진 뿔매미 어미는 혼자너 자식을 키우는 어미에 비해 훨씬 높은 번식성공도(reproductive success)를 가지므로 진화적으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셈이다. 이쯤되면 가축이 주인을 이용하는 격이 아닐까.
 

매미충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단물을 제공받는 말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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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최재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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