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류가 가장 다양하면서도 많이 팔린는 약이 위장약이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시메티딘(타가메트)과 라니티닌(잔탁)의 총 매출액은 4조억원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무엇일까? 바로 위장약이다. 위는 잠자는 곰과 같다. 어지간한 상처에 감각이 없다가도 일단 고장이 나면 계속해서 신경이 쓰일 만큼 통증이 느껴진다. 위는 위산 펩신 등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는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중탄산분비 점막분비 상피세포로 견딘다. 원인불명으로 이 균형이 깨질 때 위는 아프기 시작한다.
성인 10% 이상이 일생 동안 위궤양 및 십이지장 궤양을 앓을 만큼 위장병은 흔하다. 위점막 보호제가 개발됐으나 이런 약들은 대부분 공격인자를 약화시키는 원리를 이용한다. 속쓰릴 때 먹는 '무슨무슨겔'은 과도한 위산을 중화해 산도를 낮춤으로써 펩신의 공격이 저하되도록 한다.
1970년대 시메티딘과 라니티딘이 개발됐다. 히스타민에 의한 위산분비를 차단해 위산 자체를 줄이는 원리로 디자인된 이 약은 위·십이지장궤양 치료에 획기적인 기원을 이룩했다. 그 업적으로 영국의 제임스 블랙(James Black)은 1988년 노벨의학상을 수
상했다.
많이 아는 만큼 빨리 발견
20세기 상반기까지 약 발견 방법은 주먹구구식이 많았다. 천연물질이나 합성화합물을 스크리닝해 약의 실마리가 발견되면 그 구조를 다양하게 변형시켜가며 효능성과 안전성이 뛰어난 최적구조를 찾아내곤 했다. 그래서 제약회사에서는 화학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 했다.
무작위적인 접근은 지금도 약발견의 중요한 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20세기 하반기부터는 인체의 기능이나 병적 상태가 어떠한가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약을 발견하는 비중이 점차 증가됐다. 따라서 이전과는 다르게 생리학자 생화학자 미생물학자 약리학자 등의 역할이 커졌다.
인체 기능을 이해하는 것이 약발견의 지름 길이라는 인식을 가졌던 최초의 과학자가 제임스 블랙이다. 그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12년간 생리학 교수로 있다 영국 ICI(Imeperial Chemical Industries)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1960년 지금도 부정맥 고혈압 협심증 치료제로 많이 사용하는 프로프라놀롤을 발견했다.
1964년 그는 영국 스미스클라인 프렌치(SKF)연구소로 자리를 옮긴다. 1963년 부임한 연구소장 에드워드 페이제트가 회사의 연구 개발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블랙을 약리 책임자로 초빙했던 것이다. 그는 그레이엄 듀란트, 로빈 가넬린, 마이클 파슨스과 팀을 이뤄 연구를 시작했다.
블랙은 히스타민을 연구주제로 삼았다. 히스타민은 알레르기원에 노출될 때 체내에서 방출되는 물질 중 하나로 기관지축소, 눈 폐 코의 분비물증가, 재채기, 피부가려움증, 두드러기 등의 알레르기 반응을 매개하는 물질이다. 히스타민이 알레르기 반응을 매개하고 위산분비를 촉진하는 반면, 알레르기 치료제인 항히스타민제는 위산분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블랙은 알고 있었다. 이제 히스타민의 위산분비 작용만을 억제하는 약을 디자인해 항궤양제를 찾아내리라 착안한 것이다. 아무도 시도해 본적이 없는 착상이었다.
산너머 산, 그러나 물거품만
1964년 연구에 착수한 블랙은 파슨스와 함께 항궤양제를 분석할 방법을 확립했다. 그러나 분석팀에 비해 가넬린을 중심으로 한 합성팀은 막연하게 연구를 시작해야 했다. 단지 이미 개발된 항히스타민제는 위산분비 억제 효과가 없었으므로 히스타민 구조부터 다시 출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들은 4년간2백개 이상의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했다. 그러나 결과는 없었고 미국 SKF본사는 이 과제의 중단을 종용했다. 그러나 블랙은 신념을 가지고 연구를 계속했다. 그들은 본사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채 연구에 몰두했다.
그결과 1968년 4-메틸히스타민이 위산분비를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원하는 목표와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위산분비만을 선택적으로 촉진하는 물질이 있다는 사실은 히스타민이 알레르기반응 매개 부위와는 다른 어떤 부위와 결합해 위산분비를 촉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수용체만을 차단하는 물질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희망섞인 단서를 제공한 것이다.
2백여개의 화합물을 더 합성하고서야 겨우 뷰리마미드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 물질은 아직 약효가 약했고 주사로는 몰라도 약으로 먹을 경우 효과가 없었다.
1년간70개의 화합물을 더 합성한 후 메티아미드를 얻어냈다. 이 물질은 위산분비 차단 능력이 뷰리마미드에 비해 10배가 높았고 약으로 먹어도 효과가 있었다. 약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본격적인 동물 임상실험이 시작됐다. 이 실험에서 효능성과안전성만 입증되면 새로운 약이 탄생하는 것이다.
1973년 봄에 시작된 메티아미드의 임상시험은 처음부터 수주내에 궤양이 깨끗이 치료되는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 블랙은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교수로 옮겼다. 나머지 임상시험도 성공적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73년 크리스마스직전 에딘버러에서 시험한 한 환자에게서 무과립세포증이 관찰됐다. 1974년 6월 다시 한건의 동일한 부작용이 보고됐다. 부작용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낙관론을 펴는 사람이 있었으나 회사에서는 공식적으로 임상시험을 중지시켰다.
메티아미드의 중도탈락에 연구팀은 낙심했다. 블랙 뒤에 팀장이 된 로저 브림블쿰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시 나는 메티아미드가 훌륭한 약이라고 지방의사회와 허가기관에 알리기 위해 여행중이었다. 그러나 돌아오자마자 메티아미드 실험을 중단한다고 알려야 했다."
점차 기력을 회복한 연구팀은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연구 기본개 념 정확. 기초약리 프로필도 양호. 독성은 히스타민 차단과 무관. 메티아미드의 구조상 특징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났다면 구조를 바꿔야 함.
이런 결론에 도달하자 연구팀은 의욕적으로 화합물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시메티딘이다. 이 물질을 메티아미드에 의해 무과립세포증을 유발했던 환자에게 투여했다. 그 결과 안전한 약임이 입증됐다. 이제 제대로 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시 2년간 임상실험 끝에야 약으로 발매할 수 있었다.
시메티딘의 상품명은 히스타민의 길항제(anTAGonist)와 시메티딘(ciMETidine)에서 딴 타가메트였다. 이 약은 히스타민의 위산분비를 차단하는 최초의 약으로 위·십이지장궤양에 특효약이 됐다. 12년간의 연구 끝에 나온 결실였다.
모방은 성공의 어머니
한편 영국 글락소웨어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이미 1968년부터 항궤양제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에 위산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인 가스트린의 작용을 차단하는 물질을 찾는 연구를 했다. 그러나 아무런 결과도 없었다. 1972년 SKF의 블랙이 발표한 뷰리마미드 논문은 히스타민이 작용하는 수용체에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이것은 연구팀에게 중요한 뉴스였다.
연구팀은 약리학자인 로이 브리튼, 존 클리테로, 배리 프라이스, 데이비드 잭으로 구성됐다. 연구팀의 목표는 SKF와 같았지만 전략은 달랐다. SKF는 히스타민의 이미다졸 고리를그대로 둔 채 다른 부위를 변형했으나 글락소에서는 처음부터 이미다졸 고리가 아닌 구조를 찾으려고 했다. 브리튼은 이미다졸 고리를 고려하지 말라며, "우월하길 원하면 무언가 달라야 하지만 다르다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합성팀장 클리테로는 프라이스에게 히스타민의 이미다졸 고리 대신 아미노알킬기로 치환된 푸란 고리를 가진 화합물을 합성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실마리를 찾아냈고 구조변형을 계속한 결과 라니티딘을 발견했다. 라니티딘은 시메티딘이 발매된 1976년에 특허출원됐다.
글락소의 신약 임상시험은 영국에서만 실시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라니티딘의 개발이 시급했으므로 20개국에서 동시에 임상실험을 실시했다. 이것은 의료제도가 각기 다른 여러 국가에서 광범위한 경험을 얻는데도 도움이 됐다. 라니티딘은 합성된지 5년 4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잔탁이라는 상품명으로 1981년 발매됐다. 94년 시메티딘은 10억달러 라니티딘은 40억달러의 매상을 올렸다(사진 및 자료협조, 영국 SKF 및 영국 글락소).
용어설명
수용체 :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약물 항원 등과 특이하게 결합하는 세포표면 또는 세포질 내의 분자부분. 처음에는 가설적 개념이었으나 지금은 분자수준에서 자세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히스타민은 ${H}_{1}$-수용체와 결합하면 알르레기 반응을 유발하고 ${H}_{2}$-수용체와 결합하면 위산분비를 촉진시킨다.
길항제 : 수용체와 결합해 생리반응을 유발시키는 물질을 효능제라 하고, 결합은 하나 생리반응은 일어나지 않은 물질을 길항제라 한다. 효능제와 길항제를 섞어 수용체에 노출시킬 때 효능제가 결합할 수용제의 일부를 길항제가 점유하므로 효능제 한가지만 복용하는 경우보다 생리반응이 적게 일어난다. 히스타민은 효능제고 시메티딘과 라니티닌은 히스타민의 길항제다.
상피세포 : 상피조직을 구성하는 세포. 상피조직 이란 동물체를 구성하는 조직의 하나로 체내외의 표면을 싸는 조직이다. 여러층의 상피세포와 약간의 세포 간질로 구성된다. 내부의 보호가 주작용이고 감각 분비등의 작용을 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