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천문은 취미활동인 동시에 학문이며 생활과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된 통합단체 하나 없이 '별을 관측 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들'을 제대로 일궈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 '아마추어 천문'이라는 말이 자리잡은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어느 모임이고 세월이 흐르면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난 일을 돌이켜 보며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취지에서 우리나라 아마추어 천문의 초창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자코비니 유성우로 시작
1972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적합한 자코비니 유성우(유성들이 밤하늘의 한 점으로부터 무수히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관측지로 지목되자, 일본에서 많은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나라 '체면상' 급조된 단체가 한국아마추어천문가회(KAAA, the Korean Amateur Astronomers Association)였다. 그리하여 KAAA의 초대 회장에는 당시 '학생과학'을 발행하던 수송과학기술협회 회장 남궁호씨가 추대됐다. 그러나 고대했던 자코비니 유성우가 '소문난 잔치'로 끝나게 돼 일본의 아마추어들도 발걸음이 끊어지다시피 되어 KAAA는 흐지부지 돼버렸다. 천문학을 전공하던 어떤 분은 여자친구 부모님들에게 자코비니 유성우를 실감나게 선전했다가 유성우가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졸지에 '실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그후 그분은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KAAA는 그 후 몇 년간을 학생과학에 근무하던 윤실씨(현 Korea Times 근무)의 배려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게 됐다. 그러나 1977년 윤실씨가 학생과학을 떠나게 되면서 회원 30여명의 KAAA는 해산위기에 처하게 됐다. 적자에 허덕이던 학생과학에서 더 이상의 지원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회원 중에는 국내 최고령아마추어 나은선씨, 새로운 방식의 자작 망원경을 연구하던 이만성씨(현 신탁은행 근무), 군에 입대하기 하루 전까지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오목거울(반사천체 망원경의 주경)을 연마하던 백기동씨(현 우성정밀광학 대표) 같은 분들이 있었지만, KAAA 운영에 직접 나서기에는 모두 생활에 너무 얽매인 상태였다.
당시 국민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회원 10~20명은 '눈만 반짝거리며'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다 못해 필자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반사 천체 망원경을 제작하여 팔던 계룡광학연구소를 찾아갔다. 계룡광학연구소는 1987년 문을 닫았지만 당시에는 사업이 번창해서 망원경을 구입한 사람들의 모임인 계룡아마추어천문회를 가지고 있었다. 유진규 소장(작고)과 유원준 기술부장(유 소장의 아들)에게 KAAA 실정을 진지하게 설명하고, 적어도 단체 안에서는 상업성을 띤 일을 배제하기로 약속하고 계룡 아마추어 천문회를 KAAA에 합병시켰다.
유원준씨를 총무로 새로 맞이한 KAAA는 회장으로 연세대 천문기상학과(현 천문대기과학과) 나일성교수를 모셨다. 나일성 교수는 이전에 틈틈이 일반인을 위한 천문학 강좌를 한 바 있어서 우리 아마추어들에게 낯설지 않은 분이었다.
새로운 진용을 갖춘 KAAA는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문으로 있던 유경로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당시), 현정준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 조경철 연세대 천문기상학과 교수(당시, 현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 같은 분들이 무료 강의를 자청하고 나섰고, 학생과학에서도 물심양면으로 KAAA를 도왔다. 특히 유원준씨는 사재를 털어가며 총무역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 KAAA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어린 회원들이 계룡광학연구소에서 천체망원경 부품을 아무리 많이 가져가도 화를 낸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총 회원 수가 5백명을 돌파하게 되었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부산에서는 지부가 따로 결성됐다.
마침내 1979년에 이르러서는 제1회 한일친선 별관측대회를 우리나라에서 갖기에 이르렀다. 이 대회는 8월27일부터 31일까지 4박5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됐는데, 일본 아마추어들은 국내의 여러 천문시설 견학과 서울 근교 및 민속촌 관광 등으로 천체 관측 외에도 바쁜 날들을 보냈다. 아쉬운 것은 이 대회가 1회로 끝나고만 것이었다. 이는 우리가 일본을 방문할 차례인 2회 모임이 무산되었기 때문였는데, 그 때만 해도 출국하는 일이 지금과 달리 쉽지 않은 상태였다.
한편 어린이회관 천체과학관을 중심으로 이권삼씨(아르헨티나 이민), 변상식씨(현 배달문화사 근무)가 회관운영 취지에 따른 육영 천문회를 발족시켰다. 그 후 육영천문회는 특히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천문학을 보급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으나 80년대 들어 기본 취지와는 달리 시대의 변화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별자리 10개정도 알아볼 수 있는 사람
KAAA는 여러가지 구조적 취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신입회원이 쏟아져 들어와도 조직적으로 관리할 수 없었고 그 결과 많은 신입회원이 들어오자 마자 KAAA를 떠나게 되었다. 아마추어 천문에 숙달된 기존회원과 신입회원들 사이의 괴리감을 해소하는 문제도 큰 장애물이 됐다. 이 문제는 지금도 모든 아마추어 천문 모임의 숙제다.
사실 '아마추어 천문가란 이러한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정의할 수 없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우주의 신비를 동경하고 별과 밤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마추어 천문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보다 진지하게 관측을 하는 사람을 아마추어 천문가라고 제한해 정의한다면, '별자리를 10개 정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엄언히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하지만 별자리를 찾아 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초보자에게는 자상하고 친절한 안내가 절실하다.
KAAA가 지닌 결정적인 문제점은 영세성이었다. 재정은 언제나 적자여서 계룡광학연구소에 의지하다시피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1980년 말 국립천문대(천문우과학연구소 전신, 당시 대장은 민영기 현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로 부터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명실 상부한 국내 통합단체로서의 새로운 단체 결성이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당시 국립천문대 본부)에서 있었다. 육영 천문회의 변상식씨 제안에 따라 새 단체 이름은, 국어로는 글자 하나가 다르지만 영어로는 같은 약자 KAAA로 표기되는 한국아마추어천문협회(the Korean Amateur Astronomical Association)로 바뀌게 되었다. 새 KAAA의 초대 회장으로는 박동현 덕성여대 교수(작고)를, 부회장으로 최창훈 국립천문대 위치천문연구실장(미국 이민)을 추대했다. 그러나 국립천문대 측 실무자였던 최 부회장의 미국 이민과 통합절차상의 여러문제 등으로 새 KAAA의 탄생 의미는 퇴색하게됐다. 나중에 박동현 회장까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을 때, 회원들은 KAAA에 왜 그렇게 운이 따르지 않는가 하고 한탄하기도 했다.
80년대 들어서자마자 대학에 아마추어 천문서클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1980년 서울대 아마추어 천문회가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의 주요 대학에 속속 아마추어 천문 서클들이 탄생했다. 대학서클 탄생에 KAAA회원들이 주로 역할을 담당했음은 물론이다. 이 때의 주역들은 초기 KAAA의 '눈만 반짝이던' 코흘리개들이었다. 그 후 지방의 주요 대학에서도 잇따라 아마추어 천문 서클이 결성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학서클은 세대교체가 이뤄져 KAAA와 거리가 멀어졌다.
아마추어 천문은 일종의 레저나 취미활동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결국 친한 사람들 몇몇끼리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마추어 천문은 동시에 '학문'으로서의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생활과학이다. 지난 86년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세계아마추어 천문연맹은 전세계적인 전문가그룹 못지않게 핼리혜성탐사에 큰 기여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학회' 성격을 지닌 전국적 통합 단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왜 이러한 통합 단체의 출현이 절실한 문제인지 한가지 예를 더 들어 보자.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는 밤하늘의 별을 천체 망원경을 통해 관측하고자 하는 수많은 나이 어린 학생들이 있다. 그 학생들에게 천체 망원경으로 우주의 신비를 보여주는 일은 가장 살아있는 과학교육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과학교사들이 백방으로 도움을 받으려고 알아 봐도 쉽게 도움을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KAAA는 경기도 가평에 4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천체 관측소를 가지고 있지만 KAAA회원만으로는 도저히 어린 학생들에게 봉사할 수 없어 관측소는 텅빈 채 놀고 있다. 만일 대학생 아마추어 회원들을 '대학부'로 거느리고 있는 통합단체가 있다면 "이번 주말에는 ○○대학 서클에서 △△△교사가 지도하는 □□고등학교 과학반을 도와줘라"하는 식으로 일을 해 나갈 수 있어, 가평관측소의 천체 망원경은 쉴 틈이 없게 될 것이다. 부수적으로 대학생들도 보다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고, 대학 졸업 후에도 통합 단체의 '일반부'에 남게돼 후배들과 멀어지는 일도 없게 될 것이다.
현재 부산 지방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과 같이 전국의 과학관과 통합 단체가 연계될 수 있으면, 통합 단체는 가장 훌륭한 '영재교육기관'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그 뿐이랴. 1년에 몇번씩 통합단체 산하 전모임이 '스타 파티(star party)'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속히 통합 단체로서 '아마추어 천문학회'가 이 땅에 출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