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겨울을 풍요롭게 하는 우주 전람회가 열렸다. 새로운 중력렌즈, 태양계와 닮은 행성계, 이오의 화산활동, 토성의 오로라, 가니메데의 오존 등. 허블망원경과 함께 그 흥미진진한 세계로 달려가 보자.
처음 공개되는 토성 오로라
토성에 오로라가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지난 10월9일 허블우주망원경은 원자외선 영역에서 토성의 오로라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1)에 보이는 토성 북극의 오로라 '커튼'은 허블우주망원경이 관측을 수행한 2시간 동안 크기와 밝기가 아주 빠르게 변화했다. 당시 토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13억㎞.
오로라는 토성 자기권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하전입자들이 대기 상층의 분자나 수소원자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곧 오로라는 고속으로 질주하는 입자들의 '폭격'에 의해 극지방의 상층 대기가 짧은 파장, 특히 원자외선(1,100-1,600Å)에서 밝게 빛나는 현상이다.
토성의 경우 자기장이 자전축과 일치하기 때문에 오로라의 '고리'는 양극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룬다. 남극 오로라가 어둡고 북극 쪽이 밝은 것은 촬영 때 토성 북극이 지구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
허블우주망원경의 관측 결과는 20세기 말부터 토성을 근접비행하게 될 카시니(Cassini) 탐사선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카시니 계획은 NASA와 유럽우주기구(ESA)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토성의 오로라에 관한 연구가 시작된지는 얼마 안된다. 1979년 파이어니어는 토성 양극에 나타난 밝은 지역을 처음 발견했고, 1980년대 초 자외선관측위성(IUE)에 이어 보이저1,2호 역시 양극지방에 나타난 밝은 방출선 스펙트럼을 보내온 바 있다. (사진1)의 오른쪽은 1994년12월1일 허블우주망원경이 가시광선 영역에서 찍은 토성 이미지다.
새로운 중력렌즈 발견
허블우주망원경이 새로운 종류의 중력렌즈를 찾아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모두 십자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중심 은하 주변에 렌즈 효과에 의한 4중 이미지가 또렷하게 나타나 있다. 중력렌즈는 '확대경'(magnifying glass)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사진2)의 아래쪽에 나타난 렌즈는 허블팀의 오스트랜더 (Eric Ostrander)가 운좋게 발견했다. (사진2)의 왼쪽은 임명신 박사가 몇주 후에 발견한 작고 어두운 중력렌즈다. 4개의 어둡고 푸른 천체들이 이보다 밝은 타원은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을 사진에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력렌즈의 존재는 분광관측을 이용해서 확인하는 것이 통례다. 하지만 이 경우 타원은하를 둘러 싼 4중렌즈가 너무나 또렷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여태까지 지상 관측시설들이 가깝고 밝은 몇몇 중력렌즈에 대해서만 관측을 수행했다. 그러나 허블우주망원경은 어둡고 멀리 있는 중력렌즈들까지도 관측하므로 더 큰 범위의 우주를 조사할 수 있다. 중력렌즈란 질량이 어마어마하게 큰 천체 주위에 형성되는 중력장에 의해 멀리서 오는 빛이 굴절·확대되거나, 이미지가 뒤틀려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중력렌즈는 렌즈 뒤에 있는 천체와 렌즈 역할을 하는 천체의 질량분포와 위치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천체가 호(arc)로 나타나거나, 2중 3중 또는 4중으로 보이기도 한다.
베타 픽토리스에 행성계 있다
조각실자리 베타 픽토리스(β Pictoris) 주변에는 먼지로 이뤄진 납작한 원반이 있다(과학동아 1995년 2월호 참조). 천문학자들이 이 별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 먼지 원반이 행성계의 존재를 암시하기 때문. 최근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사진에는 원반이 예상보다 훨씬 얇게 나타났다. 원반 두께는 추정치의 4분의 1인 약 6억㎞.
(사진3)에 나타난 것처럼 베타 픽토리스의 원반계는 지구에서 볼 때 납작한 접시처럼 보인다. 원반이 얇은 것은 물질이 모일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 경과했기 때문이며, 이것은 나이가 예상보다 오래 됐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번 관측을 계기로 중심별 주위에 혜성이나 목성 크기의 행성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커졌다. 원반계는 이론적으로 행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
우주에서 가장 작고 차가운 별
GL 105C는 찰리 채플린처럼 작은 거물급 슈퍼스타를 연상시킨다. (사진4)의 오른쪽에 나타난 이 별은 GL 105A(화면을 채우고 있는 밝은 별)의 동반별로, 고래자리 방향으로 27광년 떨어져 있다. 천문학자들이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GL 105C라고 불리는 이 왜성은 GL 105A보다 2만5천배 어둡다. 만일 GL 105C가 태양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면 지구에서 보는 밝기는 겨우 보름달 의 4배에 지나지 않는다.
GL 105C는 작년에 이미 팔로마천문대의 골리모프스키(David Golimowski) 등에 의해 존재가 처음 확인됐다. 하지만 GL 105A와의 각거리가 정밀하게 측정된 것은 이번 관측이 처음. 천문학자들은 앞으로 두 별의 궤도 운동을 살펴 질량을 정확하게 알아낼 것이다.
팔로마 그룹은 GL 105C의 질량이 태양의 약 8-9%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값은 별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의 질량에 해당한다. 이러한 임 계질량보다 가벼운 천체도 물론 빛은 발하지만. '별'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가스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런 천체는 갈색왜성 (brown dwarf)이라고 부르는데, 핵융합반응이 아닌 중력수축에 의해 빛을 낸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GL 105C가 GL 105A보다 훨씬 어두운데, 이로부터 GL 105C가 차갑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별의 온도는 약 2천4백K 정도로 예상된다.
밝게 나타난 별이GL 105A, 작고 어두운 별은 GL 105C (사진/Golimowski).
유로파에는 산소가, 가니메데에는 오존이, 칼리스토에는 얼음층이 있음이 확인됐다(사진/K. Noll. J. Spencer).
목성 가족 새모습으로 단장
4세기 전 피렌체의 갈릴레이는 목성의 4대 위성을 3㎝ 망원경으로 처음 발견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2.4m의 대구경 망원경으로 5백㎞ 상공에서 찍은 4대 위성의 고해상 이미지(사진5)를 보고 있다.
목성은 지구로부터 8억㎞라는 먼 거리에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 아무리 좋은 관측시설을 사용하더라도 그 위성들은 단지 흐릿한 원반으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허블우주망원경은 보이저 탐사 이후 처음으로 4대 위성의 표면을 고분해능으로 촬영했다. 보이저는 목성 달들의 스냅사진을 전송하는데 그쳤지만, 허블우주망원경은 그 표면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하고 있다.
허블우주망원경은 지난 몇년 동안 이오 표면에서 일어나는 화산 활동을 조사해 왔다. 그리고 유로파(Europa)의 산소와 가니메데의 오존을 검출하기도 했다. 행성 천문학자들은 허블우주망원경의 자외선 관측으로부터 칼리스토(Callisto) 표면에서 생성된지 얼마 안되는 얼음층을 발견했다. 이것은 목성의 자기권에서 발생한 하전입자 또는 아주 작은 유성체(micrometeorites)가 칼리스토 표면에 있는 기존의 얼음층과 충돌해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오의 화산활동
목성의 달 이오(Io)는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 태양계 내의 유일한 위성. (사진6)의 오른쪽(1995년 7월 촬영) 이미지에서 지름 3백㎞에 달하는 거대 구조를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이 지형은 이오에 일시적으로 생긴 것. (사진6)의 왼쪽(1994년 3월 촬영)과 비교하면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두 사진은 허블우주망원경의 광각행성카메라(WEPC2)를 사용해서 얻은 것으로, 근자외선 보라색 노랑색으로 촬영한 각각의 이미지를 합성한 것. 로웰천문대의 스펜서(John Spencer)는 "라 파테라(Ra Patera)화산을 둘러싼 이 지형은 화산폭발에 의해 분출된 얼어붙은 가스, 또는 새로 분출한 용암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지역은 다른 곳과는 달리 노랑색을 띠는데, 이것은 용융 물질이 비교적 신선하기 때문.
이오의 표면온도는 -1백50℃ 가량이지만 화산활동 지역은 1천℃에 이를 것으로 생각된다. 행성천문학자들은 허블우주망원경과 갈릴레오 탐사선('과학동아' 1995년 10월호 참조)의 근접촬영을 통해서 화산지역의 수명과 진화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갈릴레오는 올 12월부터 이오 표면을 촬영할 계획이다.
헤일-밥 혜성에서 분출되는 제트
허블우주망원경은 얼마 전 헤일-밥(Hale-Bopp)에서 분출되는 제트와 주위에 떠다니는 혜성 조각을 발견했다('과학동아 1995년 10월호 참고). (사진7)에서 혜성이 나선형으로 빛을 내는 것은 핵이 자전하면서 핵에서 분리된 얼음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스프링클러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르지 않을까. 핵이 한번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주일.
헤일-밥 혜성에서 흥미를 느끼는 것은 10월10일까지 2개월여의 지상 관측에서 2번 이상 제트의 밝기가 변하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우연하게도 9월26일 허블우주망원경의 첫 관측에서 그 중 하나가 기록됐다. 이것은 혜성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여태 시도된 적이 없었던 높은 분해능 관측으로 얻은 결과였다.
또한 이 관측은 사상 최초로 혜성핵이 떨어져 나가는 현상을 고분해능으로 목격한 사건이었다. 천문학자들은 허블우주망원경과 테이드(Teide) 천문대 82㎝ 망원경에서 얻은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얼음에서 증발한 가스가 시속 1백9㎞의 속도로 분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허블우주망원경 관측을 통해서 헤일-밥이 정말 거대한 혜성인지, 아니면 크기는 보통이지만 격렬한 변화를 일으키며 짧은 시간 내에 어두어지는 혜성인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헤일-밥의 크기는 약 1백㎞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헤일-밥은 95년 말 현재 목성궤도 바깥에 있지만, 그 밝기로 봐서 1997년 초에 20세기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눈부신' 혜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7)의 왼쪽에서 별이 선으로 나타난 이유는 허블우주망원경의 궤도운동과 혜성 핵을 중심으로 촬영한 까닭에 생긴 움직임 때문이다. 오른쪽 이미지는 배경 별들을 제거한 것이다.
소행성 베스타의 '대동여지도'
허블우주망원경은 지난 해 11월 28일부터 12월 1일에 걸쳐 광각행성카메라로 소행성 베스타(Vesta)의 지도를 완성했다. 이 지도의 분해능은 60㎞ 이내이고, 영역은 북위 48도에서 남위 16도 까지. 전체 지도는 5.34시간을 주기로 자전하는 소행성의 운동에 따라 여러 장의 화상을 겹쳐서 완성했다. 베스타의 지름은 약 6백㎞.
(사진8)의 위는 베스타의 표면 밝기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여기 나타난 지형은 오래된 용암류와 같은 화산성 물질이거나 미천체의 충돌에 의해 지각이 벗겨져 나가고 맨틀이 드러난 구조라고 생각된다.
(사진8)의 아래는 베스타 표면의 화학성분을 나타낸 것. 이것은 지질학적 특성을 잘 나타내기 위해 색을 입힌 그림이다. 베스타 표면이 한꺼번에 용융된 적이 있거나, 지각을 뚫고 흘러나온 용암이 소행성을 완전히 덮었던 시기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지도로부터 베스타의 표면이 전혀 다른 두 종류의 현무암으로 구성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붉은색은 운석 충돌에 의해 지각이 벗겨진 곳이며, 용암이 지각 하부에서 굳은 현무암질로 이루어졌다. 노랑색과 녹색 지역은 아마도 태양계가 생길 때 만들어진 지각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북위 80도 근방에 있는 올버스(Olbers)와 같이 초록색으로 나타난 몇몇 지형은 보다 복잡한 지질학적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커다란 운석에 의한 충격으로 표면물질이 녹아서 맨틀 상부의 마그마와 혼합됐을 것이다.
가니메데에 오존 있다
현재 지구는 오존 결핍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만, 수억km 떨어진 목성의 거대한 달 가니메데(Ganymede)에서는 오존이 생성되고 있다. 가니메데의 오존은 매년 겨울 지구 남극의 '오존구멍'에서 파괴되는 양의 1-10%에 지나지 않는다.
볼티모어에 있는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pace Telescope Science Instiute)의 놀(Keith Noll)이 이끄는 관측팀은 허블우주망원경을 이용해 가니메데의 스펙트럼에서 오존의 '지문'을 채취했다. 이 관측에는 허블우주망원경의 FOS(Faint Object Spectrograph; 어두운 천체를 관측할 때 사용하는 분광기)가 이용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천문학회 행성분과 제27회 전기학회에서 발표됐다.
가니메데에서 생성되는 오존은 목성의 막강한 자기장에 포획된 하전입자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그 기원이 지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목성은 9시간 59만에 자전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하전입자들을 쓸고 자니가며, 입자의 운동 속도는 천천히 공전하는 가니메데를 따라 잡는다. 이 때문에 가니메데는 맹렬하게 퍼붓는 하전입자의 '비'를 맞게 되고, 하전입자는 위성의 얼음층을 뚫고 지나가면서 분자결합을 끊고 물분자를 파괴한다.
허블틴의 존슨(Robert Johnson)에 따르면 목성 자기장에 붙잡힌 고에너지의 이온이 물 얼음물 때릴 경우 오존이 생성된다는 결과를 실험실에서 재현해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오존이 어떤 반응을 거쳐 생성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놀은 "아직 가니메데에 공기가 존재한다는 아무런 확증도 없지만 그곳에서 산소분자와 관련된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언젠가 아주 엷은 대기가 생길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참고로 올해초 유로파에서는 산소가 주성분인 희박한 대기가 발견된 바 있다.
지구 대기는 자외선에 해당하는 스펙트럼을 흡수하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이러한 관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주망원경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 가니메데에 오존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첫번째 힌트를 얻은 것은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의 레인(Arthur L. Lane) 박사와 허블팀이 자외선관측위성(IUE)을 이용해 가니메데를 관측했을 때였다. 그러나 자외선관측위성 분해능으로는 오존의 존재에 관해서 확실하게 얘기할 수 없었고, 허불우주망원경의 저밀한 관측이 필요했다.
오존(O₃)은 3개의 산소 원자로 이루어진 불안정한 기체. 지구의 오존은 25km상공에 얇게 분포하지만 생물체의 생존에는 필수불가결하다. 자외선은 피부암, 백내장, 면역기능 저하 등을 일으키는데, 오존은 태양의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가니메데는 지름이 5천2백62km로 지구의 달보다 1.5배가량 큰 목성 최대의 위성. 가니메데의 표면은 암석과 얼음으로 돼 있으며, 그 아래에는 물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맨틀이 있고, 중심부에는 암석질의 핵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