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기틀을 잡고 국민 필수 교양으로 천문은 사랑을 받아 왔다. 무관심으로 잃어가는 '별', 역사를 통해 살펴본다.
오는 11월 11일, 천문학계에 매우 뜻깊은 행사가 서울대에서 열린다. 1395년 12월에 만들어진 석각(돌에 새긴)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가 6백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이다.
천문도의 개정, 새로운 시대 뜻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건국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태조는 새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자 나라를 세운 지 2년 뒤인 1394년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다. 그리고 국가적 사업으로 천문도를 제작한다. 권근(權近, 1352-1409)이 천상열차분야지도 밑에 적은 유래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평양성에 있던 석각 천문도가 병란으로 대동강에 가라 앉았다. 세월이 흘러 그 인본마저 없어지고 구하기 어려웠는데, 전하께 이를 바치는 사람이 있었다. 서운관(천문기관)은 왕의 명을 받들어 이를 만들었다. 또 원래 천문도는 너무 오래돼 별의 위치가 차이가 나므로 이를 바로잡았다."
옛날 천문도는 국가의 안위를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것으로 임금은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천문도에 있는 별의 위치를 바꾼다는 것은 곧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하는 것. 그래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한 국가적 사업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속깊은 의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란 '하늘의 모양을 12차와 12국 분야로 나눠 차례대로 늘어놓은 그림'이란 뜻이다. 동양의 천문도는 하늘의 별을 지상의 국가 체계에 맞춰 이름지었다. 중국에서는 북극 근처에 있는 별에 임금이 있는 자미원(紫微垣)이란 이름을 붙이고, 적도 부근의 별자리에는 지방 호족이나 주변 국가 이름을 달았다. 일본인들은 천문도에 자기 나라의 고유 이름을 붙였다고 흐뭇해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 것을 따랐다.
우리나라 천문도의 역사는 꽤 오래 됐다. 많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려에 와선 오윤부(伍允孚, ?-1304)가 천문도를 작성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전한다.
오윤부는 충렬왕 때 도첨의찬성사를 지낸 사람으로 집안 대대로 태사국에서 벼슬을 했다. 그는 성격이 곧고 아첨을 몰라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당시 별을 지키는 사람들은 왕의 신임을 믿고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왕비 딸을 둔 서운관의 최천검과 노영수가 부린 세도는 극에 달했다.
일본 최초 천문도, 조선 것 모방
우리나라의 천문도는 국가에서만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선비들의 필수 과목으로 천문이 꼽혔으니, 당연히 천문도는 민간에서도 널리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민간에서 내려오는 천문도를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현재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 보존돼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다. 석각 천문도로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의 소주시 박물관에 보관된 '천문도'(天文圖). 이것은 남송 때(1241년)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의 연호를 붙여 '순우천문도'라고도 부른다.
일본의 '천상열차지도'와 천문분야지도'가 전해오고 있다. 이 천문도는 에도(江戶)시대의 대표적 천문학자인 시부카와 하루미(攝川春海, 1639-1715)가 만들었다. 일본에서 만든 천문 도록집에는 이 천문도를 제작하면서 "조선의 것을 모방했다"고 적고 있다. 시부카와는 일본인으로서 처음으로 정향력(貞享曆)이란 역법을 만들고, 그 공으로 초대 '덴몬카타'(天文方)에 임명됐다. 그는 1670년 조선의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기초로 성도(星圖)인 천상열차지도를 제작했다. 그리고 7년 후 천문분야지도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6백년의 바람과 서리를 이겨온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해 한국외국어대 박성래 교수가 조심스럽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국보 228호로 지정된 석각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395년에 종이에 그린 것을 1433년에 석각한 것이란 주장이다. 이를 따른다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6백년에서 38년이 모자라는 5백62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근거는 천문도를 석각한 사실이 세종15년(1433년)에서야 발견되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천문도의 제작을 태조 때 기록하지 않을리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에선 아직 그 진위를 크게 문제 삼고 있지 않다.
석각 천문도에 대한 복원 작업은 역사적으로 계속돼 왔다. 현재 세종대왕기념관에 보관돼 있는 보물 837호 천문도는 태조 때 천문도를 만든이후 3백여년이 지난 숙종13년(1687년)에 복각됐다.
그로부터 다시 3백여년이 지난 최근에 대덕 국립중앙과학관과 경주 신라역사과학관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곱게 복원해 천문도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