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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땅에 꽃이 필까?

꽃이 피지 않는 땅, 사람도 살 수 없다

미군이 짐을 싸 우리땅을 떠나고 있다. 지난 7월에 열린 제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를 통해 이미 주한 미군기지 15개를 반환받았고, 2011년까지 총 59개를 반환한다는데 합의했다. 하지만 토양을 오염시키는 물질이 들어있는 군수물자를 수십년 동안 보관해온 땅이 문제다. 미군은 일제강점기 뒤부터 우리 땅에 주둔했다. 때문에 길게는 60년이 넘은 미군기지도 있다.

환경부에서는 반환될 미군기지가 어느 정도 오염됐는지 조사했다. 59개의 반환기지 중에서 29개를 먼저 조사했는데, 그중 26개 기지가 토양오염기준을 초과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심각하다. 48년 된 춘천 페이지 기지의 경우 유류계총탄화수소(Total Petroleum Hydrocarbons, TPH)가 토양오염기준보다 101배, 지하수오염기준보다 472배를 초과한 곳도 있다. 이미 2003년에 기름유출사고가 있었던 의정부 카일 캠프의 경우 5m에 달하는 기름층이 조사됐다.

물론 군사기지에서 토양오염이 발생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0년대 말에는 부산 문현동에 있던 육군 정비창 부지에서 유류에 의한 토양오염이 심각해 3년 동안 122억원을 들여 복구한 적이 있다. 필리핀에 있는 클락 공군기지에서는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돼 인근 주민이 백혈병과 뇌성마비에 걸리기도 했다.
 

기름은 토양을 오염시키는 가장 주된 오염물질로 땅에 스며들어 쉽게 확산된다.


토양 적시는 기름 오염

가장 심각한 토양오염을 일으키는 물질은 ‘기름’이다. 군사기지에서는 여러 종류의 유류를 사용한다. 수송차량은 물론 탱크나 장갑차, 움직이는 모든 기계에는 유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난방은 물론 하다못해 개인소총을 닦을 때도 유류를 사용할 정도니 정말 기름칠을 하지 않고는 군사시설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 셈이다.

유류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차량에는 주로 등유와 경유를 사용하고 항공기에는 제트유를 사용한다. 점도가 가장 높고 질이 낮은 벙커C유는 대형 보일러나 선박에 사용한다. 땅속에 쉽게 스며들어 토양오염을 일으키는 이런 유류는 유류계총탄화수소(TPH)로 나타낸다. TPH 농도는 유류성분의 농도를 총합해 산정한 값이다.

유류 오염물질에는 휘발성 방향족탄화수소도 속한다. 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자일렌이 주된 오염물질인데 하나로 묶어 ‘BTEX’(Benzene, Toluene, Ethylbenzene, Xylene)라고 한다.

TPH나 BTEX는 심각한 토양오염을 일으키지만 토양에 있는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땅속에서 자연적으로 처리될 수 있다. 이렇게 미생물이 토양에 있는 오염물질을 활발히 분해하도록 하는 방법을 ‘자연정화법’(natural attenuation)이라 부른다. 자연정화법은 경제적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서 시급히 복원해야 할 경우에는 이용할 수 없다. 또 지하수가 갈라진 바위틈으로 흐르는 땅에서는 유류가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 자연정화법을 사용하기 어렵다.

 

반환된 15개 미국기지 유류물질 오염농도^유류오염물질은 크게 TPH와 BTEX로 구분한다. 지난 7월 반환받은 15개의 기지를 환경부가 조사한 결과 대부분 토양오염 우려기준(TPH 500mg/kg, BTEX 80mg/kg)을 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진공으로 빨아내고 미생물로 분해하고

TPH는 물보다 밀도가 낮다. 따라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와 만날 경우에는 지하수면 위에 떠있게 된다. TPH가 계속 축적되면 기름층이 만들어진다. 기름층은 여름철 우기와 겨울철 건기를 거치면서 지하수위가 변함에 따라 수직으로 이동하고, 지하수의 흐름을 따라 수평으로 이동하면서 오염이 확산된다. 일단 기름층이 발견된 땅에서는 지하수가 오염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빨리 제거해야 한다.

기름층은 대롱처럼 생긴 둥근 우물인 ‘관정’(well)을 땅에 박아 진공으로 빨아낸다. 이때 관정 주위의 지하수면이 깔때기 모양으로 낮아지고 기름이 관정 주변에 고여 뽑아낼 수 있다.

‘바이오슬러핑’(bioslurping)이라는 기술을 가장 많이 쓰는데, 기름층을 빨아내는 방법과 자연정화법이 결합됐다. 진공으로 기름을 뽑아내고 지하수층의 윗부분에 있는 토양 속으로 공기가 흘러들어가도록 해서 토양에 있는 미생물이 유류를 분해하도록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미생물이 활발히 분해하도록 영양분을 넣기도 한다.

바이오슬러핑은 지하수층 위에 떠있는 기름을 뽑아내기 때문에 지하수와 섞여 있는 유류성분은 제거하지 못한다. 그런 경우는 지하수 속에 들어있는 오염물질을 다시 분리해내야 한다.

기술적으로 처리하기 가장 어려운 오염 장소는 유류가 중금속 같은 다른 종류의 오염물질과 섞여있는 경우다. 오염된 미군기지의 토양에서도 TPH와 함께 납, 아연, 비소, 구리와 같은 중금속들이 발견된다. 페인트나 포탄에서 나올 수 있는 중금속은 사람의 몸에 축적돼 각종 질병을 일으키며 다음 세대로 이어져 오랫동안 피해를 줘 심각한 문제가 된다.
 

바이오슬러핑^기름으로 인한 오염을 복원하는 기술이다. 관정을 박아 진공으로 기름을 뽑아내고 영양액을 뿌려 미생물이 자연정화를 하도록 한다.


사라진 총성, 남아있는 중금속

“직접 와보셔야 그 심정을 압니다. 동네 바닷가에 불발탄이 굴러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매향2리 이정원 이장의 말이다. 경기도 화성군에 있는 매향리에는 54년간 미군이 사용한 사격장이 있다. 작년에 사격장 폐쇄로 포탄소리와 총성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갯벌에는 포탄이 박혀있다.

매향리평화마을건립추진위원회 전만규 위원장은 “갯벌에 불발탄이나 포탄이 박힌 뒤로는 갯벌 주변이 검은색으로 변한 것은 물론 어패류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8월에 환경운동연합이 조사한 바로는 납은 최고 2500mg/kg이 검출돼 토양오염 우려기준(100mg/kg)보다 25배나 넘어섰고, 구리도 62.6mg/kg으로 토양오염 우려기준(50mg/kg)보다 높게 나타났다.

중금속 오염물질은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정화하려면 옮겨서 처리해야 한다. 오염된 토양을 파내서 매립지로 옮기거나 토양 주변에 차단벽을 설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오염을 근본적으로 없애지 못하고 확산을 막을 뿐이다. 그래서 중금속 오염을 없애기 위해 전기를 이용하거나 세척제로 닦아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오염된 토양에 전극을 꽂아 약한 직류전류를 흘려보내면 중금속이 이온화된 상태로 각각의 전극에 모인다. 이렇게 전극으로 모인 중금속을 처리해 없앤다. 또 중금속으로 오염된 토양에 액상세척제를 넣어 오염된 토양과 섞은 다음, 중금속을 토양과 분리시켜 뽑아내는 토양세척법을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식물추출정화법’(phytoremediation)이라고 부르는 방법도 동원됐다. 오염된 토양 에 식물을 심어서 중금속이 식물체 안에 축적되도록 한 뒤 뽑아낸다. 포플러는 수은, 고사리는 비소, 담배는 카드뮴을 많이 축적한다.
 

오염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토양오염물질은 기름성분과 중금속으로 구분한다. 오염물질은 사람에게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러브운하 사건은 되풀이 하지 말아야

미국에는 ‘러브운하’(Love canal)라고 부르는 오염사건이 있었다. 1943년부터 1950년까지 후커케미컬이란 화학합성수지회사가 화학폐기물 2만여 톤을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러브운하 공사부지에 매립했다. 그 뒤로 학교와 마을이 들어섰는데, 20년이 지난 1970년대에 와서 주민들이 만성천식이나 간질환을 앓고 기형아를 출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 이 지역 주민들의 유전자 손상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1978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이곳을 긴급환경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역사상 가장 심각한 환경오염 사건으로 기록했다.

토양오염은 러브운하 사건처럼 오랜 시간동안 영향을 미친다. 러브운하 근처 주민들은 사건이 벌어진 뒤 모두 떠나고 러브운하 주변은 버려진 땅이 됐다. 기름땅에서는 식물이 자랄 수 없듯이 오염된 땅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다. 미군과 우리나라는 지금 반환기지의 심각한 토양오염을 두고 누가 치유하고 또 복원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반환기지의 토양오염 문제는 정치외교적인 문제를 떠나 생명의 시작인 땅을 보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논쟁보다는 과학기술의 해법을 찾으면서 차분히, 그리고 철저히 대처해야 한다.
 

매향리 갯벌에 나뒹구는 포탄. 중금속 오염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불발탄까지 있어서 더욱 위험하다.
 

200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김정기
  • 유도윤 소장
  • 배우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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