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체는 오랜 진화과정을 통해 각 종 특유의 내인성 주기를 발달시켜 왔다. 생물이 가지고 있는 내인성 주기는 여러 종류의 외인성 주기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현대사회에서 시계의 존재가 없어진다면 상상치도 못할 많은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통신 기술 교육 등 모든 문명의 원천이 일시에 붕괴됨은 물론, 개개인이 육감으로 느끼는 시간감각으로만 생활해야 하는 원시적 생활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한편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 이외의 수많은 동식물은 특정문화의 계승없이 순수한 자연주기의 리듬에 적응하며 진화해 왔다. 그들은 자연주기를 알려주는 시계나 달력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일정주기에 맞추어 개화하기도 하고 동면에서 깨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생물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들의 생활사가 너무도 정확하게 특정 시간에 일치성을 가지고 일어나고 있음에 놀라지않을 수 없다. 따라서 동식물은 나름대로 자연의 주기를 감지하는 고유의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생물은 그들이 적응하기에 유리한 특정 환경요인을 생체시계의 척도로 삼고 있다. 시계의 척도로 이용되는 환경은 자연의 광주기나 달의 주기, 온도와 습도 등과 같은 주기성 환경이다. 여기에 생체의 생리적 유전적 기능을 일치시켜 적응하는 것이다.
우리들 인간에 있어서 체내의 생리기능으로 조절되는 체온 혈당 수면 생식주기 등이 일정한 주기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랜 세대를 거치는 동안 자연의 환경주기를 특정기관의 생리 기능에 동조시킨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로부터 조류 곤충 플랑크톤 단세포생물에 이르기까지 생물이 가진 주기적 리듬과 생체시계의 연관성이 끊임없이 연구되어 왔다. 아직 이들 연구결과를 생물전체에 적용시킬 수 있는 공통성을 찾지는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각 영역의 연구가 모아지면 생체시계의 구조와 기능이 보다 명확하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자연의 주기성
자연계에 서식하고 있는 모든 생물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주기적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여 왔다. 지구의 자전에 의하여 낮과 밤이 생기고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공전하므로써 계절의 주기가 성립된다. 지구의 자전에 소요되는 시간을 별과의 관계에 따라 측정할 경우 그 길이가 23시간 56분 4초이다. 이를 항성일(恒星日:sidereal day)이라 한다. 또한 특정 장소에서 잰 정오부터 그 다음날 정오까지의 간격을 태양일(太陽日:solar day)이라 하여 약 24시간으로 측정한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정확한 공전주기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를 항성년(恒星年:sidereal year)이라 하고, 그 시간은 3백 65일 6시간 9분 10초로 나타나 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계절에 따라 일장시간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춘분과 추분의 시점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12시간으로 동일하고, 추분이 지나면서 짧아지고 동지가 지나면서 길어진다. 대부분의 생물은 이러한 일장시간을 계절의 지표로 삼고 있다.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지구가 다시 태양주위를 공전하면서 복잡한 우주의 주기성이 형성된다. 달은 지구주변의 궤도를 약 1개월에 걸쳐 일주한다.
1개월을 정의하는 두 종류의 척도가 있다. 첫째의 척도가 항성월(恒星月:sidereal month)로서 달이 지구의 가장 중앙궤도를 나타내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 길이는 27.32일이다.
두번째의 척도로 태음월(太陰月:lunation, synodical month라고도 한다)이 있는데, 지구상의 한 지점에서 관찰한 신월(新月)과 그 다음의 신월, 또는 만월(滿月)과 그 다음 만월과의 간격이다. 그 길이는 29. 53일이다. 많은 종의 어류를 포함한 동식물의 생식주기가 달의 주기를 척도로 하여 진화되어 왔다.
생물체는 오랜 진화과정을 통하여 각 종 특유의 내인성주기(endogenous rhythm)를 발달시켜 왔다. 생물이 가지고 있는 내인성주기는 여러 종류의 외인성주기(exogenous rhythm)와 일치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외인성주기란 밤과 낮의 주기(circadian : 약 24시간), 태음월의 주기(circalunar: 약 29일), 간만의 주기(circatidal: 약 12.4시간), 그리고 4계절의 주기(circannual: 약 1년)와 같은 환경의 주기성을 뜻한다.
이들 주기 중에서 일반에게 가장 잘 알려진 주기가 개일주기(circadian 리듬)이다. circa는 '약(約)', dies는 '1일부터'라는 어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약 1일'을 뜻한다.
생체리듬(biorhythm)은 생물이 외인성 리듬 환경에 적응하여 온 것이다. 첫째 태양일과 가깝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주기를 가지며, 둘째 주기성이 생물학적 현상으로는 놀라울 만큼 정확성을 나타낸다. 셋째 온도에 좌우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바꾸어 말하면 '생체시계 (bioclock)'로서 기대되는 모든 기능과 특성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일주기는 많은 생물의 일상생활에 여러가지 생리적 리듬을 부여하고 있다. 생물이 빛의 조도(照度)에 대해 보이는 일주변화나, 빛만큼 정확하지는 않지만 온도변화에 대하여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은 진화과정에서 축적되어 온 동조인자(同調因子)의 활동에 의한 것이다.
생물은 동조인자의 작용 하에서 내인성 개일진동이 정확하게 24시간의 주기를 가지게 되고, 외계의 주기에 대하여 특정한 위상관계(位相關係)가 성립된다. 다시 말해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개체고유의 생체시계를 외부환경(빛 또는 온도주기)의 개일시간에 동조시켜 적응해가는 것이다.
동조한다는 것은 리듬의 주기와 위상과의 양면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진 시계와 라디오에서 시각을 알리는 시보와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손목시계는 그 시계 고유의 시간(1일을 24시간으로 가지면서 경미한 오차가 있다)에 의하여 진동하고 있으나, 며칠이 지나면 시차는 점점 폭이 커져 일상생활 리듬에 지장을 준다.
우리들은 이러한 시계의 시차를 라디오 시보에 동조시켜 생활리듬의 안정을 유지한다. 이때 시계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시간은 내인성, 그리고 라디오의 시보는 외인성 개일시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계의 동·식물들은 외부의 동조인자에 대한 리듬의 항상상태(恒常狀態)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하는 시간대를 어떤 범위로 나누어, 그것에 의하여 행동 또는 생리적 활동을 '1일중 어느 시간에' 정해두고 살아가고 있다.
내인성 생체리듬
생물의 개일계로부터 유래한 내인성 주기는 외인성 주기(환경 포함)가 변화되면 생체고유의 리듬이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외계의 주기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자유연속리듬(free running period:τ)'의 상태하에서 비로소 개체의 내인성 요인을 평가할 수 있다.
외계의 조건에 동조하여 항상상태로 된 리듬의 주기는 태양일(24시간)과 정확하게 일치되지만 일체의 동조인자를 제거한 조건에서 나타나는 자유연속리듬의 주기는 24시간보다 다소 빠르거나 느리게 나타난다. 이때의 자유연속리듬은 보통 22-28시간의 범위로서 생물에 따라, 그리고 리듬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 리듬은 태양일과 조금씩 차이가 나게 되고 시간이 경과되면 태양일과 정 반대의 시차를 나타내게 된다.
예를 들어 자유연속리듬이 23시간인 생물이 있다고 가정하자. 리듬의 대상이 곤충의 보행개시이든 곰팡이의 포자방출이든 그리고 초파리의 우화현상이든, 그 결과는 매일 1시간씩 태양일보다 빨라져서, 2주일 이내에 외계의 위상과는 정 반대의 시간(낮과 밤)으로 바뀌어 있게 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자유연속리듬의 극한치는 일종의 조류(藻類, Oedogonium)의 포자방출리듬 22시간과 식물(Phaseolus coccineus)의 잎의 상하운동리듬 27-28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동일종 내에서도 개체 간에 자유연속리듬치가 다른 경우가 많다. 1969년 아쇼프(Aschoff)의 보고에 의하면 인간을 지하동굴에 들어가게 한 후 일체의 시간에 관한 조건을 배제하고 생활하게 한 결과 자유연속리듬 치가 24.7에서 26.0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드 코지(De Coursey)는 1960년 모기의 일종(Glaucomys volans)을 계속 밝은 조건에서 사육하면서 활동리듬을 관찰한 결과 자유연속리듬치가 22시간 58분에서 24시간 21분까지 개체마다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
생체리듬과 온도의 관계
초파리의 우화리듬(eclosion rhythm)은 개일리듬의 예로서 가장 광범위하게 연구되어 그 메커니즘이 많이 밝혀져 있다. 우화(羽化)란 성충에로의 발생학적 분화가 끝난 번데기가 껍질을 벗고 밖으로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프린스턴 대학의 피텐드리히(Pittendrigh)교수 연구실은 오래 전부터 곤충의 행동에 관한 생리유전학적 연구를 행하여 왔으며 오늘날 이 분야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기고 있다. 그가 초파리를 재료로 하여 실험한 결과,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러가지 발육단계에 있는 번데기의 개체군은 외계의 명 -암 주기하에서 조명이 켜지는 시기에 동조하여 우화되고 이러한 리듬은 암-암 조건 하에서도 지속되었다.
자유연속리듬의 주기에 대한 연구에서 온도계수(Q10)의 문제가 생체시계의 본질과 연관해 대단히 중요시되고 있다. 온도계수라 함은 t=10℃에서의 주기를 t℃에서의 주기로 나누어 계산된 치를 의미한다.
초파리의 우화리듬 실험에서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우화속도가 빨라지는 진동체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시계'로서의 기능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여 온도보상성이 없는 상태에서는 위상의 조절기능이 상실되어 버리기 때문에 시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림1)의 실험결과에서 보듯이 초파리의 우화리듬이 온도의 차이에 관계없이 24시간에 가까운 자유연속리듬을 나타내고 있어 이는 곧 온도보상성을 갖는 시계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