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대국가들은 서기전부터 천문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측하여 기록을 남겼다. 이들의 대부분은 천체역학 계산과 꼭 들어맞는다. 태백주현(太白晝見, 금성이 낮에 나타난 현상)을 중심으로 삼국시대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과학성을 알아보자.
"상서로운 구름이 골령의 남쪽에 나타났는데 그 빛이 푸르고 붉었다." 이것은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3년(서기전 35년)에 나타난 우리나라 최초의 오로라(aurora) 관측기록이다(三國史記 高句麗 本紀 制一 始祖 東明聖王 三年 秋七月 慶雲見鶻玲南 其色 靑赤).
우리에게는 선조가 남긴 고대 천문현상에 관한 기록이 매우 많다. 고려시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에 일어난 일식이 67회, 행성의 이상(異常) 현상이 40회, 혜성출현이 65회, 유성과 운석의 낙하가 42회, 기타 약 15회 등 총 2백 29회의 천체현상이 기록돼 있다. '고려사' 천문지에는 고려 시대에 일어난 일식 1백32회, 월식 2백 11회, 혜성 76회, 유성 5백46회, 낮에 나타난 별(대부분 금성)이 1백68회, 태양의 흑점이 34회 관측돼 기록되는 등 수천개의 천문현상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도 조선왕조실록 등에 일식 2백14회를 비롯한 수만개의 천체 관측 기록이 전해온다.
삼국시대 일식기록 80% 정확
아마도 1-2천년 전부터 천문현상들이 이렇게 많이 기록되어 전해왔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세계의 여러나라 가운데서도 유독 중국과 한국의 고대국가들은 서기전부터 천문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측하여 기록을 남겼다. 어떤 사람은 "그 옛날에 관측한 기록이 얼마나 정확하겠는가? 아마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일 것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록들은 매우 정확하고 가치있는 것들이다. 천체 역학적 계산에 따르면 이 사서들에 기록된 현상들은 대부분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다. 한 예로 신라 혁거세 4년 4월 초하루에 일식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계산에 따르면 이 기록은 양력으로 B.C. 54년 5월 9일 오후에 있었던 일식과 일치한다. 삼국시대에 관측된 일식 중 지금 기록에 남아있는 66회(일식이 있어야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는 기사가 1회 있음) 가운데 53개(80%)가 이처럼 계산과 꼭 들어맞는다.
한편 이 기록들은 과거 수천년 동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우주의 진화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중요한 과학적 자료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과 한국의 혜성 기록에는 오늘날에도 나타나는 헬리혜성의 관측기록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들로부터 혜성의 주기변화, 수명, 과거에 존재했던 혜성에 관한 연구 등을 할 수 있다. 또한 태양흑점이나 오로라 관측기록들로부터 태양의 활동과 지구의 반응을 수천년간에 걸쳐 살펴볼 수 있다.
시간의 이정표
일반적으로 고대사서에는 자연의 특이현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자연의 비일상적인 변화가 인간과 사회의 운명에 중요한 암시를 준다는 고대인의 믿음 때문이다. 자연현상 중에 천문현상은 고대사 연구에 큰 가치가 있다. 그중 몇가지를 지적해보자. 첫째 천문현상은 정연한 물리법칙에 의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천체역학적 계산이나 자연에 남아있는 증거를 통해서 기록의 진위여부를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이다.
둘째로 천문현상은 시간개념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따라서 천문현상기록은 고대사에서 '시간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고대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연대, 즉 시각을 밝히는 일은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며, 천문현상만큼 시각을 정확히, 그리고 절대적인 근거를 가지고 알려주는 자료는 없다. 사서에 기록된 천문현상들은 천체역학적으로 드물게 일어나는 특이현상들이기 때문에, 그 기록의 뜻을 쉽게 알 수 있고 천체역학적 계산에 의하여 발생시각을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천문현상의 세번째 가치는 그것이 관측자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점이다. 지구상의 특정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대표적 천문현상은 일식과 달이 행성이나 별을 가리는 엄폐현상과 운석의 낙하이다. 운석의 낙하는 매우 국지적현상이므로 관측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줄 수 있으나 작은 운석 구덩이는 수천년 세월이 흐르면 대부분 풍화되어 소멸되므로 증거를 찾기 어렵다. 한편 일식은 보다 넓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해와 달의 운동을 역으로 계산하여 일식기록의 진위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일식기록(특히 개기일식의 경우)이 여럿 있는 경우, 모든 일식을 다 관측할 수 있는 최적관측지로부터 관측자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달의 엄폐현상도 천체역학적 계산을 통하여 실현여부를 밝히거나 관측자의 위치를 찾는 데에 이용할 수 있으나 기록 횟수가 적다는 단점이 있다. 이외에도 천체관측 기록은 고대과학의 역사와 문화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하나의 척도이다.
동방에 다섯 행성이 모였다.
삼국사기 등에 나오는 천체현상들을 종류별로 살펴보자. 첫째로 일식은 음력 초하루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이다. 삼국사기에는 일식이 간혹 그믐날에 일어났다고 쓰여있다. 이것은 역서가 하루 정도 부정확했기 때문이다. 일식은 천체역학적으로 실현을 확인할 수 있으며, 관측시각과 관측자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둘째로 달이 행성을 가리는 엄폐(掩蔽, occultation) 현상이나, 서로가 매우 가까이 다가가는 현상이 있다. 예를 들면 신라 내해 10년(205년) 태백범월(太白犯月)이나 문무왕 19년(679년) 태백입월(太白入月) 등이다. 맨눈으로 관측가능한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다섯 행성들을 옛날에는 진성(辰星) 태백성 형혹성 세성 진성(鎭星)으로 불렸다. 셋째로 금성이 낮에 보였다는 태백주현(太白晝見) 기록이 있다. 태백주현과 행성의 엄폐현상은 계산을 통해 실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행성에 대한 기록으로 자주 나오는 것은 행성이 어느 별자리에 들어서거나(犯) 오래 머무는(守) 현상이다. 이외에도 "동방에 다섯 행성이 모였다"는 기록이 고구려 본기에 있고, 금성이 수성이나 항성을 가린 사건들이 신라본기에 있다.
혜성은 혜성(彗星) 패(孛) 장성(長星) 객성(客星) 치우기(蚩尤旗) 등으로 불린다. 객성 중 일부만이 혜성이라고 생각된다. 패와 객성의 일부는 신성이나 초신성일 수 있다. 혜성기록은 풍부하게 나오고 독자기록도 많으나, 혜성 중 상당수가 오늘날 소멸되어 관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석은 천구성(天狗星)으로 불리기도 한다. 유성과 운석의 낙하기록이 거의가 중국과 동시관측 기록이 없는 독자기록임은 이 천체현상이 국지적으로만 관측된다는 사실과 잘 부합된다. 운석은 운석구덩이를 만드므로 기록에 의거하여 증거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노인성(α Car)과 같은 보기 힘든 별이 나타남, 둘 또는 세 해가 뜸, 흰 무지개가 태양을 뚫음, 해가 빛을 잃음, 달이 피빛을 띰 등의 기록이 간혹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천체 현상들 중에서 금성이 낮에 보였다는 고대 기록을 실제 계산과 비교해보자. 금성은 태양주위를 공전하며 달처럼 위상이 변하는데, 태양에서 가장 먼 각도로 멀어지는 동방최대이각이나 서방최대이각 근처에서 등급이 약 -4.7까지 밝아진다. 금성의 밝기는 평소에 약 -3.9등급 정도다. 금성의 회합주기 5백84일 중에 금성이 특별히 밝아지는 기간은 80일 정도이므로, 태백주현은 80/584=14% 정도의 확률을 가진다. 그런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가장 밝을 때 -2.6등급에 불과한 목성이 낮에 보였다는 기록도 있어서 기상조건이 좋을 때 주의 깊게 관찰하면 금성은 어느 때나 낮에 볼 수 있는 행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태백주현은 금성이 태양에서 최대이각을 가지고 멀리 떨어져 가장 밝아지는 때에 기록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분명하다.
태백주현 기록의 과학성
삼국사기에는 태백주현 기록이 신라에 4회, 백제에 3회, 고구려에 1회 등 도합 8회가 나온다. 금성의 위치와 등급계산을 수행하여 8개 기록과 모두 대조해 보았다. 그 결과 신라 흥덕 2년(827) 8월의 기록, 백제 구수 11년(224) 10월과 아신 3년(394) 7월의 기록, 고구려 양원 11년(555) 11월의 기록들이 금성이 최대로 밝아지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금성이 평소보다 매우 밝은 기간의 비율이 14% 정도이므로 만약 8개의 기록을 조작하여 아무 시기에나 적어 넣었다면 금성이 실제로 밝아진 시기와 우연히 들어 맞을 기록 수는 0.14×8=1.1개에 불과하다. 기록의 적중률이 50%에 이른다는 사실은 이것들이 실제 관측에 의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림 4)에 이 네 기록이 있는 시기와 금성의 등급이 변하는 양상을 보였다. 모두 우연의 일치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금성이 밝아지는 때와 꼭 들어맞고 있다.
한편 앞서 지적하였듯이 기상조건이 좋은(즉 먼지나 수증기가 없어서 하늘의 색깔이 매우 검푸른) 경우 금성은 평소에도 낮에 볼 수 있는 행성이므로 금성이 최대로 밝아진 시기에 있지 않은 기록들도 틀린 기록이라고 볼 수 없다. 실제로 금성이 낮에 보였다는 달을 살펴보면 5월이 1회, 7월이 3회, 8월이 1회, 10월이 2회, 11월이 1회 등(이상 음력)동아시아에서 기상조건이 좋은 늦여름에서 초겨울 사이에 주로 있다. 이 사실은 태백주현 기록이 실제 관측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관측자료 누적돼 있음을 증명
백제의 224년과 394년 기록은, 학계에서 삼국이 독자적으로 천문관측을 수행했다고 인정하지 않고 백제의 존재에 대해서 마저 회의하는 시기의 것이므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기록들은 천체역학적 계산에 의하여 그 사실성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들이 출전하는 시기가 200년대부터이고, 태백주현이라는 현상을 관측하는 것이 낮이 밤과 같이 되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식현상과는 달리 전문적인 관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주목하여야 한다. 즉 금성을 낮에 관측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당시 천문학의 수준과 관측제도의 완벽성을 엿볼 수 있다. 금성을 낮에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오랜 기간에 걸쳐 금성의 위치 변화를 측정하여 낮에도 금성의 위치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치를 주의깊게 관찰하여야만 금성을 찾아낼 수 있다. 따라서 태백주현 기록이 있다는 사실은 이 시기에 고도의 관측기술을 지닌 천문학자들이 있었으며, 이미 장기간 관측자료가 누적되어 있었음을 뜻한다.
고대 사서에 실린 천문현상 기록들을 재현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수천년 전에 선조들이 남긴 기록과 계산이 꼭 들어맞으면 숨은 보물을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컴퓨터를 써본 사람이면 천체 위치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당시의 상황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 그대로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한 걸음 나아가 다른 자연현상에 관한 기록도 관심을 기울여 볼 수 있다. 우리의 고대사서들에는 태풍 홍수 가뭄 뇌우 서리 눈 안개 등의 기상현상과 지진 광물질 조수 적조 등 지질·해양학적 현상에 관한 기록들이 풍부하게 실려있다. 또한 이러한 자연현상 기록들을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과 비교하며 역사적 의미를 맛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