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는 물체의 걸을 아름답게 꾸미고 보호하는 일만하는 것이 아니다. 특수한 목적에 사용되는 이른바 '기능성 도료'는 방사선을 차폐하기도 하고 생물의 성장을 돕는 등 우리가 미처 알지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수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도료는 제품의 미관을 살리고 녹이나 풍화로부터 보호하는 목적의 것이 전부일 것이다. 이같은 목적은 실제 도료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래들어 전자·전기산업 우주개발산업 환경산업 군수 산업 등 전 산업 분야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기존 도료의 성질을 더욱 강화한 고기능도료와 특수 기능의 최첨단 도료가 사용되고 있거나 새로이 연구 개발되고 있다. 특히 특수 기능성 도료는 적은 양을 피도체 표면에 칠함으로써 피도체가 갖고 있지 않은 특수 기능을 부여해 고부가가치의 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물질은 기본적으로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는 전자 원자핵이라는 하전입자로 구성돼 있어서 전기와 자장의 영향을 받기 쉽다. 전기는 에너지 전달에 가장 적합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나 종종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전기전자적 기능 도료는 바로 물질의 성질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전기가 유발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다.
전기 전자적 기능을 가진 도료는 크게 전자원자핵 등과 같은 실재에 주목한 것과 전자기적상호 작용과 같은 장(場)에 주목한 두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전기 절연 도료나 도전성 도료는 기본적으로 전자란 입자에 주목한 것이며, 전파 흡수 도료나 전자파 차폐 도료, 자성도료 등은 전자기적 상호 작용에 주목한 것이다.
스텔스기의 비밀은
미국이 개발해 실전에 배치한 스텔스기는 적의 레이다에 잡히지 않고 비행해 적진을 폭격할 수 있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비행기'다. 이 전폭기의 비밀은 적의 레이다에서 발사된 전파를 흡수해 반사하지 못하게 하는 전파 흡수재에 있다.
레이다는 전파빔을 방사하여 대상물에 부딪쳐 반사돼 돌아오는 반사파를 잡아 반사체의 방향과 거리를 알 수 있는 장치다. 즉 레이다는 대상물체에서 반사되는 반사파가 있어야 대상 물체를 식별하고 방향 및 거리를 알 수 있다. 스텔스기는 레이다에서 방사되는 전자빔이나 마이크로파 등을 자체에서 흡수해 대상 물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전파 흡수재를 기체(機醴)에 입힌 것이다.
이 도료는 특수 도료용 합성수지(바인더)에 특수 전파흡수재를 가해 만든다. 전파 흡수재에는 카본블랙 금속분말 페라이트 금속섬유 등이 있다. 물질의 전파흡수능력은 도전율 유전손실(誘電損失)자성손실 등에 의해 이루어지며 기본적으로는 전파를 열로 변환시키며 엔트로피를 발생시킨다.
전파 흡수 도료는 군사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전파의 간섭을 받지 않는 이른바 '전파 암실'의 구성재료나 전자기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서도 주목되고 있다.
한편 도전성(導電性) 도료도 전기 전자기능성 도료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플라스틱 제품은 자체가 전기 절연체이기 때문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이처럼 전기 절연성을 가진 제품의 표면에 전기가 흐르도록 하는 것이 도전성 도료다.
고분자 화합물인 도료용 합성수지에 도전성충진제를 가하면 도전성을 띠게 된다. 도전성 충진제로는 금이나 은 동 니켈 알루미늄 가루가 사용되는데, 동과 니켈 가루는 산화되기 때문에 도전성이 불완전하다. 또한 은은 비중이 커 분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안쪽이 빈 유리구에 은을 코팅한 도전성 충진제를 사용하는 방법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오디오테이프나 플로피디스켓도 전기 전자 기능 도료를 입힌 제품이다. 자성도료는 자성체의 자기적 자장과 자속밀도를 이용한 것으로, 주로 산화철과 에폭시 수지 메타크릴 수지 염화비니리덴수지 등의 도료용 합성수지로 구성된다. 자성체인 ɤ철은 그 입자 표면에 산화피막을 성형시켜 응집을 방지하고 있다.
방사선 차폐하는 페인트도 등장
빛과 관련된 광학 기능 도료도 이미 등장해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발광도료 형광도료 도로표식용 도료 등과 같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도료에서부터, 일단 빛을 받으면 어두운 상태에서도 빛을 내거나 일정시간이 지나면 발광이 안되는 성질을 지닌 축광도료 등이 포함된다.
발광도료는 자발광이라 불리며 자체에 포함된 방사선에 의해 꾸준히 일정한 광을 발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발광도료의 개발 초기 에너지원으로 천연 라듐을 사용했으나 근래에는 인공 방사선 동위원소가 천연 라듐을 대신하고 있다.
자발광 도료는 발광분말과 도료용 합성수지로 이루어진다. 자발광 분말은 발광 기체에 방사성 물질을 첨가한 것이며 발광 기체로는 효율이 좋은 유화아연계 형광제가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이 발광도료는 시계나 무선통신기 등의 야광눈금, 전등 스위치 등의 야광표시, 비상출구 등의 표시와 군사용 총포의 조준구로 주로 사용되는데 발생하는 색깔도 형광체에 따라 청색부터 오랜지색까지 다양하다.
야간 운전시 차선을 보고 인식하는데 필요한 도로표식용 도료는 두꺼운 도막 표면에 유리의 미소구(微小球)를 반쯤 드러나게 한 것이다. 이 도료의 광학적 메커니즘은 광원으로부터 온 투과광선이 공기중을 통과, 광선이 반사되는 유리의 미소구를 거쳐 도료층으로 들어간다. 이 도료층은 도료용 합성수지, 체질안료, 유채안료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들어간 광선은 내부에서 반사돼 다시 유리 미소구를 통해 발광돼 운전자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광선택 흡수도료는 태양복사 스펙트럼중 단파장광(자외선)을 흡수해 열로 변환시키는 능력이 크고 열복사 손실이 작은 성질의 도료다. 태양광을 물질에 접촉시킬 때 일어나는 반응은 반사 흡수 투과 산란중 하나다. 이때 흡수광은 열이나 복사열로 변하는데, 태양광을 열로 변환시키기 위해서는 반사광 산란광 복사광을 가능한 한 많이 감속시켜야 한다. 그래서 산화동 산화코발트 유화니켈과의 조합이 광선택 흡수도료의 재료로 주목됐다.
방사선 물질이 부착돼도 내부까지 오염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방사선 차폐 도료도 최근 원자력의 이용과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도료는 납화합물(금속산화납 하이드로옥시린산염 바륨염 탄산염 유산염 등)의 방사선 차폐재를 아크릴계 수지에 분산시킨 것이 대부분인데, 종종 유기산 납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한편 전기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변환하는 원리를 도료에 적용한 발열도료 내열성 도료 등의 열 기능 도료도 있다. 화재에 대비한 방화도료도 열 기능 도료의 하나. 방화도료는 무기물 계통의 전혀 타지 않는 도료인 불연성 도료와 불길이 번지는 것을 방해하는 작용을 하는 난연성 도료의 두가지로 나뉘는데, 전자는 법랑이나 세라믹 등의 코팅제로 사용되며 후자는 목재 등 가연성 물질에 사용된다.
곰팡이는 못살게, 해조류는 살찌게
생물의 생장과 관련된 기능성 도료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곰팡이 방지 도료와 살충 도료를 꼽을 수 있다.
곰팡이를 배양해야 하는 연구소가 아니라면 곰팡이를 반길 환경은 우리 주변에 그리 많지 않다. 제 2차세계대전 중 남태평양 전선에 주둔한 미군은 통신 기기에 곰팡이가 생육하면서 곰팡이가 분비하는 유기산에 의해 통신 기기가 마비된 적이 있었다. 이후로 통신기기에 곰팡이 방지도료를 도장하는 것이 일반화 돼 있기도 하다.
사실 곰팡이는 도장의 기본적인 기능인 미관 보호에 도전하는 존재다. 곰팡이는 고온 고습에 노출된다든가 통풍이 잘 안되는 장소에서 현저하게 발생하며 그 종류도 대단히 많다. 곰팡이방지 도료는 아크릴계 염화고무계 염화비닐계 우레탄계 등의 도료용 합성수지와 할로겐페놀 등의 살균제를 첨가함으로써 만든다.
살충도료는 물체의 표면에 도장 건조돼 살충성 피막을 만듦으로써 해충을 박멸하거나 해충의 성장이나 번식을 억제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방충도료에는 방충효과가 좋고 인체에 해가 없으며 환경에 대한 안정성과 경제성, 피도물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 것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살충 도료는 합성수지에 유기 인산계 살충제를 첨가해 제조한다.
원치않는 해충의 침입을 방지하는 도료와 달리 수산 영양 도료처럼 생물의 성장을 돕는 기능성 도료도 있다. 수산 영양 도료는 해초나 어패류의 생육에 필수적인 영양분이 되는 물질이 배합된 코팅제로, 수중에서 적당한 양분이 장기간에 걸쳐서 효율적으로 물에 용해되도록 하는 도료다. 현재는 합성수지와 영양제를 배합하는 방법이 연구중인데, 김 등 해태류의 양식용과 조개 양식용이 개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