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술진이 독자적으로 설계한 연구용원자로 '하나로'가 본격 가동된다. 9백30억원을 들여 9년만에 완공한 하나로는 원전기술 자립, 기초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북한 경수로 지원 문제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국내 원자력계는 조그만 경사를 맞았다. 국내 기술진이 설계, 9년 공사 끝에 30MW급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완공했다. 앞으로 이 원자로는 핵연료에 대한 성능시험을 비롯, 산업용 및 의료용으로 쓰이는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신소재의 물성연구 등에 폭넓게 활용될 전망. 하나로는 2월 중순이미 초기임계에 도달했으며 4월21일 과학의 날에 정식으로 선 보일 예정이다.
인간이 처음으로 원자핵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해방시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42년 12월. 엔리코 페르미에 의해 주도된 맨해턴프로젝트는 시카고파일 원자로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카고파일은 발전용이 아니라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한 원자로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은 지금 원자력산업은 '태생의 불미함'을 딛고 세계 전력량의 20% 가까운 양을 공급하고 있으며, 암치료라든가, 비파괴검사 정밀측정 등 산업분야, 돌연변이 육종 등 농생물학 분야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연구용원자로는 바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프런티어라고 할 수 있다.
원자력의 파이어니어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로는?" 이 질문에 대부분은 78년 문을 연 고리1호기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나라원자로 1호는 62년 4월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연구용원자로 트리가마크2(열출력 2백50㎾)이다. 그로부터 6년 후 열출력을 8배로 높인 트리가마크3가 기공돼 우리나라의 원자력 시대를 열었다.
그렇다면 연구용원자로와 발전용원자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출력이다. 발전용원자로는 전기출력으로 표시하지만 연구용원자로는 열출력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자로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원자로 내에서는 핵연료(우라늄235)가 중성자와 충돌하면 두개의 핵으로 쪼개지면서 평균 2.45개의 중성자와 2억4천만eV(leV는 1.6×${10}^{-19}$J)의 에너지가 발생된다. 생성된 중성자는 곧바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는데 기여한다. 여기서 생성된 에너지는 열에너지 형태. 이 열에너지를 이용해 2차 계통에서 증기를 발생시키고, 증기가 터빈을 돌려 전기를 발생시키는 것. 따라서 발전용원자로는 최종적으로 생산해내는 전기가 출력이 된다.
그러나 연구용원자로는 전기를 생산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핵연료를 태우고 그 결과로 중성자만을 생성시키면 임무가 끝나기 때문에 핵분열시 발생되는 열에너지를 출력으로 잡는다.
연구용원자로는 중성자 생성이 중요한 목적의 하나이므로 단위시간과 단위면적당 생성되는 중성자의 개수(열중성자束)가 얼마냐는 것이 중요한 성능의 하나다. 이번에 완공된 하나로는 열중성자속이 5.4×${10}^{-14}$㎠·초로 세계 3백20여개 연구용원자로 중 7번째의 고속(high flux)원자로다. 일반적으로 연구용원자로에서 사용하는 우라늄의 농축도는 발전용에 비해 7배 가량 높은 20%. 고속의 중성자 생성을 위해서다.
연구용원자로는 발전용원자로에 비해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다. 중앙에 노심이 개방된 원자로가 자리잡고 있고 주변에 중성자를 빼내서 사용하는 관들이 여러개 붙어있을 뿐이다. 물론 원자로를 조정 제어 감시하는 여타의 시설은 발전용원자로와 다를 바 없지만 주요 골격이 간단하다는 뜻이다.
독자 핵연료 설계시도
하나로에게 주어진 첫번째 임무는 핵연료를 시험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발전용원자로는 한번 핵연료를 장전하면 3년 후에 교체 한다. 3년 동안 우라늄을 태우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용원자로는 발전용보다 10배 정도 가속시켜 1년 내지 몇 개월 만에 핵연료를 태운다. 그 이유는 핵연료의 농축도가 적정한지(2-4%), 불순물은 섞이지 않았는지, 연료가 제대로 타는지, 피복재가 깨지지는 않는지 등 제반 성능을 단시간 내에 조사하기 위해서다.
연구용원자로가 없다면 독자적인 핵연료설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수입된 핵연료조차 성능시험도 하지 않고 그냥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나로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초기에는 이미 실증된 핵연료의 복제기술부터 확보할 예정. 그후 중수로형(캔두형)핵 연료를 독자적으로 설계할 계획이다.
캔두형은 농축도가 낮은 천연우라늄을 사용하기 때문에 연료를 1년마다 갈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1년동안 태운 사용후 핵연료에는 타지 않은 우라늄이 어느정도 남아있다. 즉 연소도를 높이면 핵연료를 더 태울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하나로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원자로연구소 원자로 개발단 김병구 단장은 "하나로를 이용해 캔두형 원자로 핵연료를 수명연장시켜 2년 동안 사용할 수 있게 독자 설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현재 중수로 1기, 경수로10기(시험운전 중인 영광3,4호기 포함)를 운영, 전체 발전량의 50%를 원자력으로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핵연료 설계 자립이 매우 시급한 실정. 더군다나 중수로와 경수로가 같이 운영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에서의 핵연료 설계가 필요하다.
김병구 단장은 "하나로가 정상 궤도에 오르면 세계 최초로 경·중수로 연계 핵연료(듀픽)도 설계해볼 생각"이라고 장기적인 계획을 밝혔다. 듀픽이란 경수로에서 태우고 난 저농축 우라늄을 중수로 연료로 다시 사용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경수로에서 남은 사용 후 핵연료에는 타다만 우라늄235가 1% 정도 남아 있기 때문에 천연우라늄보다도 농축도가 높아 활용의 여지가 남아있다.
방사성동위원소 자급도 40%로
연구용원자로의 두번째 임무는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이다. 방사성동위원소는 공업 의료농업 분야에 널리 쓰이고 있는데 개발된 종류만 1백가지가 넘는다. 인간이 원자핵을 쪼개 얻은 최대의 부산물은 바로 방사선과 방사성동위원소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아주 미량이 존재해도 쉽사리 검출할 수 있는 방사선을 방출하므로 물질의 이동을 추적할 수 있으며, 방사선의 투과과정에서 물질과 물리화학적 작용을 주고받는다. 이 특성을 이용해 의료나 산업활동에 활용하는 것이다.
방사성동위원소는 공업용으로 비파괴검사 두께측정 미량원소분석 화학반응촉진 등에 활용하며, 의료용으로는 의료용기구멸균 암치료 질병진단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또 식품의 장기보존이나 농작물의 돌연변이 육종에도 이용된다.
요즘 첨단의료기기로서 대사과정까지 알아내는 PET에는 테크네툼99m 등의 방사성동위원소가 추적자로 쓰이고 있으며 비파괴검사용으로는 이리듐이 활용되고 있다. 송학보리 긴쌀보리 안산참깨 등은 이른바 우수품종 들인데, 이들은 모두 열중성자를 조사해 돌연변이로 개발된 품종들이다.
현재 국내에는 8백여기관에서 방사성동위 원소를 사용하고 있는데,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형편. 그동안 트리가마크3에서 일부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해왔으나 자급률은 6.2%에 그쳤다. 하나로가 완공되면 코발트60 이리듐192 요오드131 등 30여종의 산업용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해 자급률을 40%로 높일 예정이다.
이밖에도 연구용원자로는 CCD소자 등에 사용되는 강전(强電)반도체를 생산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강전반도체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중성자도핑을 해 만들어진다. 하나로의 노심에서 빼낸 중성자빔을 이용하면 상온초전도체라든가 기타 신소재의 물성연구도 활발히 추진돼 국내 기초과학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중성자를 이용한 암치료 연구도 보다 활발히 진행될 전망이다.
홀로서기 성공
하나로는 85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미 80년대 초 원자력발전소를 여럿 건설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로서는 본격적인 연구용원자로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었다. 기존의 트리가마크2나 3은 교육용이나 일부 동위원소 생산용으로는 적합하지만 본격적인 원자력산업의 자립을 위해서는 역부족.
처음에는 5백억원 예산으로 캐나다의 원자력공사와 공동으로 Maple-X를 개발하기로 합의하고 출발했으나, 캐나다측이 내부 사정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기존에 모델이 없는 원자로를 새로이 개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89년부터 공사에 착공, 국산화율 75%의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키기에 이른 것. 총예산은 9백30억원.
하나로라는 이름은 한글과 영문 두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한글 '하나'는 으뜸이라는 뜻이며 '로'는 원자로의 '로'와 하나로 뭉친다는 두가지 뜻. 영문 HANARO는 High flux Advanced Neutron Application Reactor. 1년간 내부에서 공모 끝에 당첨된 이름이다.
하나로는 냉각재로는 경수를 사용하고 열중성자의 반응속도를 늦추는 감속재로는 중수를 사용하는 개방수조형이다. 실험목적에 따라 핵연료를 적절하게 배치, 사용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또한 중성자를 빼내는 실험공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고, 노심 구조 또한 변경할 수 있는 가변형이다. 따라서 안전성 확보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앞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정기적인 점검을 받게 될 하나로(수명 40년)는 안전장치계통에서 1천년에 한번 미만의 고장확률을 갖도록 설계됐다.
또한 방사성을 띠게 될 모든 공정설비들을 두께 1.2m의 콘크리트방 안에 설치해, 실험종사자들이 방사선에 노출될 위험을 차단했다. 원자로 건물 자체도 내부압력이 외부압력보다 약간 낮도록 설계해 만일의 사태 때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확산되지 않도록 했다.
한편 하나로의 완공으로 20-30년 동안 연구용원자로의 역할을 떠맡아온 트리가마크2 와 3은 현역에서 은퇴한다. 우리나라 최초 원자로인 트리가마크2는 대덕 원자력연구소 안에 기념관을 지어 영구 보존되며, 트리가마크3은 원전 해체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시험 해체된다. 해체기술은 앞으로 발전용 원자로의 해체 때를 대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핵심기술.
앞으로 하나로는 원전기술의 자립에 기여함과 동시에 국내 기초과학 발전에도 상당한 몫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