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생식을 위해서 반드시 좋은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고등생물일수록 비효율적인 유성생식에 의해 종족을 번식시킨다. 생물학 최대의 수수께끼다.
섹스라는 단어를 듣고 남녀간의 성관계를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성을 생식과 동일하게 여기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과 생식은 엄연히 그 개념이 다르다.
성이란 새로운 개체를 생산하기 위하여 두개의 개체로부터 받은 유전물질을 결합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편 생식이란 생물이 자기와 같은 개체를 생산하는 일이다. 생식은 성과의 관계 유무에 따라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으로 구분된다. 성과의 관계없이 자기 몸의 일부를 나누어 후손을 만드는 것을 무성생식이라 한다. 박테리아나 꺾꽂이 나무는 무성적으로 증식한다. 그러나 암컷과 수컷으로 갈라져 있는 생물은 유성생식을 한다.
섹스와 생식의 차이
동물의 경우, 유성생식을 위해서는 두가지의 상호보완적인 과정이 요구된다. 첫째 암수가 생식을 위한 특별한 세포, 즉 생식세포를 만든다. 생식세포로 되는 세포는 원래의 체세포가 가진 염색체 수의 절반을 갖는다. 염색체의 수를 반으로 감소시키는 세포분열을 감수분열(meiosis)이라 한다. 감수분열의 결과로 형성되는 생식세포가 난자와 정자이다. 둘째 생식세포가 서로 만나 수정이 진행됨으로써 두 세포가 하나로 융합된다. 반감되었던 염색체의 수는 원래대로 돌아간다.
식물 역시 대부분 유성생식을 한다. 식물의 생식기관은 꽃이다. 꽃의 생식세포는 화분과 알이다. 화분은 수술 끝의 꽃밥 속에 있으며 알은 암술 아래쪽의 씨방 깊숙이 들어 있다. 암술이 화분을 받아들일 태세가 갖추어 지면 암술머리가 점액을 분비한다. 점액은 화분을 잡아두기 쉽게 한다. 화분이 암술머리에 닿으면 암술의 세포가 흥분한다. 이와 같이 암술머리에 화분이 붙는 것을 수분(受粉)이라 한다. 화분이 씨방 속의 알과 수정되면 종자가 생긴다. 식물의 생식기관이 동물과 다른 점은 암수의 생식기관이 같은 식물의 같은 장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은행이나 뽕나무 같은 예외가 있다. 이들은 동물처럼 수꽃과 암꽃이 별개의 그루에 달려 있다.
암컷과 수컷이 갈라져 있는 동물은 서로의 생식세포를 합일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암수의 성기를 결합시켜야 된다. 그러므로 섹스라고 하면 유성생식 때의 성을 연상하게 되고 생식기관의 결합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기의 결합이 없이도 생식이 가능해지고 있다. 생식을 조절하는 기술을 갖게 된 것이다.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등 의술이 발달한 덕분이다. 이처럼 성행위가 없는 생식이 있는가 하면, 생식이 없는 성행위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피임기술의 진보로 성행위는 하지만 임신을 하지 않는 경우이다. 물론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다. 인간 이외의 생물에 있어서 성은 생식 바로 그 자체이다.
성은 비경제적 생식수단
성이 생식과정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성이 생식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유성생식은 생식의 측면에서 볼 때 무성생식보다 훨씬 불리하기 때문이다. 생물은 가급적이면 많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무성생식은 이러한 유기체의 본능을 충실히 실행에 옮기지만 유성생식은 그렇지 못하다. 박테리아는 유전자를 모두 후손에 고스란히 넘겨주지만 유성생식하는 생물은 양쪽 어버이로부터 각각 50%씩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따름인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감수분열에 의하여 양친 유전자의 절반은 내버리게 된다.
또한 유성생식은 성을 위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테면 생식세포를 만들고, 암수의 배우자를 찾아야 하며,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수정의 시간을 조정하고, 실제로 교미행위를 해야 한다. 에너지와 시간의 낭비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무성생식하는 박테리아는 배우자를 찾거나 수정하는 수고를 겪지 않고서도 짧은 시간에 기하급수적으로 자손을 번식시킨다. 요컨대 성은 생식을 위해서 반드시 좋은 수단이라고 할 수 없다. 현명한 유기체라면 성을 자식 낳는 방법으로 선택할 까닭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성공적으로 진화된 고등생물일수록 유성생식에 의하여 종족을 번식시키고 있다. 따라서 생식에 효율적인 방법이 못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성이 생식의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 이유는 생물학이 풀지 못한 최대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생물학자들이 성의 기원을 설명하는 논리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은 성이 진화의 다양성을 증진시키고 그 속도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유성생식으로 생기는 자식은 유전적으로 부모와 같지 않다. 성에 의하여 세대마다 새롭고 개량된 유전적 변종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성은 생물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개체를 진화시키는 기회를 증대시킨다.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는 사례의 하나가 기생생물과 숙주의 상호작용이다.
영국의 월리엄 해밀턴교수는 성에 의하여 제공되는 유전적 다양성 덕분에 숙주가 기생물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지 않았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만일 숙주가 무성생식을 했다면 모든 후손이 동일하므로 기생생물이 일시에 모든 개체를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성생식하는 숙주의 자손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기생생물이 숙주의 다양한 개체를 손쉽게 공략할 수는 없다. 요컨대 성은 숙주가 박테리아와 같은 기생생물의 공격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개발한 전략무기라는 것이다.
동족살해에서 비롯된 감수분열
지난 50여년간 생물학자들은 성의 기원을 유전적 변이성과 진화의 다양성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일부소장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했다. 유전적 다양성은 성의 기능이자 결과일 따름이며 성이 시작된 이유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반론은 유전자 이동이론과 유전자 수복(修復)이론이다.
유전자 이동이론에 따르면, 지구상에 나타났던 최초의 성은 박테리아 방식의 유전물질 교환이다. 미생물의 세계에서는 놀랍게도 유전물질의 교환이 쉽게 이루어진다. 박테리아가 유전물질을 다른 박테리아와 끊임없이 주고 받고 있다는 사실은 오랜 연구의 결과 밝혀졌다. 한 박테리아 세포로부터 섬모(pilus)라 불리는 미세한 돌출부를 다른 박테리아로 연장시켜서 이 다리를 통해 한쪽의 유전물질이 다른 한쪽으로 옮겨진다. 이러한 과정을 접합(conjugation)이라 한다. 접합에 의하여 이동되는 유전물질은 오로지 자신의 번식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다. 접합은 여러모로 고등동물의 섹스와 닮은 점이 많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박테리아의 접합에 의한 유전물질의 교환이 성의 가장 오래된 형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유전자 수복이론은 박테리아가 원시지구의 악조건, 예컨대 과도한 산소 또는 자외선에의 노출로 손상된 염색체를 수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유전자의 일부를 서로 교환하게 된 것이 성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박테리아는 오늘날까지 무성생식에 의존하고 있지만 두 이론은 모두 성의 원시적 형태를 박테리아의 유전물질 교환에서 찾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박테리아 방식의 성은 약 30억년 전 태고대의 어느 시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동물의 감수분열적인 성은 약 10억년 전 원생대에 진화된 것으로 유추된다. 동물의 유성생식 과정에는 하나의 수수께끼가 존재한다. 반쪽이 된 두 세포가 서로 결합하여 온전한 한 개가 되는 과정이 생식을 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유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의 독특한 이론이 나와 있을 따름이다.
마굴리스여사에 따르면, 이러한 감수분열은 고대 생물에게 생존의 위협이 되었던 기아에서 야기되었다. 기아에 직면한 원생생물들은 같은 종을 잡아먹게 되었다. 잡아먹힌 세포가 완전히 소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포식세포가 먹이세포의 것까지 합쳐서 두 조의 유전물질을 소유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동료세포를 잡아먹어서 염색체의 수가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이러한 세포는 비정상적이므로 정상의 상태로 되돌아 가기 위해서, 세포가 다시 분열할 때 자손들에게 양친이 가진 염색체의 절반을 넘겨주게 되었다. 이것이 감수분열이 생식과정에 나타나게 된 이유이다. 동물의 감수분열이 동족을 살해한 원죄에서 출발하였다는 끔찍한 설명이다.
다양한 성 결정 방법
양성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수수께끼이다. 사람의 섹스가 하나나 셋이 아니고 하필이면 둘인 까닭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단지 분명한 것은 사람의 성이 난자와 정자가 수태할 때 성염색체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부모는 새로운 세포에게 23개씩의 염색체를 물려준다. 그 중 한개가 성염색체이다. 어머니는 X염색체를 두 개, 아버지는 X염색체 한개와 Y염색체 한 개를 갖고 있다. 여자는 항상 X염색체를 물려주기 때문에 정자가 X염색체를 갖고 있으면 태아는 딸(XX)이 되지만 Y염색체를 갖고 있으면 태아는 딸(XX)이 된다. 이와 같이 양친으로부터 유전되는 염색체의 조성에 의하여 동물의 성별이 결정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를 조직개념(organizational concept)이라 이른다.
조직개념에 따르면, 태아발생의 초기에 염색체 조성에 의하여 결정되는 생식선이 성적 특징을 발육시키는 성호르몬을 분비한다. 남자의 성징은 고환에서 분비되는 남성호르몬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나 고환이 없는 개체는 여성호르몬을 분비하는 난소를 발육시킨다.
조직개념은 사람이나 포유류와 같은 온혈동물의 성이 결정되는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물고기나 파충류따위의 냉혈동물에 적용될 수 있을 만큼 포괄적이지는 못하다. 조직개념에서는 성염색체가 동물의 성별을 결정하지만 많은 어류와 대부분의 파충류는 비유전적인 요인, 예컨대 온도나 사회적 환경에 의하여 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되는 동물은 파충류에 많다. 모든 악어류, 대부분의 거북, 일부 도마뱀이 이에 해당된다. 거북의 경우 알이 부화되는 온도에 의해서 암수가 판가름나는데 햇볕이 따뜻한 곳에서는 암컷이 태어나지만 응달에서는 수컷이 생긴다.
한편 사회적 환경에 의하여 성이 조절되는 동물은 대부분 암컷과 수컷의 생식선을 모두 구비하고 있는 자웅동체이다. 이들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성행동을 바꾼다. 수컷으로 태어나지만 한참 뒤에 암컷으로 돌변하는 아네모네 피시라는 물고기, 몇분 이내에 암수의 역할을 번갈아가면서 짝짓는 행동을 일삼는 농성어가 좋은 보기이다.
이 밖에도 자웅동체는 아니지만 암수 구별이 없이 지내는 육상동물이 있다. 중남미에 사는 채찍꼬리 도마뱀은 오로지 암컷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수정하지 않고 발육하는 난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처녀생식을 하지만 다른 동물처럼 교미행동을 보여준다. 다른 점은 개체가 서로 암컷과 수컷의 역할을 교대로 한다는 것뿐이다. 처녀생식은 벼, 채송화, 나팔꽃 등 꽤나 많은 식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서, 생식세포가 수정하지 않고서도 세포분열을 하여 발육하는 독특한 생식방법이다.
동성애는 운명인가
남자와 여자는 성염색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유전물질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지만 신체적 조건이나 생식기능 뿐만 아니라 지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심리학자들이 제시하는 통계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남자가 공간지각에 관한 능력과 수학적 추론 능력에서 여자를 능가하는 반면에 평균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복잡한 패턴에서 서로 어울리는 물체를 지각하는 속도가 빠르며 말솜씨가 훨씬 유창하다. 이러한 차이는 인류의 조상이 수렵채집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진화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테면 남자는 동물을 수렵하면서 3차원 시각능력이 발달되었고 여자는 식물을 채집하면서 비슷한 물체를 신속히 발견하는 능력이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남녀의 성차가 타고난 것이라는 사실은 뇌의 연구에서 확인되었다. 태아의 뇌가 발육하는 초기에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성별에 따라 뇌가 다르게 조직되기 때문에 성차가 발생하게 된다. 뇌의 구조중에서 성행동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부위는 시상하부이다. 호두알만한 크기로서 성욕을 통제하는 영역이다.
1991년 여름 영국태생의 미국 생물학자인 사이먼 리베이는 시상하부에 있는 모래알 크기의 신경세포 집단인 INAH3이 동성연애하는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 사이에 그 크기가 다르다는 연구논문을 발표하여 미국 매스컴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았다. 리베이박사에 따르면, 동성에게 성적 충동을 느끼는 남자의 INAH3이 이성을 사랑하는 남자의 것보다 작고, 보통 여자의 것과 크기가 같다.
리베이의 논문은 동성연애를 후천적인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해서 죄악시하는 사회통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극렬한 논쟁을 유발했다. 만일 동성연애 행위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뇌 안에 새겨진 타고난 운명의 결과라고 하면 동성애를 금지하는 각종 법령이나 종교적 계율, 군대에서의 차별대우 등이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리베이는 연구자료와 학자로서의 명성을 거머쥘 기회를 붙잡았으나 논문발표 직후 학계를 은퇴했다. 동기는 간단명료했다. 여생을 좀더 보람있는 활동에 바치겠노라는 한마디였다. 그는 동성연애자를 위한 전문교육연구소를 차렸다. 이어서 플라톤 이후 오늘날까지 이루어진 동성연애 연구에 관한 역사를 집대성하는 책의 집필에 착수 했다. '동성애의 과학'(Queer Science)이라는 색다른 제목의 책이다. 리베이는 자신이 열세살적부터 동성연애를 해온 사실을 전혀 숨기려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