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대부분의 생물들은 광합성을 기본으로 한 먹이사슬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태양을 먹는 생물'이라 불린다. 70년대 후반 이후 심해의 열수(熱水) 분출 지역에서 발견된 생물군집은 지각이 벌어진 틈에서 뿜어져나오는 메탄황화수소 등을 에너지 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지구를 먹는 생물'이라 불린다.
지금까지 생물이 없다고 생각되던 심해저에는 사실은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햇빛이 미치지 못하는 깊은 심해저에서는 광합성을 하는 식물은 자랄 수 없다. 이곳에서는 열수와 함께 분출하는 유황을 이용해 유기탄화수소를 합성하는 유황세균 등을 피라미드의 저변으로 해서 독자적인 먹이사슬이 형성되고 있다.
그중 유명한 것은 길이가 1m 이상이나 되는 관벌레이다. 이 동물의 성장속도를 조사한 결과 1년에 85㎝. '태양을 먹고사는 생물'보다도 빠르다고 미국 래드거즈대학의 루트씨는 '네이처'지에 보고하고 있다.
루트씨는 91년 화산활동이 있던 멕시코해의 동태평양해령에서 3년에 걸쳐 해저의 같은 지점에 잠수조사선 앨빈호로 관찰을 계속했다.
91년 용암분출 직후에는 지각의 벌어진 틈에서 3백℃의 열수가 분출, 부근 해저는 흰세균으로 뒤덮였을 뿐 큰 생물은 없었다.
이듬 해 92년 3월 잠수조사 때는, 열수의 온도가 내려가고 세균에 뒤덮여 있던 곳은 그 범위가 줄어들었다. 그 대신 흰게와 길이 30㎝ 정도의 작은 관벌레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93년 12월 잠수하자 그곳에는 길이 1.5m에 달하는 대형 관벌레 수십마리가 해초처럼 몸을 흐느적거리며 알을 낳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이 9개월 동안에 자란 것이다. 연평균 85㎝라는 성장속도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다에 사는 무척추동물 가운데는 최대이다.
해저의 특정장소에 열수가 분출하고 있는 기간은 일시적인 것이다. 그 짧은 기간에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 이렇게 성장속도가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광합성에 의존하지 않고 이정도 효율적인 먹이사슬이 존재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