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은 천지를 창조하고 바다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생명의 씨앗이 싹텄다. 또 충돌은 지구상의 생물들을 멸종시키기도 했다.
외계 물질과의 태양계 행성들의 격렬한 충돌은 태양계 생성과 진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구의 표면은 물의 침식작용과 대륙이동으로 충돌 자국들이 거의 다 없어져 버렸지만, 달 수성 화성 등과 그들의 위성, 그리고 소행성들의 표면에 있는 운석구덩이(crater)들을 보면 태양계 생성 당시 얼마나 많은 충돌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들 표면의 운석구덩이 숫자는 크기가 작을수록 많지만, 지름이 수천 ㎞에 달하는 커다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달의 뒷면에 있는 마레 오리엔탈레(Mare Orientale)다(사진1). 이 운석구덩이의 지름은 거의 2천㎞에 가깝고, 충돌시 거대한 에너지 발산에 의해 중심의 수백㎞가 완전히 녹아서, 충돌 직후 용암의 바다가 형성됐다.
이러한 충돌은 대부분 태양계 생성 당시 수억년에 걸쳐서 일어났다. 당시의 충돌은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소규모의 충돌이 아니라 거대한 충돌이라는 이론이 있다(그림1). 이 이론은 1970년대에 탄생한 것으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즉 화성 만한 크기의 물체가 지구와 충돌하여 그 충돌의 힘으로 퍼져나간 잔재들로 달이 생성되었다는 이론이다. (그림2)는 컴퓨터 모의실험에 의한 이 충돌의 진행 상황을 보여준다.
충돌 초기에는 지구의 외부지각과 충돌체는 모두 기체화된다. 이 중 남은 것들 중에 커다란 덩이는 지구가 되고, 지구 주위를 돌던 것들은 모여서 달이 되는 과정을 차례로 보여 준다. 이 이론은 지금까지 설명되지 못했던 달의 표면 중 '바다'라고 불리는 넓은 용암 평원들의 기원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태양계 생성 당시에 일어났던 또 하나의 커다란 충돌 가능성은 수성의 탄생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 이론도 1980년대 말에 나온 최신 이론으로서 그동안 설명이 잘 안됐던 수성의 고밀도를 잘 설명해준다.
충돌이 만물창조의 근원
수성의 밀도는 5g/㎤로서 행성 중 높은 밀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행성 천문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려 왔다. 물론 수성이 태양에 가까이 있고 중력이 작은 이유로 가벼운 기체들을 다 날려 버렸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일부 행성 천문학자들은 이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그림3)의 컴퓨터 모의실험에서 보듯 지구와 달은 비슷한 생성과정을 겪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충돌 전의 수성은 밀도가 낮고 외곽 지역은 규소(Si)가 많이 포함된 암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충돌 후 이 외곽지역이 다 날아가 버리고 중심에 철을 많이 포함한 암석만 남게 되었다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충돌에 의해 생긴 것이 지구라고 생각하는 행성 천문학자들은 지구에 바다가 생긴 이유도 외계 물체, 특히 혜성들과의 충돌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구가 생기고 수억년이 지난 뒤 태양계 근처를 지나가던 항성이 지구 주위에 있는 오르트 구름을 섭동시켜 오르트 구름을 형성하고 있던 수많은 혜성들을 태양계 안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이론이다.
이 오르트 구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상의 구름. 이 곳에는 수많은 혜성들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떠한 중력섭동 인력의 변화로 궤도가 변경되는 현상에 의해 태양계 안쪽으로 혜성을 보내기 때문에 그 존재가 드러난다는 것이다(그림4). 지구에 바다가생성될 때는 아마도 수백만 개의 커다란 혜성들이 지구와 충돌해야만 했을 것이다. 충돌 후 물들은 수증기로 변해 아주 짙은 대기층에 머물다가, 충돌이 끝나고, 지구표면이 식은 다음에 장구한 세월동안 계속 비가 내려 바다가 생겼다는 것이다.
충돌은 천지를 창조하고 바다를 만들었다. 그 이후 생물이 이 지구 위에 생기기 시작했는데 일부 과학자들은 이 생명이 생긴 이유마저도 혜성과의 충돌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허무맹랑하다고 무시하는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몇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년으로 우주의 나이인 약 1백50억-2백억년보다 훨씬 젊다. 이 이유는 태양 자체가 우주가 생성할 당시의 물질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어떤 별들의 타고 남은 '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태양과 태양계의 행성과 위성은 무거운 원소들이 많은데 이 원소들은 별(항성)의 내부에서 핵융합반응으로만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러므로 태양과 태양계의 물체들은 원래 빅뱅(big bang) 당시의 물질로서, 생성된 별들이 다 타고 그 결과 만들어진 무거운 원소들을 신성이나 초신성 폭발로 성간으로 뿜어내고, 이들이 성운을 형성했다가 다시 수축하여 생긴 것들이다. 지구 생성 당시는 너무나 잦은 충돌이 있었기 때문에 지구 표면 자체가 녹은 용암으로 되어 있어서 생명이 형성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구가 식고 바다가 만들어진 후 가끔씩 떨어지는 혜성에는 갖가지 유기물질들이 들어 있다. 이 유기물질들은 단백질 형성에 적합한 분자들로 되어 있다. 특히 혜성은 눈덩어리와 같이 엉성한 구조로 되어 있어 지구와 충돌하더라도 그 일부는 충돌 당시 발생하는 열과 차단되어 혜성이 갖고 있던 유기물질들을 지상에 전달할 수 있다는 이론이 최근에 발표됐다. 이 이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혜성의 핵은 열전도가 지상의 어느 물질보다 적다고 주장하면서 실험실의 모의실험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혜성의 내부에는 단백질로까지 진화된 분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생명탄생 혜성충돌설 참조).
고생물 절멸의 원인
화석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지구상의 생명들이 여러 시점에서 멸종되고, 또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고생물들의 멸종과 번성에는 여러가지 지질학적인 설이 있지만, 외계 물체와의 충돌로 고생물들이 주기적으로 멸종했다는 설은 최근 20년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질학적인 설은 거대한 화산 폭발설과 지자기 변동설이다. 거대한 화산의 폭발이 몇천만년마다 한번씩 일어났기 때문에 고생물들의 멸종을 외계 물체와의 충돌 없이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지자기가 몇천만년에 한번씩 바뀔 때마다 잠시 지자기가 없는 지구가 되면 태양의 강력한 우주선들이 지표면까지 도달해 생물들을 죽인다는 설이다. 보통 때는 지자기가 자기권을 형성하여 태양풍이나 태양의 우주선들은 지구 표면에 직접 들어올 수 없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태양은, 아마도 이중성으로 되어 있고 또 하나의 태양이 본래의 태양을 도는 주기가 고생물의 멸종 주기와 같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의 태양이 타원형으로 본래의 태양을 돌다가 오르트 구름에 가까워져 섭동시키면 많은 혜성들이 태양계 안으로 떨어져 지구와 충돌이 생긴다는 이론이다. 요즘은 지질학적 이론과 천문학적 이론을 합친 혹은 보완적인 이론도 나온다. 즉 혜성이 충돌하면 그 거대한 충격으로 인하여 커다란 지진파가 발생해 화산대에 영향을 미치고 이로인해 화산들이 일제히 폭발하여 고생물을 멸종시키는데 기여했다는설이다.
고생물들이 주기적으로 멸종한 원인은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6천5백만년 전 공룡이 멸망한 원인이 지름 약 10㎞ 가량의 외계 물체였다는 것이 요즘 정설로 점차 굳어져가고 있다. 이 설은 1980년 노벨상 수상자인 알베느르 박사가 처음 주장한 것으로, 그후 대규모 화산폭발설과 더불어 논쟁이 계속돼 왔다. 그러나 이 논쟁은 6천5백만년 전의 지층에서 혜성이나 소행성 등 외계 물체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이리듐(Ir)이 평균 지각의 양보다 훨씬 많이 발견되고, 충돌 때 일어난 대화재의 증거로 간주되는 검은 재들이 발견됨으로써 외계 물체와의 충돌설로 기울어져 갔다.
최근에는(1991년)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지름 1백80㎞에 이르는 운석구덩이 자국이 발견되었고, 그 주위에 운석 충돌 때만 생성되는 결정체들이 발견되었다. 지층 검사에 따르면 이 운석구덩이는 정확히 6천5백만년 전에 생긴 것이고, 그 크기도 지름 약 10㎞ 짜리 운석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공룡멸망설은 어느 정도 혜성이나 소행성 충돌설로 정착돼 가는 느낌이다.
최초 생명의 씨앗, 혜성이 싣고 왔다
혜성이 지구에 충돌함으로써 형성된 '혜성 연못'에는 유기분자를 비롯 생명탄생에 필수적인 다양한 원소들이 포함돼 있다.
지구상에서 생명체는 어떻게 싹텄을까. 생명의 씨앗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여기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설이 난무했다.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조물주론, 외계 천체에서 생명의 씨앗인 유기분자가 유입됐다는 천체비래설, 썩은 음식물에서 생명체가 탄생했다는 자연발생설 등등. 그중에서도 혜성이 충돌해 원시생명의 씨앗이 태동했다는 '혜성충돌설'은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혜성을 구성하는 물질은 물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의 얼음이 질량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소량이기는 하지만 메틸시안 시안화수소 등 유기분자가 어느 정도 포함돼 있다. 혜성은 태양에 접근하면서 열을 받아 구성물질이 녹아 물과 혼합된다. 이 물질이 바로 원시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모태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연구 그룹이 있다.
1961년 미국 휴스턴대학의 호안 오로는 과거 수십억년 사이에 지구에 충돌한 1백개의 혜성이 가지고 있는 물질들이 지구 화학진화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지구 생성 후 20억년 동안 혜성의 충돌로 최소 2억t에서 최고 1조t에 이르는 혜성물질이 지구에 축적됐다고 한다. 이중에는 아니노산 등 어느 정도 화학진화가 진행된 물질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것.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면 대기에 대량의 혜성물질이 흩뿌려지고, 지각에도 유기물질이 집적되는 지역이 형성된다. 오로의 주장은 바로 이 지역이 생명 탄생의 무대라는 것이다.
1987년 오로의 주장을 뒤집는 새로운 설이 제기됐다. 항공우주 전문기업인 미국 마틴마리에타사에 근무하는 벤톤 클라크는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상대속도는 초속 11.3-72㎞에 달하는데, 이 정도의 고속이라면 혜성 내부에 축척된 유기물질이 모두 파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상에 혜성물질이 축적된다는 이론은 틀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혜성의 대기 충돌 입사각이 낮은 것이 많아 소형의 혜성이라면 대기와의 마찰로 속도의 감속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돼 오로의 설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혜성이 분출하는 휘발성 물질이 대기와 부딪치면서 속도를 감속 시켜주기 때문에 혜성핵의 일부는 지상에 '안착'할 수 있다는 것.
이 결과 혜성이 부딪친 지점에는 유기 분자와 무기화합물이 풍부한 '혜성 연못'이 형성된다. 핵의 지름이 30m, 비중 1, 물과 먼지의 비율이 2백:1의 조그만 혜성이 안착했다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최대 깊이7.5m, 지름 수십m의 연못이 형성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연못의 표면은 유기물질로 덮여 있다(그림).
혜성 연못을 구성하는 물에는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메탄 포름알데히드 시안화수소 메틸시안 탄산 등의 유기분자 외에 생명체에 필요한 여러가지 원소를 다른 해양보다 훨씬 많은 비율로 가지고 있다. 코발트는 약 1백만배, 셀렌 주석 카드뮴 아연 등은 1만배, 몰리브덴은 3백배, 비소는 2백20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다른 생명탄생의 시나리오에서 추정한 '생명 수프'보다 훨씬 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밖의 다른 어떤 해양보다 열역학적으로도 변화의 폭이 큰 '혜성 연못'은 다양성이 풍부해 화학진화의 최적지라는 주장이 '혜성충돌설'의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