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나 은하의 운동을 조사해본 결과 우주공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양은 대략 눈에 보이는 물질의 1백배라고 하는데….
1930년대 초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얀 오르트는 우주공간에서 운동하고 있는 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암흑물질)로 우주공간이 채워져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플러효과(빛을 내는 물체가 가까이 오면 청색편이를 일으키고 멀어지면 적색편이를 일으키는 현상)로 우리은하 내의 별들이 움직이는 속도를 측정한 결과, 이론치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 은하 중심을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암흑물질의 존재를 가장하지 않는다면 지금 속도보다는 훨씬 느리게 돌아야 한다는 것. 실제로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행성들의 공전속도는 외행성쪽으로 갈수록 느려진다(수성 48km/초, 지구30km/초, 토성 10km/초, 명왕성 4.7km/초). 오르트의 주장 이전에도 이러한 현상은 관측됐다. 안드로메다은하 내의 별들이 움직이는 속도도 은하핵에서 멀어질수록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즈비키는 보다 규모가 큰 영역에서 암흑물질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사례를 발견해냈다. 은하들이 모여있는 은하단에서도 개별은하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이론적인 계산수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즈비키가 조사한 것은 코마은하단. 이 은하단 내의 개별 은하들의 상대속도를 도플러효과를 이용한 방법으로 측정한 결과, 관측되는(눈에 보이는) 모든 은하들의 중력을 합한 것 이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암흑물질의 증거는 그 규모가 커질수록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태양계에서는 거의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우리 은하내에서는 어느 정도 뚜렷하게 증거가 포착되고 있고, 우리은하 내보다는 은하들이 모여 있는 은하단에서 그 규모가 훨씬 크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1988년에는 암흑물질이 움직이는 증거도 포착됐다. 미국허블망원경센터의 천문학자들은 과거 은하들이 엇비켜가면서 충돌할 뻔했던 지역에서 서로 다른 양상이 검출됐다. 하나의 은하에서는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속도감쇄 효과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비해 다른 은하에서는 속도감쇄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암흑물질이 없다면 속도감쇄는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에 따라 당연히 나타나야 한다.
결국 두 은하가 접근하면서 하나의 은하가 다른 은하의 암흑물질을 뺏어갔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우주의 운명과도 맞물려
그렇다면 우주공간에는 어느 정도의 암흑물질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우주의 운명과도 맞물려 있다. 1960년대 빅뱅이론이 표준우주모델로 자리잡았을 때 이 모델의 방정식은 앞으로 우주가 계속 팽창할지, 다시 수축할지, 아니면 이 상태를 유지할지 결정해주는 변수로 우주공간내에 존재하는 물질의 총량을 선택했다. 물질의 양이 많으면 우주는 언젠가 다시 수축을 시작해 빅크런치를 만들 것이고, 일정량 이하면 우주는 영원히 팽창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전체 물질량을 계산하는 것은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쳤다. 1965년 펜지아스와 윌슨이 발견해낸 우주배경복사선을 근거로 대폭발을 일으켰을 때의 상황을 계산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계산은 전체 우주공간에서 수소와 헬륨, 그리고 '바리온 물질'이라 불리는 양을 정확히 산출해내지는 못했다. 바리온이란 우리 자신을 비롯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그리고 빛나는 별들 모두를 의미한다.
우주론가들은 빅뱅 과정에서 헬륨이 만들어지는 조건을 현재 우주공간에서 관찰되는 수소와 헬륨에 맞추기 위해서 우주 전체의 바리온 밀도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재 보이는 가스와 먼지 구름이 1백배이상 존재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른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양의 1백배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바로 1980년대 등장해 표준이론 안에 편입된 인플레이션 이론의 지침이다. 인플레이션이론은 우주론의 한가지 숙제인 우주의 밀도를 이론적으로나마 해결한 것이다.
그렇다면 암흑물질의 존재는 어떤 것인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들의 빈 공간에는 질량을 가진 어떤 입자들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첫번째 후보는 중성미자였다. 핵반응에서 탄생하는 중성미자는 우주공간에 광자(photon)만큼 많이 존재하지만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물질이기 때문에 잘 포착되지 않는다. 지금 순간에도 태양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가 초당 1천억개 이상 우리 몸을 뚫고 지나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과연 그 질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중성미자의 양은 바리온수의 ${10}^{9}$배 정도로 추측된다. 중성미자는 질량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주 미미한 양일 것이므로 '겨우 존재하는 것'들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제2,3의 후보 WIMP와 MACHO
그러나 최근 코비위성의 관측결과에 따르면 중성미자는 암흑물질일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다른 암흑물질의 후보는 WIMP(Weakly Interaction Massive Particles)다. 말 그대로 질량이 있으면서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 입자이다. 중력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러한 종류의 입자를 다른 표현으로는 CDM(Cold Dark Matter)라고 부른다. 차갑다는 것은 무겁다는 의미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빛보다 무거운 질량을 가지고 있어 빅뱅 이후 빛의 속도보다 천천히 우주공간을 떠돌고 있는 셈이다. 이와 비교해 중성미자와 같이 질량은 아주 작고 속도는 빛처럼 빠른 물질을 HDM(Hot Dark Matter)이라 부른다.
최근 들어 CDM이 매개하는 우주진화 과정이 보다 실제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지지자들이 CDM쪽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관측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WIMP입자는 암흑물질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적인 존재일 뿐이다. 가상적인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영국 북서부에 있는 소금광산 지하에는 WIMP 검출기가 건설되고 있다.
한편 소립자와 같은 미시적 차원이 아니라 거시적 차원에서 암흑물질을 찾는 그룹도 있다. 이를 MACHO(Massive Astronomical Compact Halo)라고 한다. 별이 일생을 다하고 사라질때 생성된 백색왜성, 초신성폭발로 남긴 중상자 별이 차갑게 식어버린 잔해, 또는 블랙홀들이 암흑물질을 구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합해도 현재 우리 눈으로 보고 있는 '밝은 물질'의 10배에 불과하다. 이것만 가지고는 우주의 구조를 설명할 수 없다.
암흑물질은 아직도 찾아지지 않고 있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예견한 바가 맞다면 우리가 보는 물질은 실제양의 1%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태양과 같은 별들이 1천억개 이상 몰려 있는 우리은하, 그리고 이와 같은 은하들이 1천억개 이상 모여 이루고 있다는 우주, 그런데 이것도 실제의 1%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보잘 것 없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