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은 중심부(central London)인 1존(Zone 1)을 중심으로 9존(Zone 9)까지 나눠져 있다. 이 구역에 따라 생활비가 달라진다. 생활비가 가장 비싼 구역은 당연히 런던 중심부인 1존이다. 관광지도 많고, 쇼핑으로 유명한 각종 거리와 뮤지컬 극장, 박물관, 미술관들이 대부분 이곳에 있다. 런던의 유명한 대학들 또한 1존에 위치해 있다. 임페리얼칼리지는 다른 대학들과 조금 떨어진 1존 서쪽 끝, 사우스 켄싱턴에 자리하고 있다.
임페리얼칼리지에는 9개의 1학년 전용 기숙사와 나머지 학년이 이용하는 기숙사가 하나 있다. 합격과 동시에 기숙사 관련 e메일이 오는데, 원하는 기숙사 5곳의 방을 선택해 신청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추첨으로 방이 배정된다.
가장 인기가 많은 기숙사는 이스트사이드와 사우스사이드로, 캠퍼스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기숙사들이다. 워낙 신청자가 많아서 원하는 방을 얻기도 쉽지 않지만, 기숙사들 중 가장 비싼 곳이기도 하다. 사우스 켄싱턴이 땅값이 상당히 비싼 지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장 인기 없는 기숙사는 캠퍼스까지 지하철로 40분 이상 걸리는 우드워드와 코스튬 스토어라는 기숙사다. 선택할 때 우선순위를 기재할 수 없기 때문에, 5가지 선택지 중 우드워드나 코스튬 스토어가 있다면 이들 중 하나에 우선적으로 기숙사가 배정된다.
나는 1학년을 코스튬 스토어에서 보냈고, 2학년이 된 지금은 학교에 요청해 코스튬 스토어와 붙어있는 우드워드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다. 임페리얼칼리지는 학부생의 기숙사 비용을 학생회 차원에서 일부 지원해주기 때문에 다른 기숙사에 비해 40%가량 싸게 지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살 집을 구하는 건 그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 사정이 넉넉지 않아 학교에 양해를 구했더니 흔쾌히 비는 방을 내줬다. 이처럼 임페리얼칼리지는 학생들이 최대한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해주는 편이다.
코스튬 스토어와 우드워드는 2존과 3존에 걸쳐 있는 만큼 번화가와는 거리가 먼 개발지역이다. 사방은 공사 현장이어서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많은 학생들이 불만을 가지고 떠나지만, 그럼에도 살다 보면 나름 괜찮은 기숙사다. 바로 밑에 편의점이 있고, 전철과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이라 어떻게 보면 역에서 10분가량 떨어져 있는 다른 기숙사보다 편한 점도 있다. ‘학교와 멀리 떨어져 지내는 동료’라는 공감대 때문인지 같은 기숙사 친구들 사이에는 묘한 유대감도 생긴다.
기숙사는 6~8명이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부엌과 거실을 함께 쓴다. 지정된 방에 화장실이 없는 경우에는 화장실까지 공유한다. 학생들은 냉장고와 냉동고 한 칸, 열쇠로 열 수 있는 개인 수납공간을 하나씩 배정받는다.
방에 들어오기까지 총 4번에 걸쳐 열쇠를 사용하기 때문에, 플랫메이트(영국에서는 같은 주거 공간을 사용한다는 뜻에서 룸메이트 대신 플랫메이트라고 부른다)만 잘 만난다면 기숙사 내부는 상당히 안전한 편이다. 나는 부엌에서 주말마다 술파티를 하는 플랫메이트를 만났는데, 1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타 대학 친구들과 마약을 하다가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도 경비원과 층마다 거주하고 있는 기숙사 부사감들이 있어서 안심하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코스튬 스토어 기숙사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은 값싼 생활비였다. 3존에 위치해 있어 방학 중 짐들을 맡겨 둘 창고의 가격도 다른 곳보다 쌌다. 15분 정도 걸어가면 대형 마트와 여러 은행들을 찾을 수 있는데, 특히 ‘아스다’라는 대형 마트에서 각종 식재료들을 아주 싼 값에 판다.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나기 직전인 식품이나 아스다의 할인을 잘 노려서 생활하면, 한 달에 약 5만~6만 원 선에서 건강한 식단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타 대학들에 비해 임페리얼칼리지는 학식이 싸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5파운드(약 7000원) 정도의 가격대다. 그러나 직접 요리한다면 1파운드(약 1450원) 이하 가격대로 점심과 저녁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기숙사 바로 옆에는 임페리얼칼리지 학생우대가격으로 싸게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이 있어서 건강도 챙길 수 있다. 나처럼 생활비를 직접 버는 대학생에게는 매우 큰 장점이다.
기숙사에는 1학년 학생들을 위한 이벤트도 많다. 기숙사 차원에서 하는 커다란 보트 파티부터, 플랫메이트들끼리 모여 소소하게 즐기는 파티까지 추억을 쌓을 기회도 많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플랫메이트들과 과자와 케이크를 구워 먹으며 밤새도록 놀았다. 새해 첫날에는 귀국하지 않은 한국인 친구들과 떡국을 끓여 먹었고, 얼마 전에는 1학년 후배들에게 닭갈비를 만들어 줬다. 기숙사 생활은 이렇게 소소한 즐거움이 넘치는 것 같다.
내년에는 동생이 영국에 유학을 올 계획이어서 기숙사를 떠날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이 좋아서 내년에 살 집도 기숙사 근처인 노스 액턴 지역을 알아보고 있다. 1년 조금 넘게 살아본 결과, 이곳은 센트럴 런던보다는 조금 번거롭지만 열심히 살아가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바쁘기 때문에 성실할 수밖에 없고, 성실하기 때문에 공부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곳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