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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람에게만 서식하는 종류는 퇴치가능

면역ㆍ백신 연구 최전선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한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발달된 의학은 많은 바이러스의 예방약을 내놓고 있지만, AIDS 등 아직도 퇴치에 근접하지 못한 바이러스도 부지기수다.

천연두바이러스는 인간이 퇴치한 최초의 바이러스다. 1796년 영국의 제너가 처음으로 종두법을 개발한 이래, 세계보건기구(WHO)의 줄기찬 노력으로 지구상에서 천연두는 사라졌다. 종두법과 같은 바이러스의 성공적인 퇴치 방법을 발견하고자 많은 과학자들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다른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아직도 완전한 퇴치법을 찾아내지 못한 실정이다.

예방백신 개발의 귀감이 된 종두법

종두법으로 천연두바이러스를 지구상에서 퇴치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 바이러스가 지닌 특성과 관계가 깊다. 즉 이 바이러스는 사람사이에서만 전파되어 천연두를 일으킨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다 종두법에 사용하는 백신제조용 바이러스는 박시니아(vaccinia)인데, 이는 소에 천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이를 사람에게 접종하면 가벼운 발열반응에 수반하는 면역반응만 일으킨다. 박시니아는 우두에 걸린 소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세포배양기술을 이용하여 대량으로 제조할 수 있게 되어 많은 사람에게 값싸고 손쉽게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좋은 여건 때문에 WHO에서 전세계에 백신을 분배하여 모든 국민에게 접종을 강요할 수 있었다.

새로 태어나는 감수성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을 하니 점차 면역성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다. 결국 천연두바이러스는 그 전파경로가 폐쇄되기 시작했고, 점차 증식할 수 있는 서식처를 잃게 되어 우리나라의 경우는 1958년에 근절되었다.

천연두바이러스의 특이한 점은 항원성의 변이가 없고 항원형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천연두바이러스가 피부증상을 일으키려면 한번쯤은 반드시 혈중에 나타나야 하는데 이때 면역항체와 만나서 바이러스가 중화되기 때문에 질병이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 천연두바이러스도 다른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세포내로 들어와서 숙주세포의 도움으로 증식할 수밖에 없는 바이러스다. 따라서 예방접종을 미리 받은 사람은 천연두 바이러스가 세포내로 침투하는 것을 방해하는 물질인 항체를 재빨리 만들어 대응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증식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다른 예로 홍역 백신에 대해서 살펴보자. 홍역바이러스도 사람에게만 국한해 전파되고 감염을 일으키는, 항원형이 하나밖에 없는 특이한 바이러스다. 이때문에 사람이 홍역을 앓고 나면 평생 다시는 홍역에 걸리지 않는다. 홍역백신을 미리 맞으면 홍역을 가볍게 앓고 평생면역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역바이러스는 전파속도가 빠르고 감염 초기에 주로 감수성이 있는 사람에게 전염되기 때문에 전파경로를 방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직도 홍역은 완전히 근절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풍진바이러스 백신과 멈프스(이하선염)바이러스 백신이 있다.
 

닭의 수정란속에 바이러스를 주입, 배양하고 있다.
 

사람에만 서식하는 바이러스는 퇴치 가능

비교적 성공적으로 바이러스를 퇴치시킨 것이 소아마비 예방백신이다. 소아마비는 폴리오바이러스가 감염과정중 혈류를 통해서 중추신경세포에 침입증식하여 신경세포를 파괴시켜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러나 폴리오바이러스가 신경세포까지 도달하는 데는 오랜 시일이 걸린다. 그 이전에 면역반응으로 항체가 생성되어 혈류에서 신경계로 흘러가는 바이러스를 중화하여 제거한다. 그 결과로 많은 사람에서는 신경파괴에 의한 신경마비 증상은 나타나지 않고 가벼운 열성 질환만 앓고 회복된다. 이와 동시에 대개 평생면역을 획득하게 된다.

더구나 폴리오바이러스는 오염된 음식물을 따라 침입하여 장관감염을 일으킨다. 장관감염을 막을 수 있다면 이 감염의 첫 단계를 봉쇄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다행이도 장관점막은 하나의 림프조직의 형태를 지니가 IgA 항체를 생산하는 장소다. 새빈 폴리오백신은 장관점막 림프조직을 자극하여 폴리오바이러스에 대한 면역항체를 만들어 놓는다. 정작 독성있는 폴리오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첫 단계로 장관점막세포에 폴리오바이러스가 침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다른 한편으로 다시 혈류중의 바이러스가 중추신경계에 전달되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폴리오백신을 미리 접종하면 소아마비 증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폴리오백신은 예방백신으로서 상당한 성공예가 되는 것이다. 폴리오바이러스는 항원성의 변이는 적으나 항원형이 3가지 있기 때문에 3가지를 혼합한 백신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폴리오바이러스도 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예방접종으로 면역성을 가진 사람이 증가함에 따라 결국 전염원을 희석시켜 전파를 어렵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만 주로 서식처를 찾는 경우에는 백신으로 쉽게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고 있는 일본뇌염의 경우 바이러스는 사람 돼지 새 모기에서 증식할 수 있고, 모기가 사람이나 돼지의 피를 빨아먹는 동안 뇌염바이러스를 주입시킨다. 따라서 바이러스는 혈류로 직접 침입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바이러스가 직접 전파되지는 않는다.

혈류에 들어온 뇌염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면역항체가 피속에 있다면 바이러스가 중화되어 중추신경계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뇌염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뇌염의 경우에는 뇌염백신보다는 뇌염의 전파경로를 차단하는 방법이 바이러스 퇴치의 최선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천연두바이러스 홍역바이러스 풍진바이러스 폴리오바이러스는 부화란이나 세포배양을 통해서 쉽게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이들 바이러스를 퇴치하는데 백신에 의한 면역반응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배양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백신 개발이 쉽지 않다.

B형 간염바이러스 백신은 이런 환자의 혈액에서 HBs Ag을 정제한 후 포르말린 처리하여 만든 것이다. 매우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만큼 그 양도 상당히 적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B형 간염 환자가 많기 때문에 HBs Ag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어서 간염백신을 우리 기술로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HBs Ag을 혈액내에 가지고 있는 환자를 골라내고 이들로부터 다량의 혈액을 채취하여 항원성분을 정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분자생물학의 발달에 힘입어 HBs Ag에 대응하는 유전자 구조가 밝혀지게 되었다. 또한 유전자 구조나 배열을 알면 유전자를 서열에 따라 단백질로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HBs Ag을 대량으로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유전자재조합(recombinant DNA)기술이 간염백신개발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든 것이다.

HBs Ag을 대장균에 삽입시켜 대장균이 HBs Ag을 생산하니 24시간내에 HBs Ag이 대량 생산되는 것이다. 이런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HBs Ag유전자를 술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곰팡이에 삽입하면, 술을 만들어내듯 HBs Ag을 생산분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얻은 대장균이나 술곰팡이의 유전자는 HBs Ag유전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유전자 산물은 HBs Ag과 대장균이나 술곰팡이 산물이 결합된 채로 생산된다. 따라서 이와같은 복합산물로부터 HBs Ag만 잘라내는 기술이 또 필요하다. 대량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있으나 복합산물을 정제하는 까다로운 작업이 새로운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피하기 위하여 새로운 백신제조 방법이 개발되었다. 즉, 박시니아 바이러스 유전자에 HBs Ag유전자를 삽입시켜 사람에게 아무런 장애를 주지 않는 재조합 박시니아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박시니아바이러스를 HBs Ag유전자의 운반체로 이용한 복합백신이 탄생된 것이다. 박시니아바이러스가 사람세포 내에서 복제되는 과정에 삽입된 HBs Ag유전자도 더불어 발현되어 HBs Ag을 만들어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B형 간염바이러스의 방어항원은 HBs Ag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유전자 조각을 분석하여 재조합백신을 얻을 수 있다.

새로운 백신제조방법 개발

그러나 대부분 인체에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에서는 방어항체의 생성을 유도하는 항원의 성상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재조합 백신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박시니아백신, 홍역백신, 폴리오백신 등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약화시킨 생(生)백신이다. 반면 뇌염백신이나 B형 간염백신은 포르말린으로 처리하였기 때문에 사균(死菌)백신이다. 생백신은 접종된 동물세포 내에서 증식하여 지속적으로 항원을 제공하므로 면역반응이 오랫동안 유지된다. 그러나 사균백신은 접종한 항원량이 제한되기 때문에 면역반응을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없다. 생백신은 접종동물 내에서 변형을 일으켜 독력을 나타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생백신이든 사균백신이든 아직까지는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최선의 방법이긴 하지만 백신에 의한 면역반응이 오히려 질병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어 바이러스 개개의 질병 유발기전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모기가 매개하는 댕규열은 댕규바이러스 항체가 있으면 질병이 악화되는데 그 이유는 항원-항체 복합체가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우리가 지금가지 면역항체가 있으면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다고 한 선입관을 뒤엎는 사실이다.

면역반응은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 하나가 바이러스항원에 대하여 항체를 생산하는 길이고 또하나는 세포면역을 유도하는 길이다. 폴리오바이러스와 같이 바이러스가 세포내에서 증식한 후 세포 밖으로 유출되는 경우에는 체액 속에 있는 항체와 쉽게 만날 수 있다. 항체와 결합된 폴리오바이러스는 다른 세포에 침입하는 것이 방해받는다. 따라서 세포는 폴리오바이러스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기 때문에 파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포 내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면서 일부 바이러스입자만 밖으로 유출시키면서 다른 세포에 직접 전파하게 되면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항체와 결합할 기회가 없다. 이런 경우 항체는 바이러스를 퇴치하는데 무용지물인 셈이다. 이때 대부분의 세포내 바이러스는 그 산물을 세포막에 남겨놓아서 이것을 림프구가 항원으로 인지하여 직접 전투태세를 갖추고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세포를 파괴, 퇴치시킨다. 이는 세포면역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예가 되겠다.

면역반응이 항상 바이러스질환 예방할 수 없다.
 

에이즈는 녹색원숭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이즈 예방과 치료연구를 위해 많은 원숭이들이 희생된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호흡기 점막세포에서 주로 증식하기 때문에 호흡기 점막 표면에 항체가 있으면 쉽게 퇴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사람뿐 아니라 돼지 말 닭 등 다른 동물 세포에서도 증식하면서 쉽게 항원성이 변하는 것이 특징이라 이에 대응하는 백신개발이 어렵다. 이런 항원변이가 심한 바이러스는 공통항원을 이용한 재조합백신을 개발하려는 연구가 한창이다.

지금까지 바이러스를 퇴치시키는 백신이 효용성도 있는 반면 한계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였으리라 믿는다. 면역반응이 항상 바이러스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두어야 한다.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하여 항바이러스 효과를 지닌 약제의 개발도 활발히 진행해왔다. 바이러스는 DNA나 RNA만을 가진 생물체로 적절한 세포내에 침입하여 숙주세포의 복제방식에 따라 복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바이러스 복제를 방해하는 물질은 자연히 숙주세포의 생활도 방해할 수밖에 없으므로 약제로서의 선택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래도 최근에 헤르페스 감염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는 아시클로버(acyclovir)는 상당히 선택적 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헤르페스바이러스의 복제에 관여하는 효소가 숙주세포의 것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졋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약제 개발은 쉽지 않으나 바이러스 종류에 다라서는 특이한 복제기전을 밝힘으로써 가능할 수도 있다. 최근 AIDS 치료제로 AZT(azidothymidine)가 대두된 것도 이런 예에 속한다 하겠다.

인체에서 바이러스 복제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물질은 인터페론이다. 인터페론은 바이러스 감염 후 24시간이 경과하면 우리 몸에 있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 자체가 만들기 시작하는 물질. 항체 생산보다 일찍 시작하여 바이러스가 세포에서 세포로 퍼지는 것을 막아주는 초도단계의 방어기능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터페론은 바이러스 감염의 치료 및 예방에 쓸 수 있으나 숙주특이성이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사람에게는 사람인터페론만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항체는 말에서 만든 것을 사람에 사용하여 효과가 있지만 말 인터페론은 사람에 쓸모가 없다. 1958년에 인터페론이 항바이러스활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인터페론을 실제로 환자 치료에 적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전자재조합 기술의 발달로 인터페론을 다량 생산할 수 있어서 이제는 환자 치료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연구는 개개 바이러스나 숙주동물의 특성 때문에 쉽게 퇴치될 수 있는 것이 있는 반면 아직도 퇴치에 근접하지 못한 것도 있다. 이것은 최근에 AIDS에서 보듯이 원인 바이러스인 HIV의 생물학적 특성이 밝혀져야 질병발생양상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퇴치방법이 강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구상에 나타나 환경변화에 적응하면서 무수한 변화를 하듯이 사람을 좋아하는 바이러스도 무수한 변화를 하면서 공존하지 않을까? 결국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적응할 수 없도록 조치하는 방법이 바이러스 퇴치의 최선의 길이 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HIV 감염여부를 신속하게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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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차창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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