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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빅뱅이 없었다


“허허, 그런 이론이 있었나요?”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천문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멋쩍은 웃음부터 터뜨렸다. 이론이 발표된 지 10년이 됐지만, 그만큼 물리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논문을 검토해 본 송 박사는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기존 빅뱅 이론과 너무 다르긴 하지만 허무맹랑하기만 한 이론은 아니네요.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은 우주의 감마선 폭발에서 그 증거를 찾습니다. 어느 정도 관측에 기반하고 있다는 뜻이죠. 지금까지 빅뱅 이론을 대체한다고 나온 이론이 몇 개 있지만 이 이론은 이 점에서 좀 다르네요.”


태초에 빅뱅이 없었다?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다. 문제는 두 이론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나마 현실에서는 두 이론이 충돌할 지점이 별로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일반상대성이론’대로 움직이던 물질이 갑자기 ‘양자역학’의 법칙대로 움직일 만큼 높은 압력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치 빠른 독자라면 ‘높은 압력’이라는 말에서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다. 3월호에 나온 블랙홀, 그리고 우주가 탄생하던 때, 즉 빅뱅이다.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은 바로 빅뱅이 있었다는 초기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은 미국 페리미터연구소 리 스몰린 교수가 딱 10년 전인 2004년에 발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을 움직이는 빛 입자의 속도는 빛의 파장에 따라 달라진다. 광속은 늘 일정하다는 상대성이론과 근본부터 다르다.


잊혀졌던 이론이 10년 만에 다시 고개를 든 건, 이 이론으로 계산한 초기 우주에 ‘빅뱅이 없다’는 뜻밖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집트 이론물리학센터 아델 아와드 교수팀이 ‘우주론과 입자물리학회지’ 2013년 12월호에 발표한 ‘특이점 없는 레인보우 우주(nonsingular rainbow universe)’라는 제목의 논문에는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으로 초기 우주를 계산하면 부피가 0인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최근 이 논문을 인용해 ‘빅뱅을 잊어라(Forget the Big Bang)’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면서 화제가 됐다.



“빛의 속도가 파장에 따라 결정되면, 초기 우주의 시공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지름이 1mm 줄어드는 데 시간이 엄청나게 더 걸리는 거죠. 결국 아무리 시간을 뒤로 돌려도 대폭발이 일어날 만큼 우주가 작아지지 않게 됩니다. 빅뱅이 일어나지 않은 거죠.”


송 박사는 이 연구를 한마디로 이렇게 소개했다. 사실 물리학에서 빅뱅을 포함해 특이점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되면 일반적으로 그 이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빅뱅이론은 밀도가 무한한 특이점에서 대폭발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뜻이다. 상식적으로도 엄청난 양의 물질이 크기가 0인 공간에 갇힌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우주론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1900년대 초, 사람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했던 것도 특이점이었다. 물론 빅뱅이론을 뒷받침하는 관측 결과가 속속 발표돼, 지금은 미흡하지만 그나마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송 박사가 덧붙였다.


“결국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은 빅뱅이론의 결점인 ‘특이점’을 없애려는 시도입니다. 우주에 한계 밀도를 가정하고 그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우주가 정상적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무한한 밀도를 가정하는 빅뱅이론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더 현실적이지요.”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화해할 수 있을까

빛의 속도가 파장에 따라 결정되면, 초기 우주의 시공간이 완전히 달라져 아무리 시간을 뒤로 돌려도 대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을 처음 제안한 리 스몰린 교수




이론의 첫 제안자조차 “오류 나타날 것”


사실 빅뱅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물리 이론은 여럿 있다.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의 장점은 관측을 통해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 증명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빅뱅 이후 가장 큰 에너지 분출이라고 할 수 있는 감마선 폭발이다. 블랙홀에서 나오는 감마선 폭발은 태양이 평생 방출하는 에너지보다 큰 에너지를 한순간에 내놓는다.


연구팀에 따르면, 빛의 속도는 광자 자신의 에너지에 따라 변한다. 이 값은 너무 작아 일상적인 우주에서는 관측하기 힘들지만 ‘감마선 폭발’처럼 아주 큰 에너지 상태에서는 그 차이가 충분히 클 수 있다. 즉 같은 감마선 폭발에서 두 개의 광자가 나온다고 생각해 보자. 기존 이론대로라면 두 광자의 속도는 서로 같다. 그러나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에서는 서로 다른 파장을 가진 광자는 지구에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도달한다.




페르미 감마선우주망원경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김낙우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뿐만 아니라 끈이론이나 고리양자중력 이론을 완성하면 특이점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믿음”이라며 “그 어떤 이론도 특이점 근처의 물리 현상을 알려줄 만큼 발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북유럽 이론핵물리학연구소 사비네 호센펠더 박사도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빅뱅의 특이점을 없애려는 이론은 수없이 많다”며 “수학적인 계산으로 특이점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일반상대성이론 전체를 일관되게 수정해야 이론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가 물리법칙의 일반적 성질인 ‘국소성’을 깬 것도 문제다.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을 처음 제안한 리 스몰린 교수는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제안했던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은 국소성의 틀 안에서 발전시켰다”라며 “국소성을 고려해 다시 계산하면 아마 이집트 연구진이 생각하지 못했던 수학적 오류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소성


빅뱅 앞에 거대한 막이 있다


결론적으로 레인보우 그래비티 이론에 대한 검증은 아직 어렵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송용선 박사는 “우주의 초기조건을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이 제안됐지만, 사실상 그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인류는 우주의 초기 조건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만, 한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우주론에서 얘기하는 관측은 빅뱅이 일어난 시점이 아니고, 우주의 급팽창(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시점이지요. 물론 이것도 빅뱅 이후에 급팽창이 있다는 이론을 전제조건으로 합니다. 급팽창은 일종의 막처럼 작용해, 사실상 그 이전의 시간들을 관측하기 어렵게 하지요.” 빅뱅이론은 여전히 우주의 탄생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빅뱅이론도 완전하지는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주장이 나온다. 우주의 진리에 도달하려는 물리학자들의 노력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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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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