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신기능의 기초가 되는 기억. 기억은 어떻게 생성되고 보존되나. 기억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알츠하이머병은 무엇일까.
기억은 인간의 지적발달과 인류문명의 창조를 가능케 해주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기능이다. 고도의 사고 기능과 학습기능은 기억을 바탕으로 대뇌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에게 기억이 없다면 학문발달이나 인류문명의 형성, 인간생활의 진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이란 어느 시점에 뇌가 겪은 시간적 공간적 흥분무늬를 다시 재생해 엮어내는 것을 말한다. 세링톤은 대뇌피질에 있는 수백억개의 뉴런에 섬광이 스쳐가듯 충격파가 지나가며 복잡한 시간적 공간적 무늬를 짜넣는 과정을 기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자세한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반복자극에 대한 흥분강화가 단기기억의 기초
기억에도 종류가 있는데, 크게는 몇초나 몇분 후에 사라지는 단기기억과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는 장기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한 신경세포에 강력한 자극을 반복적으로 가하면 그 신경세포에서 다음번 신경세포로 몇초에서 몇시간 동안은 흥분전도가 점점 커지게 된다. 강력한 반복자극에 대한 이러한 흥분의 강화가 단기기억의 기초가 된다. 즉 반복자극하면 신경세포가 그 자극을 기억해서 흥분반응을 더욱 크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흥분전도가 이루어지는 시냅스 부위의 신경세포막에서 이온투과성이 증가함으로써 생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흥분이 사라지거나 새로운 흥분파가 이 흥분전도를 방해하면 기억은 사라지게 된다. 이를테면 더욱 큰소리나 강한 감각경험으로 주의를 돌리게 되면 단기기억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오랜 세월 뒤에도 어떤 일을 회상할 수 있게 하는 장기기억의 원리는 무엇일까. 어떤 기억은 대뇌를 냉각시키거나 전신마취하는 경우, 저산소증, 국소허혈(뇌혈류량 감소) 등으로 뇌기능이 일시 중단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것이 장기기억인데, 이러한 장기기억은 앞에서 설명된 반복자극이 소실되면 사라지는 단기기억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장기기억이 어떤 형태로 어떤 곳에 저장되어 다시 회상이 되는지는 아직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신경세포나 시냅스에 어떤 구조적 변화 혹은 물리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따른 것이라는 점은 점차 확실해 지는 듯하다.
동물은 성장할수록 신경세포의 돌기와 가지(枝)수가 많아지며 대뇌피질도 점차 두터워진다. 또 대뇌피질 부위가 활발히 활동하면 그 부위 피질이 두터워지고 신경전도가 이루어지는 시냅스도 두터워지며 가지의 수도 증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신경전도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부위의 시냅스는 두터워질 뿐 아니라 새로운 가지도 생겨 흥분전도가 훨씬 원활히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 구조적 변화는 마침내 영구화하고 특수뉴런회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기억의 흔적으로 이용된 회로를 흥분파가 쉽게 건널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기억은 더 깊게 시냅스에 고정되고 기억의 흔적으로 아로새겨져 회상하기 쉽게 된다. 일단 시냅스가 강화되면 훗날 광범위하게 입사되는 신호에 의해 다시 쉽게 흥분되므로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자꾸 사용하는 시냅스나 어렸을 때 반복자극받은 시냅스는 활성화되나, 쓰지 않는 회로나 시냅스는 가지도 없어지고 점차 변성되어 사라지게 된다. 즉 장기기억은 특수한 물질의 형태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두터워진 시냅스부에 흔적으로 아로새겨져 오랫동안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뇌는 자꾸 사용할수록 좋아지며 좋은 기억은 오랫동안 유지할 수도 있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뇌세포가 죽기 때문에 같은 정도의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 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 반복자극을 부여해 시냅스를 강화시켜 줌으로써 기억이 견고하게 유지되게 해야 한다.
인간의 생리기능은 30세가 지나면서 매년 약 1%씩 기능이 저하된다. 이중에서도 뇌신경세포의 노화는 빨리 시작되는 편이어서 대개 20세가 지나면서 매일 3만개 정도씩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뇌기능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다른 기능과 비교해 비교적 잘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20세를 100%로 할 때 50세 때의 뇌혈류량과 뇌중량은 약 80% 정도를 유지하나 폐기능 간기능 신장기능 및 심장기능은 더 많은 감소를 보여서 약 50-60% 정도의 효율밖에 내지 못한다. 90세에 가까운 고령 노인이 좋은 기억력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그 좋은 예다.
그러나 최근에는 뇌의 고등정신기능의 전반적 장애가 심하게 나타나는 질병이 인류를 괴롭히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병이 소위'노망(老妄)'으로 알려진 노인성치매(알츠하이머) 질환이다.
지난 해 TV 일일연속극에서 이 병에 걸린 노부부의 애틋한 이야기가 방영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치매란 기억력의 장애를 포함한 정신 및 인식기능의 전반적인 장애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증후군을 말하는데, 그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이중 약 50% 정도가 알츠하이머형 치매이고 20-30%는 중풍의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 나머지는 알코올성 치매, 파킨슨병 치매 등이 차지하고 있으며 약 15-20%는 알츠하이머형과 혈관성치매 양쪽을 모두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중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특별한 신체적 원인 없이 발생하며 노망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 예방과 치료가 아주 어려운 난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뇌는 자꾸 사용할수록 좋아진다
'알츠하이머병 '이란 이름은 이 병을 처음 보고한 독일인 의사 '알오이스 알츠하이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그는 기억장애, 인지기능장애를 포함한 뇌의 고등기능 전반이 와해 되어 사망한 51세의 중년여성에게서 처음으로 이 질환을 관찰하여 보고했다.
그뒤 1970년대 초에 2차대전 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여배우 리타 헤이워드가 이 병에 걸려 3년만에 침대에서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비참하게 사망한 이후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 병은 초기에는 경미한 기억력의 감퇴로 시작되나 조금 더 진행되면 집주소나 전화번호를 잊어버릴 뿐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할 정도로 뇌의 고등정신기능의 감퇴가 심하다. 옷을 입는 방법, 밥먹는 방법, 계단을 올라가는 방법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도 잊어버리기 때문에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하나하나 다시 가르쳐서 반복연습을 해야 한다.
조그마한 일에도 감정적으로 서운해하거나 흥분을 잘해서 주위사람들과 불화도 자주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도 환자자신들은 이런 행동에 대해 별반 의식이나 기억을 하지 못한다.
노인성 치매는 환자의 뇌조직을 현미경으로 검사함으로써만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환자의 뇌조직을 검사해보면 기억력과 고도의 정신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대뇌피질 부위와 해마를 포함한 변연피질 부위에서의 광범위한 뇌신경세포의 파괴와 소실을 볼 수 있다.
왜 이 부위에서 신경세포가 광범위하게 파괴될까. 이는 '베타아밀로이드'라는 잘 녹지 않는 작은 단백질 덩어리들이 많이 만들어져 신경세포에 축적되어 뇌신경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단백질이 신경세포에 독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조그마한 단백질은 신경세포가 정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긴 단백질의 일부가 잘려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었을 때는 긴 단백질에서 작은 단백질이 형성되지 않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작은 단백질이 잘려 조금씩 축적된다. 처음에는 그 양이 적어서 심각할 정도의 뇌기능 손상을 야기하지는 않지만 노인성치매에 걸리게 되면 작은 단백질이 대량 잘려 축적되어 광범위한 신경세포의 파괴가 오는 것이다.
그러면 긴 단백질에서 작은 단백질이 잘려 나오는 원인은 무엇일까. 아직은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어떤 단백질 분해호소가 이 과정에 개입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모종의 이유로 이 단백질분해효소가 활성화되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많이 생성되어 축적된다는 것이다. 젊었을때는 이 효소의 작용이 억제되고 반대로 긴 단백질을 파괴하는 대사효소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신경독 작용을 가지고 있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인성치매의 근원적인 예방을 위해서는 긴 단백질에서 작은 단백질이 잘려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은 긴 단백질 분자중에서 신경독 작용을 미치는 부분을 아예 유전자 차원에서 만들지 못하도록 억제시키는 것이다. 미래 의학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유전자 치료술'(gene theraphy)이 노인성치매 치료에도 기여하리라는 예상이다.
통계에 따르면 85세 이상이 되면 약 반수에서 노인성 치매환자가 발생한다고 추정되고 있어 노인성 치매 문제는 앞으로 21세기에는 인류가 당면할 최대의 보건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에서는 노인성 치매가 환자 4백만명 이상에 성인 사망률 4위를 점하고 있으며 65세 이상 노인환자의 약 10%가 이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91년도에는 유명 제약회사들이 연구개발비의 약 50% 정도인 37억달러(약 3조원)를 노화 연구에 투입했고 이중 약 50%가 인류 최대의 노화질환인 노인성치매 연구에 바쳐졌다. 지난 해에는 약 90억달러(약 7조원)의 막대한 의료비를 이 노인성치매 환자를 돌보는데 투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확한 역학조사결과는 없으나 대략 10만-20만명의 치매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남성은 공간지각 능력, 여성은 언어능력 뛰어나다는데…
남성은 논리적, 여성은 직관적이라는 통념은 사실일까. 마을 지도를 외우는 방법은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다를까.
남성과 여성은 사물을 인지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각기 다른 것일까. 그렇다면 이는 뇌의 발생과정에서의 호르몬의 영향에 의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이들 차이와 그 원인을 이해하면 뇌의 메커니즘을 아는 또하나의 단서가 될 것이다.
여성과 남성은 신체적 특징이나 생식기능이 다를 뿐아니라 사물을 지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이같은 차이가 성장 과정에서 남녀 각기 경험하는 갖가지 일의 차이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것이며 그 차이는 있더라도 아주 적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나 성호르몬이 생후 조기에 작용해 뇌 메커니즘의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최근 많은 연구결과에 의해 명백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출발점부터 이미 배선이 다른 남자아이의 뇌와 여자아이의 뇌 속에 그 뒤의 환경요인이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지적능력에 있어서의 성차의 대부분은 IQ 등 총체적 지적 수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능력의 종류에 따른 특정능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공간지각능력에서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성적이 좋고 특히 물체의 회전이나 이동을 머릿속에서 생각하며 풀지 않으면 안되는 과제에서 우수한 능력을 발휘한다. 또 수리적 추리시험이나 표적에 대한 운동기능시험 등의 일에서 여성보다 정확한 편이다.
반면 서로 관계있는 사항을 조합하는 문제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재빠르고 지각 속도가 빠른 경향을 보인다. 어떤 조건을 만족하는 단어를 발견해내는 능력을 포함, 언어의 풍부함, 유창함에서는 여성이 우수하다.
이같은 문제해결 능력에서의 성차는 사춘기를 지나지 않으면 확실해지지 않는다고 보고하는 연구자도 있으나, 캐나다의 웨스턴 온타리오대 심리학교수인 도린키무라는 표적 테스트에서 3세의 남자아이가 같은 나이의 여자아이보다 성적이 좋은 실험결과를 얻었다.
여성이 우수한 문제해결능력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각속도에 관한 테스트(적당한 조합을 순간적으로 보고 선택하는 테스트)에서 성적이 좋다. 가령 왼쪽의 그림과 똑같은 것은 어느 것인가를 찾아내는 경우 등이 그 예.
또한 여성은 물건들이 놓인 위치가 바뀐 여부를 잘 기억한다. 개념화 테스트에서는 피험자는 물체의 모양에 구애받지 않고 같은 색의 물체를 열거해야 한다.
언어의 유창도 테스트에서는 같은 글자로 시작되는 단어를 열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같은 테스트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성적이 좋다.
여성은 손동작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테스트에서도 성적이 좋다. 이는 펙보드테스트라 불리는데, 펙을 판위의 일정 구멍에 꽂는 손가락 협조운동 등이 시험된다.
여성은 사칙연산 테스트에서 남성보다 성적이 좋다.
남성이 우수한 문제해결능력
남성은 일종의 공간과제에서는 여성보다 성적이 좋다. 머릿속에서 무엇인가를 회전시켜 생각하거나 이동시켜 생각하는 테스트, 예를 들어 그림과 같이 3차원적인 벽돌로 된 물체가 회전하는 경우를 생각해본다.
또 색종이에 구멍을 뚫는 경우와 같이 한장의 종이를 접었을 때 가장 왼쪽의 그림처럼 어느 종이가 구멍이 맞을 것인가를 맞추는 테스트도 그 하나가 된다.
남성은 여성보다 표적을 노리는 운동기능이 정확하다. 가령 무엇을 표적으로 해 맞추거나 투사물을 유도하거나 포착하는 것을 잘 한다.
숨은그림찾기 등. 왼쪽의 단순한 그림이 매우 복잡한 그림 중에 숨겨져 있을 때 이를 찾아내는 테스트에서는 남성이 뛰어나다.
남성은 수리적 추리능력테스트에서 여성보다 우수하다.
낡은 참나무 두레박
그란드마 모제스(Grandma Moses, 1860-1961)의 이 풍경화에 있는 길을 여성과 남성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연구실에서 행해진 실험에서는 여성은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우물이나 교차점에 있는 나무 등 지형지물을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남성은 길 그 자체를 여성보다 빨리 기억하지만 지형지물은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남성의 경우 거리라든가 방향이라든가 하는 공간적인 단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