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에 발견된 슈메이커-레비 혜성은 태양에 접근하다가 목성에 포획된 특이한 혜성이다. 과연 이 혜성은 태양계 행성과의 충돌이라는 금세기 최고의 천체드라마를 연출할 것인가.
1993년 3월27일 세계천문연맹이 슈메이커-레비로 명명된 새로운 혜성이 발견되었다는 단신을 천문대로 보내왔지만 이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대 천문학의 뛰어난 관측 기술 덕택에 매년 수십개의 혜성이 발견되고 있으며, 슈메이커-레비도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이어 보내오는 소식들을 종합하면서 이 혜성이 평범한 혜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사진 관측 결과는 이 혜성이 17개 이상의 핵으로 구성된 특이한 혜성으로 판명되었으며, 내년 여름 이 혜성이 목성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계산 결과도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혜성이 정말로 목성과 충돌하게 된다면,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혜성이 행성과 충돌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 혜성의 충돌 장면 관측에 대한 세계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이 이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고, 우리도 이에 동참할 예정이다.
핵이 17개 이상인 혜성
유진 슈메이커와 카롤라인 슈메이커(여성) 및 데이비스 레비는 현대판 혜성 사냥꾼들이다. 이들은 미국 팔로마산천문대의 지름 46cm 슈미터 망원경을 이용하여 새로운 혜성이나 소행성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공동으로 발견한 혜성만 해도 11개가 되며, 레비 혼자서 발견한 혜성도 7개다.
올해 3월 25일, 카를라인 슈메이커는 전날 목성 주위를 찍은 사진에서 특이한 천체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 천체가 혜성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일반적인 혜성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 아리조나주 킷픽 천문대의 스코티에게 이 특이한 천체에 대한 정밀 사진 관측을 요청하였다. 스코티 박사가 킷픽의 91cm 우주관측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에는 최소한 5개 이상의 덩어리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는 혜성의 모습이 정확히 나타났다. 특이한 혜성을 하나 발견한 것이다. 스코티는 즉시 이 사실을 세계천문연맹에 통보하였으며, 세계천문연맹은 3월27일자로 이 혜성의 발견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전통에 따라 이 혜성의 이름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슈메이커-레비 혜성으로 명명되었다. 이 혜성의 다른 이름은 1993e이다. 이 이름에 포함된 1993은 발견된 연도를 나타내며, e는 근일점(태양으로부터 궤도상의 가장 가까운 위치)통과 시각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올해 발견된 혜성 중 5번째 근일점 통과 혜성이라는 뜻이다.
원래 혜성은 유명한 핼리혜성처럼 태양으로 가까이 끌려오다가 다시 태양으로부터 멀어지는 운동을 하는 것이 보통이나 슈메이커-레비 혜성은 태양에 가깝게 접근하다(92년 5월) 목성중력의 영향을 받아 마치 목성의 위성과 같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평범한 혜성은 하나의 핵과 길게 늘어진 꼬리로 구성돼 있다. 이에 반해 슈메이커-레비혜성은 현재 17개의 덩어리가 줄지어 늘어진 나열된 모습을 하고 있다. 원래 하나의 덩어리로 된 이 혜성이 과거에 어떤 이유에 의해 쪼개진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덩어리들은 모두 꼬리를 갖게 되었고 17개의 핵과 그들의 꼬리가 어울려진 모습은 마치 산등성이에 난 산불을 연상케 한다. 독자들은 이 글과 함께 실은 두 장의 사진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러면 이 혜성은 언제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쪼개졌을까? 두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소행성과의 충돌이다. 그러나 소행성과 충돌했을 경우 각각의 덩어리들이 지금과 같이 함께 모여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머지 하나는 목성의 조석력이다. 혜성이 목성에 지나치게 근접하게 되면 혜성의 내부와 외부에 작용하는 목성의 중력이 큰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 힘의 차이에 의해 혜성은 결국 여러 개의 덩어리로 쪼개진다.
그러면 혜성이 얼마나 가까이 목성에 접근해야만 쪼개질 수 있을까? 로시 한계라 불리는 이 한계 거리는 이론적으로는 15만km다. 즉 과거에 이 혜성이 목성으로부터 15만km거리 이내까지 접근했다는 이야기다.
이를 확인하려면 지금까지 관측한 슈메이커-레비의 위치 자료를 토대로 과거의 위치를 역산해봐야 한다. 실제 이 작업은 몇몇 천문학자들에 의해 이미 수행된 바 있다. 하버드대학의 마스덴 박사의 계산에 따르면 슈메이커-레비는 작년 5월16일 목성으로부터 약 1백만km까지 접근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값은 혜성이 목성의 조석력에 의해 파괴될 수 있는 거리인 15만km 보다 7배나 먼 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혜성이 쪼개진 이유는 무엇인가? 이 혜성의 발견자 중 한 사람인 레버의 주장에 따르면, 아마도 과거에 이 혜성이 목성에 지주 근접했고 그때마다 목성의 조석력에 의해 내부가 서서히 붕괴되었는데, 작년의 접근 때에는 약해진 상태에서 강한 조석력으로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슈메이커-레비의 운명
앞으로 이 혜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내년 여름 목성과 충돌하여 그 운명을 다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애석하게도 아직 확정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혜성 주위의 물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혜성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이탈물질의 양은 혜성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 양이 얼마나 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혜성의 운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축적된 경험과 이론으로 몇 달 동안의 혜성 궤도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는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로는 NASA(미국 국립항공우주국)의 유멘스 박사와 하버드대학의 마스덴 박사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유멘스가 계산한 슈메이커-레비 혜성의 미래 궤도 예측에 대해 우리 천문대에서 계산한 결과와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천문대의 신종섭 선임연구원이 계산한 이 혜성의 운동 궤도를 목성의 운동과 함께 그려보았다. 현재 처녀자리에 있는 이 혜성은 목성과 거의 3도 정도 떨어진 상태로 나란히 천칭(저울)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내년 3월까지 (그림)에서 왼쪽으로 나란히 움직이던 혜성과 목성이 방향을 역으로 돌려 움직인다. 실제 혜성이나 목성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지구와의 상대적인 운동에 의해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를 행성의 역행 운동이라 한다.
독자들은 내년 5월에 접어들면서 혜성의 움직임에 심상찮은 변화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혜성은 목성의 중력권으로 접어들면서 급속도로 목성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6월말 경에는 목성 지름 의 6배 거리까지 접근하게 된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아직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유멘스 박사의 계산 결과는 어떤가 그 이전에 다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혜성의 궤도 예측 이론이 아직 완전히 확립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학자들에 따라 예상 궤도의 계산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밝혀 둔다.
유멘스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혜성 슈메이커-레비는 현재 목성으로부터 약 5천만km 떨어져 있으며, 서서히 목성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내년 7월20일 오후 9시(한국시간), 이 혜성은 드디어 목성과 충돌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이 혜성은 목성 중심으로부터 3만4천 2백 25km까지 접근하게 되는데, 이 거리는 목성 반경의 49%에 불과하다. 따라서 목성과 충돌하게 된다. 충돌위치는 목성의 위도 45도 지역이며, 충돌 속도는 초속 60km다. 그리고 목성 적도에 83도 기울어져 충돌하며, 태양과 혜성과 목성이 이루는 각도는 64도다. 따라서 이 계산 결과에 따르면 충돌한다 해도 우리는 충돌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한다. 단지 혜성이 목성 뒤로 사라지는 장면만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유맨스의 계산이 정말로 정확하다면, 독자들은 충돌 시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망원경을 보유 하고 있다 해도 충돌이 낮에 일어나면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밤 9시면 미국과 유럽은 대낮이다. 그들이 아무리 좋은 망원경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대책이 없다. 물론 미국은 허블망원경이 우주공간에 있어 사진은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이때의 천문박명시간은 오후 9시40분 정도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관측하기에 썩 좋은 시간대는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월등하게 좋다. 그들은 한 낮의 밝은 하늘만 멀뚱 멀뚱 보고 있어야 한다. 월령은 어떤가. 이 날은 음력으로 4월12일이다. 밤 9시면 달이 남중하는 시각이므로 관측에는 좋지 않다.
천치신명께 빌고 싶다. 혜성슈메이커-레비가 한국시간으로 밤 12시 쯤에 목성과 충돌해 주기를. 그리고 충돌 날짜가 예상보다 15일 정도 지연되어 주기를. 왜냐하면 그때 쯤이면 음력으로 27일이 되므로 충돌할 때까지 달이 뜨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이 혜성을 관측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호주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허블우주망원경은 언제라도 관측이 가능하다.
내년은 천문대가 20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보현산에 1.8m 망원경이 설치돼 7월 경에는 시험관측도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슈메이커-레비가 보현산 시대의 막을 화려하게 여는 전야제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