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고기는 바다에서 살 수 없고 바닷물고기는 민물에서 살 수 없다. 그러나 뱀장어는 온갖 어려움을 딛고 민물에서 바다로 가는데, 이는 종족보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인 듯하다.
민물에서 사는 뱀장어는 알을 낳을 때는 바다로 간다. 이같은 산란의 특이함 때문에 뱀장어의 생태는 오랜 옛날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성장한 뱀장어가 강하구로 내려가고 후에 실뱀장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보고, 뱀장어가 성숙하여 강하구에 이르면 근처에 살던 뱀이 허물을 벗고 물로 들어가 뱀장어와 짝짓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뱀장어 산란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훗날 네덜란드의 슈미트 박사에 의해 이루어 졌다. 슈미트 박사는 1904년에서 1922년 사이 남북으로는 아이슬랜드에서 브라질 앞바다까지, 동서로는 멕시코 만에서 나일강 하구까지 북대서양 전역에 걸쳐 뱀장어 치어(稚魚)를 채집했다.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 왕실에서는 왕실 요트를 조사에 이용할 수 있게 하였고 북아메리카와 유럽을 왕래하는 상선들은 항해중 뱀장어 치어를 채집하여 제공하는 등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1922년까지 약 3천개 이상의 조사지점에서 채집된 뱀장어 치어의 크기 분포를 해도 위에 등고선 모양으로 연결하여 10㎜ 미만이 채집된 북위 22~30° 동경 48~65° 사이를 대서양 뱀장어의 산란장으로 추정 했다. 이 해역에서 산란 부화된 북아메리카산 뱀장어 치어는 6개월 정도 회유하여 북아메리카 강하구에 도달하고, 유럽산 뱀장어는 북대서양 해류를 따라 2년 반 정도 회유하여 유럽의 강하구에 도달하는 것으로 주정했다.
유럽산 뱀장어 성어의 경우 강하구를 떠난 이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6천~7천㎞를 어떻게 헤엄쳐 갈 수 있는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 진행중인 뱀장어 산란장 연구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일본에 분포하는 뱀장어의 산란장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일본 사람들은 뱀장어 요리를 상당히 좋아하여 7월말에는 우리나라 복날과 같이 뱀장어 요리를 즐기는 '우나기'(뱀장어)날이 있을 정도인지라 이 분야의 연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1968년 일본의 마추이 박사는 일본 오키나와 남북에서 채집된 뱀장어 치어 1개체와 대서양의 뱀장어 산란장 자료와 연관하여 타이완 동부에서 오키나와 남부가 뱀장어의 산란장일 것으로 보았다.
1973년에서 1975년 사이 일본 동경대 해양연구소는 뱀장어 산란장을 확인하기 위해 3차에 걸쳐 마추이가 제안한 오키나와 남부에서 각 한 달여씩 뱀장어 치어 채집 항해를 했다. 그러나, 이 조사 과정에서 크기가 50㎜ 이상인 치어만이 채집되어 산란장은 이보다 훨씬 남쪽의 열대 해역일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 1986년 동경대 해양연구소는 오키나와 남부에서 필리핀 동부해역까지 한달 반 동안 제4차 조사를 수행하며 길이가 40㎜ 보다 작은 치어를 채집하였다. 이 결과로 뱀장어의 산란장은 마추이가 제안한 오키나와 남부가 아니고 보다 남동쪽일 것으로 판단했다.
1991년 동경대 해양 연구소팀은 동경 1백30~1백55° 사이 북위 10~22° 사이, 즉 동서 2천5백㎞, 남북 1천2백㎞에 걸친 광대한 해역을 한달 반 동안 조사하여 북위 15°, 동경 1백40° 근해에서 크기가 10㎜ 보다 작고 부화된 지 2~3주일된 뱀장어치어를 수백마리 채집, 이 해역이 동북아시아산 뱀장어의 산란장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곳에서 산란부화된 뱀장어 치어는 북적도해류를 따라 서쪽으로 필리핀 동부해역까지 이동한 후 쿠루시오해류를 따라 북동쪽으로 회유하여 중국, 우리나라 및 일본의 강하구까지 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1975년부터 뱀장어의 생태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는데, 동경대 해양연구소의 1986년 제4차와 1991년 제5차 뱀장어 조사 항해에 참가하였다.
바다에서는 바둑판처럼 조사점을 정하고 'ᄅ'자로 향해하며 조사한다. 1°가 약 1백㎞ 이므로, 2° 간격으로 조사정점을 잡을 때 정점 사이는 2백㎞가 되며 이 사이를 향해하는 데에 약 8시간이 걸린다. 각 조사점에서는 입구가 3mx3m, 길이가 약 20m인 대형 치어그물을 수심 1백~2백m까지 2시간 동안 끌어 치어를 채집한다.
그러나 조사하는 광대한 바다 넓이에 비하면 그물을 통과한 물은 보잘 것 없는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넓은 호수에서 몇 두레박 물을 퍼서 그안에 있는 생물을 보고 호수에 사는 생물을 추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어려움 때문에 넓은 바다에 분포하는 어류의 생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뱀장어의 종류
여기서 본래 '긴물고기'란 뜻의 장어(長魚)에 대해 알아보자. 장어는 몸이 원통모양으로 긴 물고기의 통칭이다. 뱀장어, 붕장어, 갯장어, 곰치, 먹장어 등이 포함되는데, 이 가운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는 뱀장어, 붕장어 및 먹장어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얼핏보아 몸이 검고 원통상으로 길어 비슷하나 그 형태나 생태는 서로 상당히 다르다.
뱀장어는 피부에 점액질이 많고 모자이크 모양의 작은 비늘이 돋아 있다. 분류학적으로는 뱀장어과에 속하며 세계적으로 18종이 알려져 있고 열대해역과 인접 육지의 민물에 분포한다.
뱀장어는 영양가가 높고 맛이 좋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어류로, 주요 민물 양식종의 하나다. 우리나라에는 뱀장어와 무태장어가 서식한다. 무태장어는 인도 태평양 열대해역과 주변 민물에 살며, 제주도 천지연 폭포가 그 분포의 북방 한계선이다. 우리나라에서 무태장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붕장어는 일본명 '아나고'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회맛이 좋고 어획량도 많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어류 가운데 하나다. 붕장어는 바다에만 살며 연안의 갯벌이 많은 곳이나 돌 틈에서 자란다. 한반도 주변에 분포하는 붕장어는 성숙하면 동중국해의 대륙붕 가장자리로 회유하여 산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산란장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먹장어는 일반 어류와는 달리 꼬리지느러미를 제외한 다른 지느러미는 없으며, 턱이 없어 입이 흡반 모양이다. 먹장어는 분류학 적으로는 턱이 없는 무악구류(無顎口類)에 속한다. 무악구류는 4억년전 고생대의 오오도비스기에 지구상에 출현한 초기 어류로 대부분 고생대에 멸종하였으나 먹장어를 포함한 몇 종이 살아남은 특이한 어류다. 먹장어는 '꼼장어'라고 불리며 포장마차에서 일반인들이 즐겨 찾는다.
뱀장어가 민물에서 자라는 동안 등은 연한 갈색, 배는 노란색을 띠어 영어로는 노란뱀 장어(yellow eel)라 부른다. 민물에서 5~10년 자란 뱀장어는 생식소가 성숙하기 시작하면 강물을 따라 바다로 내려간다. 이때는 배 쪽이 은백색을 띠어 은뱀장어(silver eel) 라고도 부른다. 연어류는 알을 낳기 위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오기 때문에 강을 오른다는 뜻의 소하성(遡河性) 어류라 하며, 뱀장어류는 반대로 알을 낳기 위하여 바다로 내려가기 때문에 강하성(降河性) 어류라 한다.
뱀장어의 일생
바다로 들어간 뱀장어는 먹이를 먹지 않고 산란장까지 회유하여 산란한 뒤 죽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아직 자연상태에서 성숙한 뱀장어나 알이 한 개체도 채집되지 않아 산란 생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뱀장어의 치어는 어미와는 달리 몸이 투명하며 그 모양이 대나뭇잎과 같아 댓잎뱀장어(Leptocephalus)라 불린다. 댓잎뱀장어는 해류를 따라 회유하여 대륙사면에 이르면 몸 길이와 무게가 줄며 몸 모양이 원통형으로 바뀐다. 이 때에도 몸이 투명하다. 영어권에서는 유리와 같이 투명하다하여 유리 뱀장어 (glass eel)라 부른다.
유리 뱀장어는 대륙붕을 회유하여 강하구에 이르는데, 댓잎뱀장어가 변태하기 시작하여 강하구에 이르는 동안 먹이를 먹지 않는다. 유리 뱀장어가 강하구에 이르면 피부에 검은 색소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때를 실뱀장어라 부르며 뱀장어 양식을 하려면 강으로 올라오는 이들을 잡아 기르면 된다.
최근 강물의 오염으로 실뱀장어가 감소, 인공 산란을 통하여 실뱀장어를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다. 인공산란과 수정, 부화까지는 성공했으나, 먹이를 주어 치어를 키우지는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산란장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 주어야 하나 아직 자연 상태의 정확한 산란 환경을 모르기 때문이다.
바다에 비해 적이 적은 민물에 적응
민물고기는 바닷물에서 살 수 없고, 바닷 물고기도 민물에서 살 수 없다. 바닷물고기는 바다의 짠물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제거시킬 수 있는 염세포가 발달하여 바닷물에서 살 수 있고, 민물고기는 몸속으로 계속 들어오는 물을 걸러낼 수 있는 신장이 발달 되어 있다. 바닷물과 민물을 왕복하며 사는 뱀장어나 연어와 같은 물고기는 민물에 살 때는 신장이 발달하고 바다로 갈 때가 되면 신장의 기능은 약해지고 염세포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이러한 생리적 기능의 변화는 어떤 물고기나 가능한 것은 아니며 뱀장어류나 연어류도 일생에 두번밖에 가능하지 않다.
민물에 살던 뱀장어가 산란을 위해 바다로 갈 때가 되면 몸에 지방이 축적되고 가슴지느러미와 눈이 상당히 커진다. 몸에 지방을 축적하는 것은 산란장까지 먼 거리를 먹지 않고 가기 위하여 에너지를 모으기 때문으로 볼 수 있고 가슴지느러미가 커지는 것도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과 연관된 것으로 판단 된다. 일반적으로 밝은 곳에 사는 동물은 눈이 작고 어두운 곳에 사는 동물은 큰데, 산란 회유를 하는 뱀장어의 눈이 커지는 것도 어둡고 깊은 물 속에서 살기 위한 적응으로 보인다.
그러면 뱀장어는 왜 이토록 생리적으로 어려운 변화를 겪으면서까지 민물과 바다를 왕복하는 쪽으로 진화했을까? 바다로 산란회유를 떠나는 뱀장어의 형태는 원양의 중층에 사는 어류와 유사하다. 뱀장어는 원래 원양의 중층에 살았던 어류로, 진화 적응과정 중에 바다에 비하여 적이 적은 민물로 들어와 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바다에서 자라고 민물에서 산란하는 연어류는 한 어미가 수천 개밖에 알을 낳지 않는데 비하여, 뱀장어는 인공산란 결과 수천만개의 알을 낳는 것으로 밝혀졌다. 바다에는 적이 많아 헤엄을 잘 치지 못하는 알이나 어린 치어는 쉽게 적에게 잡혀 먹힌다. 치어기가 긴 뱀장어는 이를 보상하기 위하여 많은 수의 알을 낳는 것으로 보인다.
뱀장어는 어떻게 아무 표시는 없는 넓은 바다에서 산란장까지 먼 거리를 헤엄쳐 갈까? 아직 정확한 방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학자들은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먼거리를 이동하는 철새가 정확하게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지자기를 이용한 것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동물들이 지진이 나기 2~3일 전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러 실험의 결과 물고기 가운데 뱀장어는 이 능력이 특히 탁월한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