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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레시아는 꽃잎 한 장의 지름이 30㎝, 몸통과 반대편 꽃잎 끝까지의 지름은 90㎝가 넘으며, 무게는 9㎏이나 된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남해안에 위치한 벵쿨루지방은 라플레시아의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1818년 영국의 라플레(Raffles) 부부와 조셉 아놀드 박사(Joseph Arnold)가 여기에서 이 꽃을 발견한 후 많은 식물학자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이 꽃에 관해 학술적으로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최근 자연이 훼손되면서 이 꽃의 수가 해마다 줄어든다는 바룬(Bahrun, 인도네시아 자연보호국 주재원)씨의 말을 듣고 보니 안타깝기만 하다.
 

활짝 핀 라플레시아.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24시간을 보티지 못한다.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꽃

내가 아내와 함께 이 꽃을 찾아나선 것은 지난 해 12월28일이었다. 이 때가 바로 라플레시아의 개화기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쯤 수마트라섬 남부로 가면 벵쿨루에 내리게 된다. 벵쿨루를 상징하는 꽃이 라플레시아인 것은 이 꽃의 사진이 곳곳에 걸려 있고 공원의 조화(造花)가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벵쿨루에서 동북쪽으로 바리산 산맥을 타고 60㎞쯤 가면 고원에 자리한 소도시 케파히앙이 나온다. 거기서 5~6㎞쯤 더 가면 파칼구릉에 닿는다. 이 산밑 작은 마을에 자연보호국의 주재소가 있는데, 거기에 바룬씨가 살면서 라플레시아를 보호 감시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바룬씨의 안내로 라플레시아를 찾아 등산을 하게 된다. 마을을 빠져나와 바나나밭과 커피밭을 통과하면 폭 40~50m의 큰 강을 만난다. 그 강을 건너 가파른 커피밭을 꿰뚫고 한참동안 오른다. 비가 내리면 다소 더위가 가시지만 비가 그치면 이내 30℃를 넘는 폭염이 지속된다.

등산로는 10리가 채 안되나 길이 험해 약 1시간쯤 소요된다. 정글 초입에는 대나무숲이 있고 그 뒤에는 모두 열대식물이 우거져서 진귀한 열대식물원 속을 지나가는 기분이다.

고개를 넘어 물이 흐르는 계곡 비탈진 곳, 사람이 발을 붙이기가 어려운 곳에 라플레시아가 자라고 있었다. 큰 양배추같은 몽우리 하나와 그보다 작은 것 하나, 그 외에 아주 작은 것들 4~5개가 검은 보자기에 싸인 모습으로 있었다.

2주일쯤 지나야 꽃이 필 것이라는 안내자의 말에 그때까지 머물 수 없는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운이 좋아야 이 꽃을 볼 수 있다는 현지 주민들의 말에 수긍이 갔다.

꽃이 피는 시기를 알아둔 만큼 그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나는 3주일만인 지난 1월21일 다시 벵쿨루에 갔다. 오후 2시 비행기에서 내리는 즉시 서둘러 산으로 향했다. 운이 좋게도 라플레시아는 첫째 꽃잎 하나를 막 피워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운좋은 부부임이 입증된 셈이다.

이 꽃이 피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데다 스티로폴같은 두터운 꽃잎이 필 때는 와삭와삭 소리가 날 정도다. 꽃잎 한 장의 지름이 30㎝, 몸통과 반대편 꽃잎 끝까지의 지름은 90㎝가 넘는다. 무게는 9kg이나 된다.
 

껍질에 싸여 있는 라플레시아. 피기 직전의 모습이다.
 

개화 후 썩으며 악취 풍겨

보르네오섬을 제외한 타지역에 자라는 10종의 라플레시아 중에서 이 지방의 것이 제일 크다. '식물 최대의 경이(驚異)'라고 불리는 이 꽃은 큰 것만이 아니라 신기하며 희소한 데 매력이 있다.

뿌리는 물론 가지나 줄기도 없으며 아무런 녹색광합성 조직이 전혀 없다. 열대우림 속 낙엽에 뒤덮인 포도과의 야생 덩굴이나 큰 나무에 뻗어올라가는 덩굴 식물의 낮은 줄기 부분에 달랑 올라 앉아 꽃을 피운다.

동물의 발이나 곤충에 의해 전파되는 씨는 어떤 덩굴에 박힐 때 비로소 싹을 틔우는데, 덩굴 속에 있는 기간이 1년내지 1년반이나 된다. 씨앗에 배꼽같은 자리가 생기면 밖으로 성장해 7~9개월만에 꽃을 피운다.

한번 핀 꽃은 24시간도 채 싱싱하게 버티지 못한다. 꽃잎은 피어나면서 땅을 향해 젖혀지고 전체에 걸친 우유빛 반점이 퇴색, 적갈색으로 변하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 한다. 이때 파리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데, 파리들은 꽃속을 드나들며 수분(授粉)을 도와준다.

꽃은 핀 지 3~4일쯤 지나면 전체가 검게 변하면서 죽은 시체같이 돼버린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이 꽃을 '송장꽃'(corpse flower) 또는 악취나는 '송장백합'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말로는 '분가 파트마'(Bunga Patma)라고 하는데, 분가는 꽃이라는 뜻이며 파트마는 다산(多產)이라는 뜻이다. 한 꽃에서 수천 개의 씨가 나온다고 해서 유래 된 것이다.

당일 꽃을 발견한 기쁨에 어쩔 줄 모르는 사이 어느 새 땅거미가 지며 비가 내리기 시작해 다음 날 다시 오기로 하고 일단 산을 내려왔다. 그러나 이튿날도 종일 비가 내려 호텔에서 하루를 꼬박 그냥 보내고 다음 날 다시 그 꽃을 찾았다. 라플레시아는 활짝 핀 채 우리를 맞이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꽃을 보기 위해 애썼던가! 그 꽃과의 만남은 최대의 기쁨이었다.

내게는 아직도 보고 싶은 꽃들이 많이 있다. 그 꽃들과 쉽게 만나지 못하는 것은 자연이 점차 훼손돼 지구상의 희귀식물이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자연을 보호해 우리가 봤던 꽃들을 후손들도 두고두고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라플레시아는 개화 후 적갈색으로 변하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이때 파리들이 몰려 든다.
 

199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임운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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