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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리 못듣는 인간의 삶 상상할 수 없다"

지난 3월 한국조류협회는 국내에서 이미 멸종된 것으로 추정한 백두산의 텃새 호사비오리를 강원도 철원 민통선에서 발견, 아직도 그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호사비오리'를 보았거나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새는 국내 발행 조류도감은 물론 일본이 발간한 조류도감에도 그림으로만 소개돼 있을 만큼 희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희귀조가 지난 3월 한국조류보호협회(회장 김성만)에 의해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민통선에서 발견됐다.
"1927년 서울에서 한 마리가 발견된 이후 66년만에 처음 나타났습니다."

68년만에 출현한 호사비오리

한국조류보호협회 김성만 회장(47)은 김종식 철원지회장과 함께 이 새를 10여일간의 잠복 끝에 6백㎜ 망원렌즈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호사비오리는 백두산의 텃새로 조선조 말기까지만 해도 북한강 등에 10여마리씩 나타나는 겨울 철새였으나, 그 뒤 모습을 감춰 백두산 천지와 마양저수지 등에만 1백마리 안팎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에 나타난 호사비오리는 수놈 한마리가 암놈 두 마리를 거느리고 냇가에서 정겹게 노닐고 있었다. 이 사진을 본 조류전문가 우한정 박사(한국자연보존협회 사무총장)는 그 자리에서 즉시 호사비오리임을 확인했다.

"평생 조류를 연구해 왔지만 호사비오리를 사진으로나마 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새는 학계에서 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할 만큼 세계적으로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주로 깨끗한 계곡물에 서식하는데 인적이 드문 민통선의 맑은 물에서 겨울을 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호사비오리는 흰비오리 비오리 바다비오리와 함께 오리과 오리속에 속하는 새로 전체 모양이 바다비오리와 비슷하나 가슴이 붉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머리 뒷부분에 깃털이 달린 이 새는 수놈이 더 크고 머리가 검은데, 암놈 머리는 갈색이다.

호사비오리는 지난 90년 국제자연보호연합(IUCN)이 멸종위기에 있는 동물을 지정하는 적색목록에 올랐지만 국내에서는 이미 멸종된 것으로 추정, 아예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돼 있지 않다. 이번에 호사비오리가 발견된 지역은 매년 겨울마다 두루미와 재두루미 3백여 마리가 날아와 월동하는 철새도래지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 돼 새들이 서식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김성만 회장은 이 새의 보호문제에 대해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돼 있고 관할 군부대와 철원군이 보호운동을 펴기로 약속해 다행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이번에 개가를 올린 기쁨을 아직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짝 잃고 죽어가던 두루미 되살려
 

부상당했거나 중금속에 오염된 새를 치료하는 것도 이들이 하는 일이다.


한국조류보호협회는 또 지난 1월 굶어서 실신한 두루미를 45일 동안 치료한 후 북쪽 하늘에 날려 보내준 일을 지금도 들뜬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난 80년 협회를 만든 후 지금까지 새와 함께 지내온 가운데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김성만 회장은 지난 해 12월 철원 민통선의 군 수색대로부터 두루미 암놈 한마리를 데려다 극진히 보살폈다. 이 두루미는 사병 두명에 의해 발견됐다.

"40~50마리가 며칠을 군부대 인근에서 지내던 어느 날 다른 두루미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날아갈 때 혼자 남아 있는 것을 군인들이 발견한 것입니다."

이 두루미는 죽은 수놈 옆에서 5일간이나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남편 새의 시신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현지 부대로부터 연락을 받은 김성만 회장은 이 두루미를 데려다 미꾸라지와 닭사료를 먹이며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45일이 지나자 이 두루미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해 하늘을 날 수 있었다.

"1월17일 관광버스 5대를 대절해 회원들 2백50여명과 함께 그 두루미가 애초 발견됐던 민통선에 데리고 가서 날려 보냈습니다. 남편 새를 땅에 묻어주고 간단한 송사(送離)를 낭독한 다음 상자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때 그 순간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두루미는 문이 열리자마자 밖으로 나오면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김회장의 손목을 세 번 콕콕 부리로 찍어댄 다음 날아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늘로 떠오른 두루미는 그냥 날아가지 않고 한국조류보호협회 회원들이 모여 있는 하늘을 크게 한 바퀴 돈다음 북쪽으로 날아갔다.

"발목에 표식을 달아 주었는데, 올 겨울에 다시 날아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도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 새의 죽음을 슬퍼하던 모습과 우리 곁을 떠날 때 보여 주었던 모습은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루미는 일부 일처제로 과부새의 경우 수절한다고 하는데, 다음에 다시 올 때 과연 혼자 올 것인지 아니면 새 짝과 함께 나타날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성만 회장은 이처럼 늘 새와 함께 지내는게 평소의 일과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10년이 넘게 이 일을 계속해 왔다. 한국조류보호협회는 우선 이러한 김회장의 열정에 힘입어 오늘까지 명맥을 유지하며 발전해 왔다.

이 모임은 지난 80년 1월 현 김성만 회장을 주축으로 해서 창립 됐다. 당시는 불과 몇 사람이 모여 새들을 찾아다니며 보호하고 연구 했지만 지금은 정회원만도 7백명, 일반 탐조회원은 2만5천명 정도로 늘어났다.

김회장이 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청소년시절부터라고 한다. 딱 부러지게 그렇게 된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생김새가 예쁘고 목소리가 고와 새들을 좋아하게 됐다. 틈이 나면 새들을 찾아나서곤 했던 그의 새에 대한 정열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식을 줄 몰랐다.

"지난 78년 '자연보호헌장'이 제정선포됐을 때 나는 새 사랑을 통해 자연보호와 나라사랑을 실천 하기로 했습니다. 80년 협회를 만들때 회원들이 얼마나 모일까 싶었지만 뜻밖에도 아무 욕심없이 새를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더군요."
 

새들의 보금자리도 다양해 목탁 구멍에까지 둥지를 트는 경우(사진은 딱새의 모습)도 있다.
 

새 울지 않는 자연에서 사람 살 수 없다

한국조류보호협회는 모임의 명칭으로 미루어선 정부기관 산하단체나 공공단체 같기도 하지만 새를 사랑하고 탐조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운영하는 순순한 민간단체다. 탐조는 주로 겨울철에 2~3회씩 나가는데, 지금까지 34회를 기록했다.

회원들은 협회가 주관하는 탐조회가 아니더라도 끼리끼리 어울려 주말이면 쌍안경 카메라 도시락 등을 싸들고 산으로 강으로 텃새나 철새를 찾아 나선다. 온 가족이 함께 자연의 품에 안겨 맑은 공기를 마시고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모임은 회원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스스로 새를 찾아보며 자연을 즐기는 것만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회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자연보호가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데 주력한다.

"새가 울지 않는 자연에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김회장을 중심으로 협회가 벌여 온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기본적인 탐조회 외에 관악산 남산 도봉산 용문산 안산 등지에 50여 차례에 걸쳐 5천여 개의 인공새집을 달아주었다. 또 겨울철이면 한강 강화도 을숙도 주남저수지 철원 등지에 옥수수 밀 생선찌꺼기 쇠기름 등 야생조수들의 먹이를 뿌려주고 20여 차례에 걸쳐 등산로에서 '산불조심'리본을 5만장, 쓰레기수거용 비닐봉지를 10만장이나 나눠주기도 했다.

밀렵꾼의 총질이나 농약중독 등으로 죽어가던 새도 많이 구해냈다. 그동안 현지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달려가 병들거나 다친 새를 인수해다 구해낸게 1백50여마리 쯤 되는데, 이중에는 서울 대공원에 넘겨진 희귀조류도 적지 않다.

"요즘엔 이틀이 멀다하고 약물에 중독됐거나 돌팔매질 등으로 다친 새를 고쳐달라는 전화가 걸려 옵니다. 이는 인간이 그만큼 포악해졌다기보다 신고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다는 뜻입니다."

한방의료기사였던 김회장은 이제 생업을 걷어치우고 새를 보호하는 일에만 매달려 산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더구나 돈이 생기긴 커녕 오히려 적잖게 써야 하는 처지인 데도 새를 보호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전력투구한다.

옹색한 재정형편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지난 1월 보험대리점을 협회에 개설했다. 안국화재보험 조류보호대리점이 그것이다.

한국조류보호협회는 요즘 '1사1조운동'(一社一鳥運動)을 전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대기업들이 회사의 이미지에 걸맞는 새를 사조(社鳥)로 정해 회사를 알리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이미 삼성전자(크낙새) 동아생명(파랑새) 한국화장품(두루미) 두산식품(종달새) 럭키금성(원앙) 등이 이 운동에 참여하는 등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환경파괴에 얼마간 책임을 느껴야 하는 기업들이 이같은 조류 보호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 여간 큰힘이 돼주는 게 아닙니다."
김성만 회장은 개개인의 자연보호도 좋지만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자연보호에 앞장선다면 보다 빨리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암수가 서로 떨어지지 아니하며 사이가 좋으므로 예부터 부부의 애정에 비유하는 원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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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 김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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