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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연구원 유전공학연구소 이대실 박사

오늘의 한국인 과학자

오늘의 한국인 과학자, 그들은 누구인가. '생명공학'을 통해 내일의 한국을 여는 일에 몰두하는 KIST 유전공학연구소 이대실 박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들어본다.

대전에서 약 15분, 오는 8월의 개막을 앞둔 EXPO 전시관들을 오른편으로 두고 띄엄띄엄 각종 건물들이 들어선 대덕연구단지가 나온다. 제각기 사계에서 '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모였다는, 명실공히 '한국 과학기술의 메카'가 이곳이다. 이중 한 건물, 유전공학연구소 내에 이대실(李大實. 54) 박사의 분자 생물학 연구실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웃는 인상인 동안(童顏)의 이박사는 부인과 두 딸을 1년간 캐나다에 보내고 요즘은 '홀아비' 생활을 하는 터라 사람이 반갑다며 웃는다. 질문 한마디를 꺼내면 일사천리로 대답이 나오는 달변이다.

이대실 박사는 지난 85년부터 유전공학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이곳을 일구다시피 한 '실세'다. 현재 그가 실장으로 있는 분자생물학 연구실을 만들어 연구 성과들을 내놓고 있고 유전공학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그간 눈에 보이는 많은 업적을 이룬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국내에 유전공학이란 학문을 정착시켰다는 사실 자체를 평가받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유전공학은 부가가치가 큰 연구분야일 뿐 아니라 과학기술경쟁시대인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생존여부를 가름하는 관건이 되는 학문입니다. 최근 세계 각국이 장기계획을 세우고 연구에 매달리는 '게놈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체 게놈의 지도를 작성하고 염색체가 지니고 있는 화학암호를 완전히 풀어낸다는 이 야심적인 계획이 완성만 된다면 각종 질병 치료에서부터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간개조까지 가능해집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조물주'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그때 유전공학 기술은 그 어떤 무기보다 가공할 힘을 가지게 될 겁니다."
 

국내에 '유전공학'이라는 학문을 정착시켰다는 점을 평가받고 싶다는 이대실 박사
 

국내에 유전공학 정착시킨 장본인

'게놈'이란 인간 염색체의 일부인 DNA에 들어 있는 유전자의 집합체. 한 인간을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 게놈의 암호를 풀기 위해 지난 88년 세계 20여개국의 과학자들은 'HUGO'(Human Genome Organization)라는 인간 게놈기구를 결성, 15년후의 완성을 목표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대실 박사를 비롯, 고려대 농화학과의 이세영 교수, KIST 생명공학과의 강창원 교수 등이 개인 단위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은 지난 90년 4월 13일 국내 연구자의 모임인 한국인체유전자연구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게놈 연구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 연구성과에 특허를 신청할 예정이어서 정보 독점의 우려를 낳고 있다고 한다.

"사람의 DNA는 약 30억개가 넘는 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DNA가 두가닥으로 꼬여 있으므로 두배를 하면 60억개가 됩니다. 학계에서는 하나의 염기를 해독하는데 1달러가 든다고 가정하고 있는데, 결국 DNA 전체의 암호를 푸는 데는 모두 60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됩니다. 미국의 경우 이 프로젝트에 30억 달러를 할당하고 있는데, 여기에 특허를 걸 경우 엄청난 '무기'가 될 겁니다. 현재 우리 학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이중 적어도 1%의 비용, 즉 6천만 달러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나머지 99%는 다른 나라의 연구 성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1%의 투자를 한다면 그 내용은 한국인이 독특하게 지니고 있는 유전자에 대한 연구에 바쳐지는 게 좋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사과정까지는 화학 전공

이대실 박사는 당초 유전공학 전공자는 아니었다. 연세대 화학과와 대학원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맥길대에서 탄수화물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도 그는 화학을 다루고 있었다. 그의 인생의 전기는 그 뒤 MIT로 옮겨 3년 동안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부터. DNA 합성에 성공함으로써 유전자 암호 해독에 기여한 공로로 196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고빈드 코라나(Gobind Khorana) 석좌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가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국민학생에게 하듯 자상하게 지도하는 코라나 교수 밑에서 유전공학이란 학문에 눈을 떴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깁니다만 저는 한국에서는 생물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곤충채집이나 식물채집, 뭐 그런 게 다인 줄 알았죠. 사실 움직이는 것을 만지기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했고요. 유전자를 합성하는 실험을 하면서 생물학이 심오하고 체계적인 고급학문이란 것을 처음 알았지요"

그 연구실에 들어가기까지는 몇가지 우연도 작용했겠지만 그만큼 그가 인정받는 연구원이었다는 말도 될 것이다. 박사과정에서 연구한 탄수화물의 응용분야가 핵산이었고 MIT 연구실에서는 바로 이 핵산을 연구 했다. 그곳에서 그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DNA를 합성하고 유전공학적 실험을 하다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유전공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후회할 뻔 했습니다. 게다가 '어떤 어떤 학문이 붐이다'라고 할 때, 그때부터 시작하면 늦는 것 아닙니까. 공부를 끝내고 나니까 사방에서 오라는 요청이 쇄도하더군요"

많은 요청을 뿌리치고 그가 택한 길은 KIST의 유치과학자로 고국에 돌아오는 쪽. 그가 귀국했던 무렵만 해도 '유전공학'이란 학문은 척박한 토양에 겨우 싹을 틔운 정도 였다.

이같은 환경에서 그의 연구팀이 처음 매달린 것은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인슐린을 합성하는 기술. 이 프로젝트는 8년간의 연구 끝에 성공, 지난 93년 2월 종근당과 계약을 체결했다. 우리나라 유전공학 분야의 국책사업으로서 기업에 로열티를 받고 연구결과를 넘긴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인슐린 합성은 사실 선진각국은 이미 다 끝낸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하는 우리로서는 '모방' 단계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생스러웠던 점은 미국이나 덴마크에서 수백명의 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이 프로젝트를 우리는 3~4명의 연구원이 해내야 했다는 점입니다."

올해 10회째를 맞는 유전공학 워크숍도 국내 유전공학 연구계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또 유전자를 배양하는 효소를 자체개발해 국내에 무료로 보급한 것도 그의 연구진의 업적이다.

"사람의 피 한 방울, 머리카락 하나에도 유전자는 있고 그 안에는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지요. 이 유전자를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으로 증폭시켜야 범죄수사나 병원실험 등에 쓸 수 있는데, 이 증폭에 쓰이는 효소가 '서모스테이블'(thermostable)입니다. 이 효소 1백㎎이면 시장가격으로 10억원 어치는 됩니다. 우리는 이 효소를 개발, 지난 2년간 수차례에 걸쳐 국내에 무상공급했습니다."

그간 공급한 효소의 양이 시장가격으로 따져 20억원 어치는 족히 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박사는 그것만으로도 그동안 정부에서 받은 연구비는 사회에 환원했다고 자부한다.
 

실험실에서. 박사과정까지 화학을 전공한 그는 MIT 연구실에서 핵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유전공학과 만나게 됐다.
 

'사람'과 '투자'의 부족으로 어려움 겪어

그러나 과학자의 길이 그리 화려하거나 속세를 초월한 것만은 아니다. 이대실 박사의 경우도 여러 애로점을 피력했는데, 그가 말하는 '과학하는 어려움'은 크게 사람의 문제와 정부정책의 문제로 대별할 수 있다.

"우선 과학전문가가 너무 적고 전문가 집단이 빈약하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MIT에 있을 때 가장 부러웠던 점이 바로 한 연구소에 4백명이나 되는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입니다. 개인 하나하나는 우리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수준이라 해도 집단으로 모이면 원자폭탄도 만들고 우주선도 만드는 힘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계는 바야흐로 '무형의 재산'으로 승부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과학기술을 떠받쳐줘야 하는 정부나 기업 등의 투자와 정책적 배려가 미진 하다는 점. 여기에는 투자뿐 아니라 과학행정과 제도, 그리고 근본적 인식의 문제도 포함된다.

"MIT 부설 연구소들을 운영하는데 당시 예산으로 5만 달러가 책정돼 있었습니다. 일개 대학의 연구소에 대한 투자가 그 정도지요. 하버드대를 합쳐 우리 돈으로 1조원이 투여되는 것을 보고 많이 부러워했었습니다. 반면 우리의 경우 과기처가 설정한 올해 예산이 통틀어 1천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연구실에도 연구원들이 있지만 그분들에게 참 미안합니다. 거의가 독신이거나 결혼했을 경우는 생활 유지가 안돼 중도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곤 합니다."

그나마 지난 해부터는 연구비 중 인건비의 할당률을 지키라는 지침이 내려와 연구원 중 일부를 쫓아내야만 할 지경이다. 어찌어찌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지만 이런 경우를 그는 '관료주의적 행정의 대표적 케이스'라고 지적한다.

그의 아침은 운동과 함께 시작한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국민학교 때부터 '더도 덜도 아니고 어떤 경기건 학급 대표는 도맡아할 정도'로 좋아했던 운동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제는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고 한다. 40대에 들어서니 체력도 성취에 큰 몫을 하더라는 설명이다. 테니스 조깅 골프 등이 그가 즐기는 운동.

연구소에 출근하는 시각은 매일 8시 30분경. 책상을 마주하면 제일 먼저 그날 할 일을 쭉 적어본다. 날이 갈수록 처리해야 할 보고서나 논문, 원고가 많아져 아예 컴퓨터를 실험실에 옮겨다 놓았다. '그래야 시험관 한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게 이유다.

연구원들의 연구상황을 점검해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중 하나다. 10여명의 연구원들 중에는 박사과정생이 6명 포함돼 있는데, 누구보다 많은 박사과정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그의 자랑이기도 하다. 이들과 함께 매주 한사람씩 각자 진행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미팅을 가지며 매주 목요일에는 '저널 클럽'을 열어 외국에서 최근 나온 논문 등을 뽑아 토론하곤 한다.

'게놈'이 목표, '탄수화물공학'은 수단

이대실 박사는 현재 진행중인 게놈 연구와 더불어 또하나의 포부를 가지고 있다. 박사 과정까지 자신의 전공이었던 탄수화물 화학을 유전공학과 결합시키는 새 분야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그는 이 학문을 '탄수화물 공학'이라 부르는데, 탄수화물에 관한 연구는 유전공학과 생물, 생화학 전반에 걸친 고른 지식이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인 데다가 아직 미개척 상태라 국제 경쟁에서도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지구상의 천연생물자원의 80%가 탄수화물이지만 그 비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최근 유럽과 일본 등에서 주목하기 시작한 정도지요. 만일 탄수화물에 숨은 암호를 풀어낼 수 있다면 그것과 게놈과의 관계도 밝혀낼 수 있고 그 자체가 게놈 연구에 일조하게 될 겁니다."

말하자면 게놈이 '목표'라면 탄수화물 공학은 목표에 이르기 위한 '방법론'이 되는 셈이다. 생명과학은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 화학 물리 로봇 전산 의학 약학 미생물학 등 모든 학문이 참여해야 가능하며, 그 진행과정에서 다른 과학 분야가 함께 발전하는 것이라는 그의 설명과도 연관 되는 대목이다.

"인체게놈 연구와 생명과학 연구는 그 자체가 21세기를 향한 내실있는 준비이고 자세"라고 강조하는 그는 누구보다 선두에 서서 한국의 21세기를 준비하는 첨병인 듯 했다.
 

DNA합성기 앞에서 연구에 몰두하는 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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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지재만 기자
  • 서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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