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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시오해류에서 갈라진 쓰시마난류는 남해를 돌아 동해로 향하면서 우리나라 근해의 풍부한 수산자원을 형성시킨다.

지난 1월 26일부터 엿새 동안 진행된 대한해협 해양자원도 조사는 전국과학교사 자연생태계 탐사로는 처음 시도되는 해양탐사였다. 이제까지 해양조사는 해양연구소나 대학 연구팀의 전유물로 인식돼 아마추어들이 참여하기 어려웠다.

이번 조사의 내용은 대한해협의 해양자원도를 만드는 작업의 일부였다. 부산 앞바다에서 시모노세키 근해까지 일직선으로 20개의 정점을 설정하고 각 정점별로 해역의 물리 화학 생물적인 특성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해양연구소는 지난해 봄 이 해역을 조사한 데 이어 두번째로 조사한다고 했다. 앞으로 여름에 한번 더 이 해역을 조사하면 남해안의 계절별 해양자원도가 완성된다.

전국과학교사 자연생태계 탐사가 11회 진행되는 동안 교사들은 이제까지 지도교수의 인솔하에 탐사에 참여해왔는데 이번 탐사의 경우 한국해양연구소 연구원들과 함께 조사작업을 벌여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 그동안 탐사가 지질분야와 생물분야에 치우쳐 물리 화학교사들의 참여가 불가능했는데 이번에는 물리교사들이 일부 참여해 더욱 의미가 있었다.

탐사에 참가했던 교사들은 한결같이 학교교육에서 해양 부분이 부실해 이를 보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번 탐사에 참가해보니 해양연구가 생각보다 어렵고 중요한 데 반해 그동안 이를 알기쉽게 정리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작업이 소홀하게 취급돼왔음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번 탐사에 이용된 이어도호는 92년 2월에 완공된 해양연구소 소속 3백50t급 최신 종합해양조사선으로 우리나라 연근해를 조사해역으로 하고 있어 자연생태계 탐사용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첫날

설 연휴가 막 지난 1월 26일 아침 9시 전국에서 모여든 8명의 과학교사들은 잔뜩 부푼 기대를 안고 동아일보사 여의도사옥에 집결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새마을호로 직행. 오후 4시경 숙소인 부산 국제호텔에 도착하니 부산고 김영화 교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는 교사들과 연구원들의 상견례가 마련됐다.

탐사 인원은 교사 9명, 연구원 6명, 행사진행 3명 등 총 18명. 승선 인원의 제한 때문에 보통 때보다 참가교사 수가 줄었지만, 일반인이 좀처럼 타기 힘든 해양조사선을 타는 만큼 최대한 배우고 가겠다는 진지한 자세가 엿보였다.

이번 탐사의 최대 복병은 날씨였다. 겨울날씨로는 드물게 해상상태가 고르지 않아 막상 부산에 도착한 26일 남해 해상에 폭풍경보가 내려졌다. 이러다가 탐사도 못하고 부두에 정박해 있다가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초조해졌다. 그러나 해양연구소 연구원들은 '만만디'였다. 기상이 나빠 해양조사가 지연되는 일은 다반사라는 느긋한 표정이었다. '탐사대장' 유재명 박사는 불안해하는 교사들에게 "경험상 이틀후에는 출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둘째날

오전 11시경 제5부두에 나가 진해기지에서 탐사대를 태우기 위해 마중나온 이어도호에 승선했다. 김석기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선실배치를 받은 탐사대원들은 이어도호의 시설이 '호텔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감탄했다.

둘째날은 어차피 날씨가 나빠 출항이 불가능하므로 탐사에 대한 예비지식도 가질 겸해서 대한해협의 해황과 이번 탐사의 내용과 방법에 관한 세미나를 갖기로 했다. 유재명박사는 "탐사할 해역은 쿠로시오해류로 부터 갈라진 쓰시마난류가 동해로 유입되는 길목으로 우리나라 근해의 해양생물연구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즉 수온과 염분이 높은 쓰시마난류의 영향으로 동해와 남해 일대에 다양한 어족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번 탐사는 부산-시모노세키간에 20개의 정점을 대상으로 물리 화학 생물학적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주내용이었다. 물리분야는 수온 염분 해류 조류 등이 조사대상이고, 화학은 pH 용존산소 규소 영양염류 등 해수의 화학적 특성이 측정되며, 생물분야는 해역의 수층별 플랑크톤 치어 어란 등의 분포를 알아내는 것이 탐사의 내용이었다. 이외에 탐사장비와 그 원리가 소개됐다.

이어서 김석기선장으로부터 해상에서의 안전교육과 이어도호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완성된 지 1년밖에 안된 이어도호는 국내에서 건조된 종합해양 조사선으로 여름에는 수중작업을 하는 유인잠수정의 모선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항구에 정박중이어서인지 모두들 식사도 잘 하고 잠도 잘 자는 등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날씨 때문에 약간 불안하기는 했지만…

셋째날

파도가 가라앉지 않아 여전히 출항은 불가능. 누군가 "기상예보의 해상날씨에 관심을 기울여보기는 생전 처음"이라고 말해 한바탕 웃었다. 며칠동안 좁은 배안에서 생활하려면 다리힘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가까운 금정산성을 등산하기로 했다. 3시간여 등산을 하고 동래온천에서 목욕을 한 다음 염소불고기와 대구뽈찜 등 향토음식으로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넷째날

아침 9시에 드디어 출항. 파도는 1-2m로 약간 있었지만 오랜 기다림 후의 출항이었기에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새똥으로 머리가 허옇게 된 오륙도를 지나 제1정점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40분.

수온 염분을 측정하는 CTD장비와 수층별로 물을 떠올리는 로젯 샘플러, 그리고 플랑크톤과 치어를 채집하는 봉고네트와 표준네트 등이 주요 조사장비였다. 배를 일단 세워놓고 작업을 하므로 요동이 심해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었다. 연구원들의 설명을 들어가며 네트를 내리고 떠올린 해수를 표본병에 담는 등 탐사대원들은 열심히 작업했다.

홀수 정점에서는 전 과정을 다 마치고 짝수 정점에서는 CTD와 표층 네트작업만 하는 식으로 조사작업이 진행됐다. 홀수 정점에서는 3시간 정도, 짝수정점에서는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됐다.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를 왕복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이 진행되므로 교사들을 2팀으로 나눠 2개 정점씩 교대로 작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파도가 별로 심하지 않았는데도 교사들 가운데 몇명은 출항 첫날부터 멀미 때문에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작업하는 연구원들이 '존경스럽다'는 표현이 나오기도.

엔진 이상으로 잠시 부산항에 입항한 후 오후 5시경 다시 재출항. 그 중간에 김은수박사의 해양화학에 관한 강의가 있었다.

다음날 새벽 2시 제7정점의 조사가 끝날때까지 야간작업을 강행했다. 정점별로 조사하는 작업이 비슷해 갈수록 익숙해졌지만 멀미에 시달린 교사들은 하나둘씩 선실로 사라졌다. 8-14정점까지는 돌아올 때 조사하기로 하고 출항 첫날 작업은 새벽 2시에 마감했다.
 

로젯샘플러. 수층별로 물을 떠올려 화학적 특성을 조사한다.


다섯째날

새벽 6시경 제15정점에 도착해 조사를 시작했다. 해상상태는 연구원들이 '호수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양호했다. 그 때문인지 전날 핼쓱했던 교사들이 기운을 차리고 탐사에 가담했다.

이날은 조사 도중 두가지 사고가 있었다. 15번 정점에서 파도 때문에 플랑크톤을 채취한 표본병이 하나 유실됐고 19번 정점에서는 로젯 샘플러를 끌어올리다가 선미에 부딪쳐 채수기가 4개 깨졌다. 몇백만원 상당의 손실이라고 한다. 해양조사가 얼마나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인지 모두 실감했다.

오후 1시반쯤 20번 정점에 도착했다. 멀리 일본땅이 보이고 군데군데 조업하는 일본 어선들이 보였다. 기념촬영을 하고 배를 돌려 선수를 부산으로 향했다.

네트작업 결과 다양한 해양생물이 채집됐다. 우리나라 겨울철 연안해역에서 볼 수 없는 멸치가 발견됐으며, 겨울철 쓰시마난류에서만 볼 수 있는 샛비늘치 대주둥치 매퉁이 등이 채집됐다. 이밖에 남해 겨울철 산란종인 까나리가 부산 연안에서 채집됐고 우럭볼락도 쓰시마난류역에서 출현했다. 겨울철에 보기 힘든 어란과 동물성 부유생물도 쓰시마난류역에서 다량 발견됐다.

돌아오면서는 정점별로 CTD만 작업하고 갈 때 빠뜨렸던 8-14번 정점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오후 3시경부터 다시 파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후 쓰시마 근해를 지나갈 때는 잠시 배를 세워두고 오징어낚시를 하기도(주변의 오징어잡이 배들이 오징어떼를 몰고갔는지 한마리밖에 못낚았음). 새벽 2시경 11정점 조사를 끝낸 후 취침했다.
 

대주둥치(Macrohamphosus sagifue). 열대성 어류로 우리나라 동해남부에 분포하며 치어로는 이번 탐사에서 처음 채집됐다.


마지막날

9번 정점을 조사한 후 CTD만 측정하면서 부산항으로 들어옴. 돌아오는 동안 채집한 해양생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방법과 해수중 금속이온의 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유박사와 김박사가 각각 설명했다. 12시경 부산항 입항. 소주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연구원 및 선원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열린 좌담회에서는 해양연구의 어려움과 학교교육에서 해양부분의 부실함 등이 주로 지적됐다. 육지에 발을 딛는 순간 "먼 항해 끝에 땅의 고마움을 안다"는 뱃사람들의 경구가 문득 떠올랐다.
 

김은수 박사가 해수중 금속이온 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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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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