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황천과 지상을 잇는 죽음의 강

12월의 밤하늘

오리온자리와 에리다누스자리의 별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엔 하얀 별빛이 유난히도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다들 계절에 비해 밤이 긴 계절, 대기가 불안정해 별빛이 더욱 반짝거리는 계절, 하지만 다른 어느 계절보다도 밝은 별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별들이 제일 밝게 보이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따라서 겨울은 맨눈으로 별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계절로 알려져 있다.

겨울 별자리를 이야기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인공은 바로 오리온자리다. 밤하늘 모든 별자리 중에서 가장 화려한 대상으로 별자리의 왕자로 불리는 오리온은 겨울하늘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오리온은 가장 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며, 가장 화려한 별들의 소유자로 겨울 내내 모든 별들의 안내자가 되어 준다.

이 별자리의 으뜸별 베텔기우스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 중에서 가장 큰 별에 속한다. 그 지름이 태양의 약 1천배에 가까우며 거리로 나타내면 수억㎞(대략 목성의 궤도)에 해당하는 크기다. 또한 이 별자리의 중심부분인 삼태성의 동쪽에 위치한 말머리 성운은 전하늘에서 가장 잘 알려진 멋진 암흑성운이다. 밝은 성운을 배경으로 어두운 성간물질이 말머리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성운은 암흑성운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삼태성 아래의 소삼태성 중심에는 가장 화려한 오리온대성운이 위치한다, 태양계의 2만배 이상의 지름을 가진 이 성운 속에는 태양과 유사한 별을 적어도 1만 개 이상 만들 수 있는 물질들이 들어 있다. 그곳에서는 지금도 많은 별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특히 트라페지움(사다리꼴)으로 알려진 이름다운 젊은 별들의 조합은 이곳에서 만들어진 별들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오리온자리의 삼태성에 위치한 말머리성운


지친 낙타의 모습

오리온자리의 아름다움은 긴 겨울밤을 다 채워도 남을 만큼 대단하다. 하지만 오리온의 화려함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쓸쓸한 겨울 별자리들도 많이 있다. 특히 오리온 자리의 남쪽에 위치한 토끼자리와 에리다누스자리는 다른 계절에 있었다면 상당히 관심을 끌었을 그런 별자리들이다.

토끼자리는 오리온이 높이 떠올랐을 때 리겔(Rigel, 왼쪽발에 해당하는 백색별)의 남쪽에서 네개의 3등성으로 이루어진 삐뚤어진 사변형을 찾는 것이 가장 수월한 방법이다. 그 사변형의 동쪽으로 4등성의 찌그러진 고리를 합치면 토끼자리가 완성된다. 이 별들은 아라비아인들에겐 가뭄에 물을 찾고 있는 지친 낙타의 모습으로 불렸다고 한다. 토끼자리 중심의 남쪽에 위치한 베타별 니할의 의미가 아라비아 말로 '목이 마르다'는 의미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토끼자리의 기원은 상당히 모호한데, 어떤 이들은 오리온이 토끼사냥을 좋아해 오리온자리 아래에 토끼자리가 생겼다고도 하고, 다른 이야기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실리아 섬에 야생토끼가 널리 퍼져 있어서 사냥꾼인 오리온자리와 사냥개인 큰개자리 사이에 토끼자리를 두어 야생토끼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하였다는 말도 있다.

어쨌거나 겨울하늘의 불쌍한 토끼는 사냥꾼 오리온 아래에서 동쪽으로는 큰개에게 쫓기면서, 서북쪽으로는 황소의 거대한 뿔에 막혀서 죽음의 강 에리다누스를 건너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오리온자리의 남서쪽으로 토끼를 가로막는 죽음의 강 에리다누스가 흐르고 있다. 에리다누스자리는 을씨년스런 초겨울 날씨와 함께 왠지 오싹해지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별자리다. 이 별자리는 죽음의 강답게 밝은 별이 거의 없는, 서울하늘에서는 거의 알아보기 힘든 공허한 별자리다.

에리다누스자리는 오리온자리의 베타 별리겔에서 서쪽으로 25°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4등성 엡실론(ε)별로 인해 매우 관심이 가지는 별자리. 이 별은 고래자리의 타우(τ)별이나 백조자리의 61번 별과 함께 생명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가진 곳이다. 이 별은 지구와 같은 행성을 가지는 태양과 비슷한 크기의 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직 특별한 징조는 없지만 생명체가 이곳에 있으리란 추측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화속에서 에리다누스는 황천과 지상 사이에 가로놓인 죽음의 강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바빌론에서는 이 강을 유프라테스강,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 강과 관련된 이야기가 두가지 나오는데 모두 아폴로(Apollo)의 아들들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 중 한 이야기에는 아폴로 신의 아들인 패톤(Phaethon)이 아폴로의 마차로 하늘을 달리다가 실수해 떨어져 죽은 강이 에리다누스강이라고 되어 있다. 또 다른 이야기에는 아폴로신의 아들 오르페우스(Orpheus)가 황천으로 아내를 구하러 갈 때 건넜던 강이 바로 이 강이라고 한다. 옛 사람들이 이 강을 황천과 지상을 연결하는 죽음의 강으로 본 것은 이 별자리의 끝부분이 지평선 아래에 접해 있기 때문이다.

굽이치는 에리다누스자리를 가로질러 우리는 다시 화려한 겨울 별들의 세계로 들어선다. 별의 이름을 익히는 이유는 나름대로 다양하리라. 별을 통해 인류의 상상의 역사를 배우기도 하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나타나는 하늘의 아름다움을 보는 즐거움을 갖기도 한다. 광대한 우주에 대한 그 감춰진 신비를 미약하나마 캐볼 수도 있다.

긴 겨울밤 동안 여러분 모두의 기억에 남는 멋진 별 여행을 해보기 바란다.

연재를 마치면서

밤하늘 별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또한 학창시절 사랑의 감정을 별을 통해 전해보지 않은 사람 또한 거의 없으리라. 우리네들 삶이 젊은 시절 그렇게 메마르지 않았다는 증거이리라. 그러나 나이를 먹게 되면서 어느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단지 아득한 옛날의 향수 정도로만 느끼게 된다.

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우주의 신비를 캐는 것은 단지 사춘기 소년 소녀들만의 낭만은 아닐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왠지 모를 감회에 젖게 된다. 밤이 주는 평온함이 우리를 더없이 순수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별빛이 주는 느낌이 한없이 맑고 신비하기 때문이리라. 밤이 되면 아무리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도 잠시나마 긴장을 풀고 낭만적인 감상을 느끼게 되며 어둠과 별빛이 내뿜는 신비한 힘 앞에 고개 숙이게 된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반은 땅이요, 나머지 반은 하늘이다. 또한 우리가 보내는 시간의 반은 낮이요, 나머지 반은 밤이다. 낮이 땅의 세상이라면 밤은 하늘의 세상이다. 땅이 어둠에 잠겨 잠든 밤시간, 하늘엔 작은 별들이 소리없이 아름다운 빛잔치를 벌인다. 긴 시간 모두가 잠든 세상을 감싸며 언제나 변함없이···.

문명이 생겨나면서 사람들 삶 속에는 밤의 문화라는 것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먼 옛날 그 문화는 목동과 농부들의 이야기 문화였으며, 신화와 전설을 만드는 문화였다. 따뜻한 모닥불이, 그리고 화로불이 있었고 하늘엔 작은 별들이 총총히 빛나던 그런 문화였다. 그 시간엔 꿈이 있었고, 소망이 펼쳐지는 그런 문화였다.

전기가 발명되고 밤이 새로운 활동의 시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밤의 문화는 매우 다양해졌다. 낮시간보다 더 자극적이며 더 화려한 세계가 밤의 문화를 대체하게 되었다. 열기는 있지만 포근한 느낌은 사라졌으며 소리는 있지만 이야기는 줄어 들었다. 이제 도시의 밤은 더이상 꿈과 소망이 펼쳐지는 그런 시간이 아니다.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세상 아름다움의 절반을 잃고 살아가는 것이다. 혹자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작은 빛들로 이루어진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한번이라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결코 헛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결코 낮 시간에 비할 수 없는 새로운 감동이 밤별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학생들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부모님은 아이들을 이끌고, 젊은 연인들은 서로의 마음을 느끼며 별 하늘 아래 서서 우주의 신비와 별들의 낭만을 느껴보는 여유를 갖기 바란다. 하얀 눈이 내린 하얀 겨울밤 하얀 마음으로 하얀 별들의 사랑 잔치에 참여해보자.

지난 2년간 부족한 필자의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 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길 바란다.
 

오리온자리 소삼태성 중심에 위치한 오리온대성운. 별탄생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달의 별

알데바란((Aldebaran, Tau)


황소자리의 붉은 눈을 나타내는 알데바란은 그 지름이 태양보다 36배나 큰 적색의 거성으로 지구로부터 68광년의 거리에 놓여있다. 알데바란이란 말은 '뒤따르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이 별이 묘성으로 알려진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뒤를 다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약 한시간 정도 뒤에 떠오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이 별을 서쪽하늘의 지도자 별로 불렀으며 헤브라이인들은 신의 눈으로 부르며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이달의 행성

금성
저녁하늘에 보이며 사수자리로부터 염소자리를 지나 하순에는 물병자리의 경계에 위치한다. 밝기는 -3.6등급에서 -3.9등급으로 더욱 밝아지며 22일경 토성의 남쪽을 통과한다.

화성
게자리로부터 쌍둥이자리로 옮겨가며 하순에는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남쪽에서 보인다. 밝기는 -0.7등급에서 -1.2등급으로 매우 밝아진다.

목성
처녀자리에 위치하며 밝기는 -1.5등급이다.

토성
염소자리에서 0.9등급으로 보인다. 22일경 금성 바로 옆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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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태형 총무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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