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관련 세계시장은 70조원에 이르고 있다. 이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신병기는 활동영역을 빠르게 확대시키고 있는데…
유전공학 실험실에서는 수시로 대장균을 대량배양한다. 이때 최소배지(포도당과 소금 등 몇가지 무기염류로 구성)라는 영양배양액을 만들어서 그 곳에 대장균을 접종하고 37℃에서 공기를 계속 공급해 주면서 키운다. 매우 간단한 실험과정이다. 대장균은 이 조건에서 매 20분마다 세포분열하며 자라는 일반적인 미생물(microorganism)중의 하나다.
언뜻 보면 미생물이 별일없이 잘 자라는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으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놀랄만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에도 안보이는 이 미세한 세포공장 안에서는 단순한 포도당과 몇가지 무기염만을 원료로 하여 수천가지 이상의 초정밀 생체화학물질과 생체고분자가 일사분란하게 합성된다.
도대체 세포공장 안에는 무엇이 있기에 그 많은 정교한 물질들을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있는가. 바로 세포안에 있는 효소(enzyme, 酵素)때문이다. 효소는 자연이 갖고있는 완전한 화학반응의 촉매로서 생명체의 부품을 만드는 단위공장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다.
「효모에서」유래되고
그 효소는 무엇인가. 효소는 아미노산(생체 내에는 20가지의 아미노산이 존재)들이 일렬로 연결돼 구성된 단백질이 입체적인 기능구조를 이루고 있는 생체물질이다. 이 기능구조를 갖고있는 효소는 생체분자를 일상적인 조건에서 매우 빠르고 효율적으로 합성해주는 화학반응의 촉매인 것이다.
화학자의 꿈이 이 효소 안에 담겨 있다. 생체세포는 커다란 복합합성공장으로 수천 수만가지의 생체분자와 생체물질을 일사불란하게 만들고 있다. 그때마다 효소가 해당 생화학반응에 관여해 생체분자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해 준다. 이 생체분자는 일종의 생체부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분자구조가 매우 복잡하면서 정교하다. 아마도 사람이 알고있는 물질중 가장 정밀한 화학물질일 것이다.
효소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효모에서'(in yeast)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1878년에 퀴네(Kühne)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됐다. 그는 효모나 효모세포의 추출물이 화학반응의 촉매작용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1897년 뷔크너(Büchner)는 효모의 추출물을 가지고 알코올발효가 가능한 것을 보고, 이 효모세포 내에 화학반응의 촉매인 효소가 존재하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그때부터 효소는 많은 생화학자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했다. 요소(urea)를 탄산가스와 암모니아로 분해하는 요소가수분해효소(urease)의 결정(crystal)이 처음으로 만들어 졌다. 이어서 많은 효소의 작용메커니즘을 규명하게 되었다. 산업적으로는 19세기부터 치즈 등 식품가공 분야에서 효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에는 혈전치료제 등 일부 의약품이 효소에 의해 제조됐으며, 최근에 와서는 정밀화학제품 기능성의약품 환경정화제품을 만들 때 효소가 이용되는 등 그 활용범위가 급속도로 넓어지고 있다.
효소는 현대산업이 요구하는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효소는 값싼 천연자원을 이용해 고부가가치의 초정밀화학물질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효소반응은 일반화학반응과 달리 상온 상압에서 진행할 수 있는 저(低)에너지 요구형태의 생산공정을 갖고 있으므로 자원과 에너지의 절약을 유도할 수 있다. 이에 더붙여 효소는 생산성을 높여주고 생산공정을 매우 간단하게 해 준다.
이는 한 정밀화학물질을 합성하는 데 있어서 일반화학반응은 여러 합성과정을 요구하나 효소반응은 단 한 단계의 효소반응으로도 기능하므로 시간과 시설투자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효소반응은 원하지 않는 부산물과 오염물질의 발생을 최대로 줄임으로써 높은 생산성의 보장은 물론 환경문제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현대산업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산업형태인 것이다.
의약품제조에 활용돼
이렇게 완전무결한 생체촉매가 자연에 산재하는 데 왜 이제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지 않았을까. 효소활용시에는 여러 분야의 과학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효소를 탐색하고 그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생물학을 알아야 하고, 생체내 효소분리와 효소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생화학을 알아야 하며, 효소 반응과 효소공학을 알기 위해서는 화학과 생물공학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각 과학분야가 독자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다. 다른 과학분야와의 미미한 교류로 인해 본격적으로 효소산업을 구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둘째로 알려진 효소의 수가 얼마 안된다. 모든 생물의 세포내에서는 수천수만의 생화학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한 효소는 그 해당 생화학반응에 관여돼 있다. 생체 내에는 이렇게 많은 생화학반응과 그 효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효소의 구조와 화학반응 생산 응용에 대한 지식의 결여로 화학자의 범주 밖에 놓여 있었다. 셋째로 생체의 효소는 현재 가동되고 있는 화학산업 조건에 매우 부적합하다. 효소는 생체내의 낮은 반응은도와 상압에서 물을 용매로 하여 작용하고 있다. 또한 효소는 주로 단백질로 구성된 생체분자이기때문에 주어진 반응조건에 따라 쉽게 그 구조가 변해 촉매기능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효소의 물성과 특성에 맞는 산업기술구축이 먼저 요구되고 있다.
넷째로 이제까지 효소의 대량생산체계가 세워져 있지 않았다. 실제로 효소를 산업적으로 사용하고자 할 때 가용한 효소의 양이 너무 적어서 산업적인 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동안 효소는 산업현장의 주역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실용화된 생물공학은 생체내에 존재하는 새로운 효소탐색과 효소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로써 효소활용의 범위를 크게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최근 범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인체게놈연구와 관련게놈연구를 통해 생체의 구조정보를 다량 얻을 수 있게 됨으로써 여러 기능의 단백질과 함께 수많은 새로운 효소의 유전자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됐다.
효소는 모든 산업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식품용 의료용 공업용 에너지용 환경용 특수용 효소 등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사실상 모든 산업분야가 효소와 관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 구체적인 실례를 하나씩 소개해 본다.
올리고당을 개발하고
첫째로 우리 조상은 효소를 식품가공에 이용했다. 가령 발아하는 겉보리에는 전분분해효소가 있다. 이 효소는 겉보리가 발아할 때 녹말분해효소(amylase)를 만들고, 다시 전분을 분해해 필요한 에너지와 영양물질을 제공해 준다. 이러한 현상을 이용해 우리 조상은 엿기름을 만들고, 쌀로부터 당밀을 만들었다. 이는 쌀밥에 있는 녹말을 말토스(이당류, maltose)로 분해해 우리 고유식품인 식혜와 엿을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리 조상들은 매우 이상적인 효소공학적 천연식품 가공방법을 활용해 왔던 것이다.
조상의 과학적인 지혜는 우리의 연구지표를 새롭게 설정해주고 있다. 최근에 와서 여러 식품관련 효소가 개발돼 올리고당(oligosaccharides) 등 다양한 가공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식품가공과 효소는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의약제제 합성과 질병퇴치에도 효소는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사실 의약품분야는 효소활용의 가장 유망한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효소를 이용하면 항생제 등 많은 의약품을 정교하게 합성할 수 있는데, 이러한 효소의 새로운 응용범위는 정밀의약제품 제조의 공정단축과 신약개발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질병치료에 유용한 효소로는 식후에 복용하는 소화효소, 당뇨병환자의 혈당측정장치에 쓰이는 포도당산화효소, 피부 보호제로 사용되는 SOD(superoxide dismutase) 등이 있다. 이 생체효소들은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 등에 다양하게 사용될 뿐더러 신의약품 개발 및 인류건강을 크게 증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효소의 공업적 활용은 이제 시작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의 화학산업이 석유중심에서 생물자원을 이용한 효소산업으로 개편될 전망이다. 전공업분야가 효소공학기술에 크게 의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산업현장에서는 공업용 효소가 더욱 많이 활용될 것이며, 특히 특수공업제제나 정밀화학물질은 효소합성으로 제조될 것이다. 결국 기존 화학산업과 생물과학의 만남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공업용 효소는 그 자체가 상품이 되거나 촉매반응을 통해 화학제품 생산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현재 공업용 효소의 한 예로는 연간 3천억원의 세계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세제효소를 들 수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단백질공학기술을 이용, 극한 세탁조건에서도 매우 안정되며 세정력이 뛰어난 효소를 만들어 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바이오센서란?
넷째 멀지않아 석유와 석탄이 고갈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화학에너지가 등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생물자원을 이용해 휘발유 등을 만들 수 있는 기술개발이 요구된다. 지구상에 가장 많은 천연생물자원(바이오매스)은 식물유래의 셀룰로오스류(cellulose와 hemicellulose) 리그닌류(lignin) 전분류 그리고 해양생물인 새우와 게의 외피에 있는 키틴류(chitin) 등이다. 이들 대부분이 탄수화물 고분자다.
그래서 탄수화물공학 연구가 선진기술국에서는 국가정책연구로 채택돼 진행되고 있다. 결국 이 천연자원들은 효소의 도움을 받아 석유산업제품으로 전환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 효소관련기술을 모든 과학 기술의 공통기반기술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지구상의 생물은 환경정화의 기본장치다. 생물은 환경정화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 이는 한 생물의 배설물이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생물에 의한 오염물질의 정화과정은 생물의 환경적응과 성장의 한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도 결국 생체 내에 오염물질을 필요한 영양분이나 에너지로 전환시켜 주는 효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생체내의 효소를 찾아내 환경정화에 활용하라'는 새로운 지상과제가 생화학자에게 던져진 셈이다.
여섯째 효소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만들어 낸다. 미생물 내에는 자체 방어목적으로 갖고 있는 핵산분해효소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중 DNA의 염기서열을 선택적으로 인식하고 절단하는 것이 있다. 이것을 제한효소라 한다. 이 효소는 유전자재조합연구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실험수단이다. 사실 이 제한효소없이는 어떤 유전자공학기술도 성립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 최근 바이오센서(biosensor) 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는 과학장비나 산업공정에 이용되고 있는 고도의 선택적이고 예민한 감지장치다. 벌써 연 5백억원 이상의 세계시장이 형성돼 있는데 이것도 알고보면 효소장치다. 특정효소를 전기장치에 부착, 특정물질과 반응하면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측정하고 이를 이용해 그 물질의 존재와 양을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는 첨단감지장치인 것이다. 바이오센서는 매우 밝은 전망이 보장된 효소의 영역이다.
이러한 효소의 잠재력을 많은 과학자와 산업기획자가 잘 알고 있지만 효소의 활용은 다소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단 예외가 있다. 덴마크의 노보(NOVO)라는 회사는 전세계 효소시장의 42%(1990년)를 점유하고 있다(효소관련 세계시장 70조원). 이는 이렇다할 부존자원이 없는 국가가 고도의 생물공학기술을 이용해 고부가가치제품을 창출하는 좋은 예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도 매년 2백억원에 가까운 효소를 이 회사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